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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을 파쇄하기 전 아버지의 등뼈가 기억이 난다.

인생에서 가장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5살 때 울고불고 떼를 썼지만,  그 사람은 나의 어머니와 결혼을 했기 때문에 나와 결혼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사람은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나와 눈 맞출 때 늘 인자하게 웃어주실 때 보이는 아버지의 눈가의 주름이 좋았다. 작은 내손을 꼭 잡아주시는 아버지의 손을 좋아했다. 생일과 같은 축하할 일이 생기면 좋은 책과 함께 손글씨 가득 들어있는 편지를 주시는 아버지를 좋아했다.


 "우리 예쁜 딸은 잘할 줄 알았어."


늘 내가 무엇을 하든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내편이 있다는 건 나로 하여금 불확실한 세상에서 나를 지켜주는 안전하고 튼튼한 보호막이 있는듯한 느낌이 들게 하였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신 덕분에 많은 도전을 할 수 있었다. 도전에 실패한 어느 날도 아버지의 응원과 격려로 의연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을 때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함께 높아졌다. 그 원천이 나의 아버지였다. 그런 사람이 나의 아버지라서 더 좋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2년이 지났지만 어제처럼 눈앞에 선하게 남는 잔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유골을 화장하고, 뼈를 파쇄하기 전 아버지의 다소 굽은 뼈를 본 날이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더 이상 세상에 없게 된 날. 앙상하고 하얀 뼈만이 내 눈앞에 있었다. 망치로 아버지의 뼈를 파쇄할 때 안된다고 목 놓아 절규하며 오열하던 그날의 내 모습이 겹친다.


나의 무거운 비행 케리어를 번쩍번쩍 들어주시던 나의 슈퍼맨. 아기 때 사진엔 아빠 목에 타고 아무런 걱정 없이 방긋방긋 웃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내가 너무도 해맑아 눈물이 고인다. 어떤 사랑을 주셨는지, 어떤 행복을 만들어 주고 떠나셨는지 아버지는 아실까.


화장을 하고 나온 아버지의 하얀 유골을 가만히 보았다. 누가 봐도 우리 아버지였다. 든든했던 내 아버지의 등이 겹쳐 보였다. 저 몸으로 나에게 가장 따뜻한 가족이라는 우주를 만들어주셨구나. 저 몸으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셨구나 생각이 들자 눈물이 흘렀다.


그만큼의 중압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이 시대를 살아낸 자의 위대함.

아직도 그날의 잔상이 머릿속에 남는다.
아버지의 뼈에서 보이던 인생의 무게가.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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