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이 되고 좋았던 많은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특별한 선물이었다고 느꼈던 건 바로 크리스마스에 파리의 비행을 선물 받았을 때였다.
어렸을 때도 꿈꿔본 적 없는 한국이 아닌 낯선 곳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다만 즐겨보던 미드에서 여자 주인공이 나풀거리는 드레스에 코트를 걸치고 반짝반짝빛나는 에펠탑을 지나 파리의 거리를 뛰어가는 모습에매료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나 또한겨울날파리의반짝이는 에펠탑을 두 눈에 담으며거닐고 싶었다.
그렇게 파리는 내 로망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막연했던 내 로망이 이뤄졌다.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승무원이 된 후 막연했던 내 로망은 현실이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 찬 파리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꿈을 꾸는 것 같은 현실을 마주하곤 하는데, 나에겐 파리에서의 크리스마스가 그랬다.
사실 나는 입사하고 런던 비행이 자주 나온 편이었다. 런던 비행이 자주 나오면 상대적으로 파리 비행이 나오지 않는다는 동기들이 들려준 소문은 나에게 있어선 사실이었다.
그렇게 파리에 로망을 품고 있던 내가 비행 3년 만에 스케줄에 찍힌 파리를 알리는 'CDG'라는세 글자를마주한 순간 사고 회로가 멈췄다.
'드디어 파리다.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파리의 크리스마스
드디어 파리 비행을 가는 날.
파리 비행은 딜레이부터 여러 가지로 힘든 부분이 많은 노선이었다.
하지만 내 로망이 이뤄지는 날이기에 무거운 다리로 공항을 걸어 픽업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파리의 모습은 내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어느새 발끝에 맺친 피곤함은 기분 좋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파리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로맨틱하기 충분했다.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모든 나무 위에 반짝이는 전구를 달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동시에 나무들에 불빛이 들어온다.
유럽의 추위는 뼛속까지 춥기에 단단히 옷을 챙겨 입고, 파리의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따뜻한 커피를 테이크 아웃했다. 따뜻한 커피를 손난로 삼아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풍기는 파리를 두 눈에 담았다. 아직은 파리를 잘 모르는 신입 승무원이었던 나는 감사하게도 선배들의 안내에 따라 파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샹젤리제 거리의 모든 나무에 동시에 불빛이 켜졌을 때의 찰나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마치 내 인생에 마법 같은 일들이 펼쳐진듯한 느낌.
불켜진 파리의 샹젤리제거리
"메리 크리스마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인사를 건네던 파리지앵 아저씨의 따뜻한 미소에 나 또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반짝이는 에펠탑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라서 더 좋았던 시간들.
에펠탑이 보이는 식당에서 먹은 행복했던 저녁식사. 고수 버거는 다소 입맛에 안 맞긴 했었지만, 시차로 인해 졸음이 밀려오긴 했지만 정각에 맞춰 반짝이는 에펠탑을 보니 다시금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파리인 것에 감탄하며, 크리스마스를 파리에게 보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이번 생에 난 큰 선물을 받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가에 앉은 커플이 대화하는 모습 또한 한 편의 영화가 되는 이곳에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