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따뜻한 물수건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닦아드릴 때 얼굴 윤곽이 내 손끝에 남아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어머님을 떠나보내드리기 전 어머님의 얼굴을 닦아드리면서 손끝으로 어머님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그 손 끝의 기억이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큰 위로가 되었다고. 그녀는 나에게 돌아가시면 다시는 보고 싶어도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손끝으로 아버지를 잘 기억해놓으라고 말해주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시고부터 아버지의 얼굴을 닦아드리며 손끝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했다.
평평한 이마와 내가 참 많이 사랑했던 아버지의 눈가의 주름을 지나 오똑한 코와 다소 마르신 볼과 하얀색과 회색이 섞여있던 까슬했던 턱수염의 촉감까지 아직도 내 손끝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허공에다가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보곤 한다. 손끝으로 그려지는 아버지의 얼굴이 나에겐 큰 위로가 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나눈 많은 이야기들. 힘든 시간이었지만 우린 늘 웃음과 함께했다.
"아빠.이제 다신 아빠와 딸로 만날 수는 없으니깐, 아빠가 다시 태어나면 내 아들로 태어나요. 내가 정말 잘 키워줄께요."
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 되는 날. 나는 아버지가 계신 곳에 서 있다. 뱃속에는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아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