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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
Nov 05. 2021
부모님을 호스피스 병동으로 모실 너에게
삶에서 가장 슬픈 시간을 만나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어머님이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모셔야 한다는 말이 귓가에 들렸다.
아버지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모신적이 있는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지에 대해서.
갑작스러운 친구의 말에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며, 지금은 정신이 없을 테니 우선은 어머니 잘 돌봐드리고, 해야 하는 리스트는 정리해서 메시지로 넣어주겠다고 했다.
나 또한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췌장암으로 어머님을 먼저 보내드리고 나서, 아버지가 폐암으로 아프실 때 미안하고, 고맙게도 그녀의 눈물 섞인 경험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딘가에서 내 글을 보고 있을 부모님을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모셔야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 되길 바라며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내가 아버지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모시면서 들었던 생각은 컨디션이 괜찮아지시면 퇴원시켜 드려야겠다였다.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서 진단서에 써주신 '호스피스 완화 치료가 필요합니다.'라는 문장 그대로 받아들여 정말 치료를 받으면 나을 실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외면하고 싶은 바람이 짙었던 것 같다. 희망을 놓아버리면 모든 것이 무너저 버릴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너의 슬픔이 아름다워 나는 편지를 썼다.'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 오랜 지병으로 아버지를 잃은 지인의 장례식징에 조문을 간다.
장례식장에서 지인은
"오랜 시간 동안 병을 가지고 계셨으니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셨던 거죠?"
라고 묻자
"아니요. 나에게도 아버지의 죽음은 갑작스러웠습니다."
그가 답한다.
이 이야기를 읽고 크게 공감했다,
아무리 준비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은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까지도 준비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가족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포기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깨달았다.
호스피스 병동에 가시면 인정하기 싫겠지만 언젠가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은 직시하고, 부모님의 마지막을 잘 정리해드려야 하는 시간이라고 받아 드려야 한다. 그래야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준비가 되고, 거기에 따른 후회가 적다.
나의 경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프신 아버지께
"이 말 꺼내기 정말 힘들었지만, 저는 아버지의 자식으로서 혹시 모를 아버지의 마지막 잘 정리해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어려우시겠지만 지금부터 제가 하는 질문에 답해주세요. 미리 한번 정리해두시면 아버지도 마음도 편하시고, 저희도 아버지의 뜻을 알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할 거예요."
라고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알겠다고 하시며 나와 함께 아버지의 마지막을 정리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마지막을 정리하신 나의 아버지는 그다음 날 돌아가셨다. 아버지와 정한 장례식장에 아버지와 함께 고른 영정사진이 준비되니 아버지의 죽음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연락해야 하는 분들께 사실을 전하고, 감사를 전해야 하는 분들껜 대신 감사인사를 전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고른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아버지를 모시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만약 그날 내가 어렵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마지막을 정리해드리는 질문을 건네지 못했다면 아버지의 마지막을 정리해 드릴 때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다.
어딘가의 슬픔의 시간을 살고 있을 누군가가 호스피스 병동에 부모님을 모시게 될 때 여쭤보아야 하는 목록들을 적어보았다. 부디 어렵겠지만 부모님이 정신이 온전하실 때 여쭤볼 것을 권한다. 극심한 고통으로 강한 마취제를 쓰게 된다면 이 또한 여쭤보기 어려울 수 있다.
1. 가족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유언 녹음하기)
2. 장례식 사진 정하기
3. 장지 어디가 좋으신지 정하기
4. 사랑한다고 많이 말해드리고, 많이 안아드리기
5. 가족들 얼굴 보여드리기 (코로나로 불가하다면 통화라도)
6. 아프신 부모님이 감사드려야 할 분 전화번호 받아놓고, 어떤 부분 감사했는지 적어두고, 돌아가신 후 부모님 대신 전화드리기
7. 장례식 때 연락드려야 하는 분 적어두기
8. 드시고 싶다고 하시는 거 다 사다 드리기 (단 한 입만 드실 수 있더라도)
9. 나중에 입이 마르시니 수건으로 입 닦아드리기.
원하시면 아이스크림이나 얼음 사다 드리기.
10. 옆에서 잘 간호해드리기. (얼굴과 손 발 닦아드리며 아프신 부모님 얼굴 손끝으로 잘 기억해놓기)
언젠가 방송에서 부모님의 마지막을 정리해드리며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글을 읽는 삶에서 가장 슬픈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가 잠시나마 슬픔에서 빠져나와 어린 나를 입히시고, 먹이시고, 잘 자라게 해 주신 하나뿐인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지막을 잘 정리해드리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