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이 느끼는 시간의 상대성

승무원에게 시간이란?


누군가는 한국에서 보낼 수 있는 한 달의 시간.

나에게는 한국에서의 짧은 8일의 시간.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15일의 시간.

남은 시간은 해외 스테이션 어딘가에서.

잡을 수 없는 시간은 이렇듯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해외 스테이션에서 그리곤 한국에서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다.

가늠해 볼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한 달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누구보다 더 철저한 시간관리가 필요한 직업.

잠깐 한눈판 사이에 봄이 여름이 되어있고 가을이 겨울이 되어 버릴 수 있는 직업. 항공기 승무원.


승무원에게 시간이란?


일 년 전과 지금 나는 얼마만큼 성장하였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수시로 자문하며, 더 열정적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물어보며 살아가고 있다.

한 번뿐인 인생이 귀찮다는 이유로 방치되지 않도록. 이것은 잠을 줄이라는 말도 아니고, 내가 놓치고 살고 있는 시간을 잘 붙들라는 이야기.

틈틈이 나는 시간에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엿보며, 내가 얻을 것은 무엇이며, 내가 버릴 것은 무엇인지 자문해 보는 것.

또한 시간이 된다면 이렇듯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 메모해 놓는 시간을 가지는 것.


하지만 문득 이스탄불 비행을 다녀와서, 요즘 내가 믿었던 확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탄불 비행.

오랜만에 팀 언니들과 투어를 나가기로 했다.

3박 4일 일정에 승무원이 해외 스테이션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 반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

비행을 갈 때는 비행기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에 도착해서는 호텔에서 푹 쉬어야 한다.

다시 한국에 돌아갈 때는 날을 새고 한국으로 걸어가야 하기에 비행 출발 전 적어도 6시간 이상은 자고 일어나 준비하고 비행에 임해야만 피곤함을 이기고 비행할 수 있다.

그렇기에 3박 4일 일정에 하루 온전히 투어를 할 수 있는 날은 딱 하루만이 주어진다. 그다음 날은 점심시간까지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오후 시간은 다시 한국에 돌아가기 위해 유니폼을 다리고, 매니큐어를 바르고, 짐을 챙기고, 인바운드에 대한 비행 준비를 하고, 잠을 청해야 한다.


승무원이 하루를 꽉 채워 비행 온 나라를 투어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투어 일정이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야지 하루라는 시간 동안 그 나라를 돌아볼 수 있기에.

알람이 울리고, 피곤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상태로 알람을 끈다.

'너무 졸린데, 투어 나가지 말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지만, 이미 팀 언니들과 약속을 했기에 렘수면 상태로 주섬주섬 카메라와 선글라스, 여행 책자, 펜, 물을 챙겨 나갈 준비를 한다.


준비를 마치면 아침 뷔페에 내려가 팀 언니들과 간단히 커피와 토스트, 과일을 먹는다.

그리고 셔틀 버스에 올라타 목적지에 도착 전까지 창가에 기대어 쪽잠을 잔다.

1시간 정도를 달리고 나서, 성 소피아 성당으로 가는 셔틀 버스에서 내렸다.

그러자 광활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한국보다는 다소 어두운 바다 색깔, 조금은 진한 바다 향이 코 끝으로 스며 들어왔다.

이국적인 풍경을 눈에 가득 담으니, 피곤을 이기고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바다 향이 좋네."

바다를 거닐며, 혼잣말을 했다.


이스탄불의 바다 향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바다를 거닐고 있는데, 내 눈에 유유자적하게 낚시를 하고 있는 중년의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 여유로움이 참 좋아 보였다.


그리고 내 삶을 돌아보았다.

'내가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간다면,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딱히 있을까?'

라는 반문을 하게 되었다.

조금은 쉬엄쉬엄 주변도 돌아보며 벅차지 않게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듯이
그 나이 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변치 않는 진리다.


나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꽤 열심히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렵게 승무원이 되었고, 하고자 하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비행을 하고, 대학원에 가고, 재즈 댄스를 배우고, 연애도 하고,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가끔은 많은 일정이 벅차기도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기에 즐거움이 컸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을 뛰기 위해서는 '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이젠 안다.

그러기에 문득 너무 힘든 날.

그런 날은 하루를 정해, 온종일 쉴 수 있도록 나 자신에게 '쉼'의 시간을 준다. 날 하루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내려놓는다. 그렇게 푹 쉬고 나면 또다시 몸에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아차 하는 순간 '쉼'이 '게으름'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기에 강약 중간 약으로 잘 조절하여 내 시간을 써야겠다 생각했다.


소중한 내 인생의 젊은 날은 오늘이기에
지금의 나에게 '쉼'과 함께 이 시간을 소중히 쓰고 싶다는 이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훗날 지금을 돌이켜봤을 때
후회하지 않게,
미래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게.
그렇게.'


(2014년 9월 3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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