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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안 쓰니 글 쓰는 것이 어려워졌다.

오랜만에 메일을 써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보통이면 뚝딱 메일을 쓰고 보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글을 쓰지 않았더니 첫 소절부터 막혔다.


피부로 와닿았다.


'내가 그동안 글을 안 썼지?'


문득 사람이란 참으로 정직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어디에 시간을 썼는지가 극명히 보였다.


요즘 컨디션 난조와 일상의 바쁨이 찾아왔다.

중, 고등학교 중간고사 기말고사 이후로 나에게 난 어떤 쉼을 주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비행 말고 여행 말고 그야말로 쉼을 생각해 보니 특별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좋아하는 드라마 몰아 보기였다.


어렸을 때는 만화책 빌려보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할 때 내 가방엔 늘 만화책이 들려있었다.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리운 걸까?

만화책 한 권에도 행복했던 그때가 그리운 걸까?


좋아하는 만화책을 마음껏 사고도 남을 돈을 벌고, 맛있는 걸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지금.

어느새 나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와있었다.

평범한 일상에 치이고, 삶의 무게는 무거워졌다.


그래서 찾았다.

바쁜 일상과, 삶의 무게를 잘 감당하며 마흔이라는 나이를 잘 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1. 조급해하지 않기.

비행을 하며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

내가 만든 가정을 잘 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주기.


지금보다 더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나에게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2. 죄책감 없이 쉬기.

늘 비행하며, 석사, 박사 공부를 병행했기에 엄마 혹은 남편이 나 대신 아이를 돌봐주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10년 동안 마음 편히 드라마를 본적도, 유튜브를 보며 뒹굴 거린 적도 없었다. 킬링타임은 나에게 죄책감을 주었다.


그렇게 쉼 없이 가치 있는 것들만 추구하다 보니, 인생이 재미 없어졌다.


물론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기에 진급도 일찍 하고, 많은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가?'


유럽의 한 바닷가에서 유유히 낚시를 하는 노인을 보며, 봄의 꽃이 빨리 져서 아쉽다며 시간을 내서 꽃을 보신다는 할머니처럼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나를 바쁘게 만든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무엇을 위해 나를 바쁘게 만드는 가?'


돈이라면 그 많은 돈이 지금의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인가?


편해질 것이라는 건 잘 안다.

지금도 마음껏 여행 갈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


지금도 할 수 있다.

바쁘지 않다.

조급하지 않다고 다독이지만, 어느새 마흔이라는 나이가 되니 자꾸 조바심이 난다.


십 년 뒤엔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더 성장한 모습으로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나를 얼마큼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인가?


딜레마다.

평범하게 살기 싫지만, 일상만으로도 치이는 일상.


번아웃을 제대로 경험했다.

내가 꼭 해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좋아하는 과자를 먹으며, 마음에 드는 드라마를 골라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시간이 나를 회복시켰다. 재미있는 드라마 세편을 끝내자, 답답했던 마음에도 바람이 통했다.


그렇게 푹 쉬니 조금은 가치 있는 걸 해볼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그동안 못 썼던 글들을 브런치에 쏟아내고 있다.

나의 글이 죽지 않도록.


글을 쓰며, 찾고 있다.

나의 인생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방법을.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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