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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을 하며 박사학위를 공부했던 이유

오랜만에 승무원 때 팀이었던 언니들을 만났다. 두 달 만에 만나는 만남이었다. 복직 전 영어자격 갱신을 해야 할 목표 점수가 있어 미루던 만남을 점수를 받고 바로 잡았다.


"잘 있었어? 아기 둘 돌보면서  영어 점수 따느라 고생했어."


라는 그녀들의 인사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들은 나를 안다.

그녀들은 뉴욕 비행 후 유니폼 위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대학원을 향해 가는 나의 뒷모습을 보았었다. 스테이션에서도 과제를 붙잡고 있는 나를 보았었다. 그렇게 8년의 시간 동안 나를 지켜보고 있는 그녀들이었다.


"와. 너는 공부하려고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 승무원 하면서 공부를 병행한 게 도대체 몇 년이야?"


라는 그녀의 질문에 잊고 있었던 나의 젊은 날이 생각났다. 2년제 항공과를 나오고, 4년제 학사를 취득하기 위해 학점은행제도를 이용했다.


그 당시 집안이 어려워지고 내가 가장이 됐던 때라 취업이 간절했었다. 하루에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자기 계발을 했었다. 50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10분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텔레마케팅 문제집을 풀었다. 그렇게 나는 운이 좋게 항공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4년제 학사를 취득하던 날.

아버지 손엔 내가 좋아하는 프리지아 꽃이 들려있었다. 학사모를 던지던 그날의 사진엔 아버지, 어머니께서 밝게 웃으시며 나의 졸업을 축하해 주시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다니며 진급했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는 간단했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제대로   공부를 배우고 싶었다.

그렇게 들어가게 된 대학원에서 나는 욕심에 과제 많고 힘든 과목을 수강했다. 그리고는 석사를 졸업하기까지 마음속으로 울면서 대학원을 다녔다. 대학원과 비행을 병행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고단하고, 힘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승무원의 시간은 빨리 간다는 것을. 봄이 어느새 여름이 되고 여름이 겨울이 되는 직업. 장거리 비행 두 번에 중거리 비행 두 번 단거리 비행 몇 번이면 나의 한 달은 사라졌고, 일 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대학원 석사 논문을 쓰며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지. 비행과 대학원을 함께 다닐 생각을 하고.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내내 다짐했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비행기 벙커에서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더 좋은 문장으로 논문을 퇴고하기 위해 12시간 비행 중 주어진 2시간의 휴식 시간을 할애했다. 논문을 쓰기 위해 하루에 3시간 이상을 자지 않고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모든 시간이 녹아든 논문이 내 손에 놓인 순간 그간의 고생들은 눈 녹듯 사라졌다. 


"축하해요. 고생 많았어요."


라는 지도교수님의 칭찬과 격려에 눈물이 고인 눈으로 책상에 놓여 있던 빛나던 논문을 바라보았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연구를 통해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느낀 '성취감'을 통해 나는 더욱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게 좋았다.


주변에 승무원들 중 나에게 비행과 대학원을 병행하려고 한다고 상담을 하곤 했었다. 그럴 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시작해. 이번에 등록 안 하면 비행하며 금방 6개월 지나가고, 또 놓치면 1년 지나가.  딱 감고

그냥 시작하면 언제가 끝은 고, 학위는 남아. 근데 정말 힘들어. 그건 각오해야 해."


이렇게 조언을 들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등록하지 않았다. 이유는 비행과 학업을 병행하기 너무 힘들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공감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그때쯤 지도교수님께서 후속 연구를 위해 박사과정에 들어오라고 말씀하셨다. 망각의 동물이었던 나는 두 손에 반짝이던 논문만이 기억나 덜컥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다시 깨달았다. 비행과 학업은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울면서 다니는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시작됐다. 뉴욕 비행에 큰 에코백에 노트북과 과제를 잔뜩 담아 근처 카페에서 모르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해가 질 때까지 공부했던 시간들. 장거리 비행 후 달려가 수업을 듣던 그 모든 순간이 모여 내가 됐다.


22살부터 서른 살 후반이 된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봤다.


나는 비행을 하며, 늘 공부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김미경 강사님의 강의처럼 내가 살아온 인생이 나를 말한다는 말에 공감했다. 내가 어디에 시간을 쓰고, 어딜 갔고, 누구를 만났는지가 내 인생을 이야기한다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 나는 똑똑하지 않았다.

수능도 보지도 못했다. 고등학생 때 공부에 대한 무언의 압박감으로 눈앞에 프리즘이 생기고 두통으로 시아가 흐려지고 토를 하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그날부터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대학에 들어가 중간고사 전날 날을 새고 공부하고 있으면 어머니는 내 방에 불을 끄고 나가시며 그냥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나는 이건하고 자야 한다고 불을 켜고 다시 공부했다.


스무 살 이후 공부는 전부 다 나의 의지에 의해서 한 것이었다. 박사학위를 수료하고 논문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의도치는 않았지만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비행하며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아왔었고 그게 나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도대체 언제 공부가 끝나? 진짜 대단하다."


라는 팀언니의 질문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끝나긴 하겠지?'


라는 마음속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단순히 '서비스'가 좋았다.

무형의 서비스를 공부하는 시간이 좋았다. 내 인생에 반짝이는 보물을 발견한 기분. 공부를 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희열이 내 인생을 빛나게 했다.


나는 안다.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반짝반짝 빛이난 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비행을 할 때 빛났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연구할 때 빛났다. 그 빛나는 시간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단 하나의 이유, 바로 이것이었다.


그냥 해. (Just do it.)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에 앞서 늘 머릿속에서는 하지 말아야 하는 몇백 가지의 이유들이 떠오르곤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귀찮음이었다.


박사 등록을 할 때도, 브런치 작가에 도전할 때도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냥 해. (Just do it.)


나는 나를 잘 알았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어떻게든 끝마치는 사람인 것을. 물론 마음속으로는 힘들어서 울곤 했지만.

22살부터 시작했던 이 한마디가 빛나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비행하며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지금의 내가 나는 참 마음에 든다. 새로운 지식에 대한 발견이 나를 더욱 성장하게 만들었다. 내가 성장하자,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지고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어졌다.


정말 힘들었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인생의 깊숙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느낌. 그 보물이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을 빛나게 만들고 있다.



승무원을 하며
 박사학위를 공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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