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 승무원의 행복한 휴직 생활

나에게 주워진 지상에서의 삶.


비행을 쉬고 있다.

둘째 아이가 생겼다.

가끔 내가 비행을 했던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 문득 옷장에 걸려 있는 유니폼들과, 케리어가 눈에 들어올 때, 각 나라에서 사 온 마그네틱이 눈에 들어올 때

'아 내가 승무원이었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렇게 나는 하늘을 나는 삶이 아닌, 임신하는 10개월과 아이를 낳고 키우는 14개월의 지상에서의 시간을 허락받았다.


가끔은 파리 겨울의 코끝 시리지만 반짝이던 샹들리제 거리가 그립기도 하고, 하와이의 기분 좋은 밤바람과 바다가 그립기도 하다.

몰디브의 투명한 물 색깔과 썬베드에 누워 마시던 달달한 커피 한잔이 생각나다가, 문득 방콕의 커리 크랩과 MK수끼가 먹고 싶기도 하다. 임신으로 다리가 저릴 때는 발리의 스톤 마시지가 간절하다.

이렇게 전 세계 여러 나라를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나에게 주워진 지상에서의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고 생활하고 있다.


그리운 비행 시간들


아이의 목소리로 눈을 뜨면, 어느새 함께 먹는 아침.

식탁에는 삶은 달걀, 치즈빵, 사과, 우유가 차례대로 차려진 뒤 깨끗하게 정리된다.


엄마가 와주시는 10시.

엄마가 옷 갈아입으실 동안 아기랑 같이 놀아주고, 엄마가 드실 음료수를 꺼내어 놓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총 6시간.

그중 총 5시간의 자유 시간이 온전히 나에게 주워진다.


그 시간 동안 살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고, 운동을 하고 피곤할 땐 낮잠을 자는 등의 시간을 보낸다.


공부의 능률을 생각하면 카페로 나가는 것이 좋다. 집에 있으면 요즘 부쩍 태동이 심해진 둘째가 자꾸 나를 졸리게 만들어 침대로 데려간다.


엄마가 가신 후 아이와 보내는 시간.

무한 반복의 역할놀이에 어느새 지루하다가 무료하기까지 하지만 눈앞에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웃음으로 웃고 있는 나의 보물인 아이를 보며 어른이 되어하기엔 조금은 무료한 이 놀이에서 큰 행복을 찾는다.


어느새 부쩍 큰 아이를 보면, 아이가 누워있던 신생아 시절부터, 뒤집기를 성공해서 환호했던 순간과 이유식을 처음 먹던 낯설지만 귀여운 표정과 처음 앉았을 때의 대견함과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의 경이로움을 잊지 못한다.


임신 후 맛있는 게 먹고 싶다 말하는 나에게

"엄마 뭐 먹고 싶어? 내가 크면 맛있는 거 다 사줄게."라는 예쁜 말에 또 감동을 받는다.

이 작고 소중한 아이의 역사가 내 인생과 함께 기억된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다.


요리를 잘하는 남편이 만든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진 식탁.

소갈비살 요리, 삼겹살 요리, 오삼불고기, 해물찜, 멘보샤, 고르곤졸라 피자 등을 맛있게 먹는다.

다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소화가 되면 과일을 잘라 오손도손 나눠먹기도 한다.


남편이 웨이팅이 긴 유명한 도너츠 가게에서 우유 생크림 도너츠와 다양한 맛도 먹어보라고 사온 도너츠 박스에 또 행복해진다.

아내와 딸이 먹을 생각에 긴 줄을 서고, 시간이 빠듯해 점심을 못 먹어도 종류별로 먹어보라며 사 왔다고 웃는 당신의 따뜻한 마음을 받는다.

남편이 사 온 도너츠를 나와 딸아이가 맛있게 먹는다.

'톡톡'

아차, 까먹고 있었지만 배에서도 맛있다고 두 번째 보물이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남편이 사다준 도너츠


소소하지만 행복한 이 순간이 너무 좋아 글을 쓰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다.


한쪽으로 돌아누우면 저쪽으로 누우라고 배속에서 뾰로록 뾰로록 신호를 보내는 둘째와, 고개를 돌리면 내 눈에 들어오는 곤히 잠든 첫째 보물의 귀여운 얼굴과 내가 참 많이 사랑하는 든든한 남편이 잠든 밤을 좋아한다.

사실 아이를 낳고 느끼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걸 가진 것 같은 마음의 풍족함을.


어느새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임산부가 되었지만, 딸아이가 말하면 유모차를 신나게 앞으로 끌어주다, 어느새 돌아와 내 발걸음을 맞춰주는 남편과, 동생한테 줄 거라고 열심히 그림선물을 준비하는 첫째의 모습이 예뻐서 가만히 눈에 담아본다.

새벽에 부쩍 다리에 쥐가 나 깨는 요즘.

잠결에도 다리를 주물러주는 자상한 남편 있는 이곳.


지금 여기
나는 캐리어를 끌고,
전 세계의 하늘을 날아다니진 않지만,
아기 엄마 승무원의
행복한 휴직 생활은
이렇게 소소한 행복 속에 지나가고 있다.






*이미지 출처: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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