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차 승무원이 비행하면서 가장 잘한 것

찬란했던 내 삶의 젊은 날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직도 기억난다.
22살 항공사에 갓 입사를 하고 가게 된 동남아 비행. 힘든 비행을 하고 기절하듯 호텔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 뷔페가 끝나기 전 함께 방을 썼던 선배와 함께 아침을 먹기 위해 퉁퉁 부은 얼굴로 내려갔다. 뷔페에는 미리 내려가 계셨던 사무장님들과 시니어 선배님들이 식사를 드시고 계셨다.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러자 사무장님과 시니어 선배님들은

“역시 젊어서 그런지 막 자고 내려왔는데도 너무 예쁘네.”
라고 말씀하셨다.
퉁퉁 부은 얼굴에 화장도 못하고 내려갔는데 예쁘다고 말씀해 주시는 사무장님과 시니어 선배님들 말씀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새 내가 시니어 선배가 되고, 사무장이 되어보니 새삼 그 말뜻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뷔페에 내려온 20대 초반의 후배들을 보았을 때, 젊음이 주는 청량함. 발랄함,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까르르’
웃기 만해도 정말 꽃향기가 날 것만 같은 그런 젊음이 주는 아름다움을.

나도 스무 살, 영원할 것 같던 찬란했던 그 시절을 지나오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의 찬란했던 젊은 날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왜 선배님들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여행도 많이 다녀 보고,
연애도 많이 해보고,
좋아하는 것도 많이 사보고,
충분이 ‘나’로서 있는 시간을 보내라는
조언이 찬란한 그 시절을 보낼 때는
와닿지 않았다.


막상 내가 그 말을 해주던 선배님들의 나이인 서른 중반에 접어들게 되고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아가씨였던 스물두 살의 갓 승무원이었던 내가 어느새 서른 살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시간 속에서 나에게는 '나 자신', 누군가의 ‘딸’, ‘항공사 승무원'이라는 역할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며느리', 한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이 추가적으로 부여받게 되었다.

이 새로운 역할이 주는 좋은 면도 너무나도 많지만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은
스무 살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인걸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내 삶은 젊은 날.


사실 나는 결혼 후 아이를 낳고서도 비행을 하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도록 사랑하는 남편과 친정엄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3살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건 가장 예쁜 나이의 아이를 눈에 담는 감사함도 있지만 쉴 틈 없이 바쁜 나날들이 이어진다. 깨끗한 집을 유지하고, 삼시세끼 식사를 차리고, 아이와 놀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재우면 시계는 어느새 밤 10시가 되어있다. 아가씨였을 때는 24시간이 내 것이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24시간 중 나를 위해 1시간을 쓰는 것도 사치로 느껴지게 된다. 사실상 결혼하기 전에 오롯이 나로서 느끼던 자유는 이제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스무 살을 되돌아보았다.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나의 젊은 날을.
돌이켜보면 지나온 나의 젊은 날의 시간은 그 시간 속에 살았던 일분, 일초 까지도 아깝지 않았다.
다행히도 어린 나이에 나는 운이 좋게도 시간의 소중함을 일찍 깨달았다.

매순간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시간이 가는 게 너무 아깝다.
매 순간 내 감정에 내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야지.
훗날 현재를 후회하지 않게
내 삶에게 미안하지 않게, 그렇게
(2012년 11월 2일의 기록)’


나의 다이어리를 읽다 보면 이렇게 써 놓았던 글귀가 꽤나 많았다.
승무원으로서는 한 달의 반 이상은 비행기와 해외에서 체류하게 되기에 막상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승무원의 시간을 마하의 시간에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도착할 때 매번 적어내는 세관신고서에 해가 바뀌면 1월 중순까지는 2020년을 2019년으로 적곤 했다. 또 틀렸다며, 볼펜으로 찍찍 긋고 다시 2020년도를 쓰곤 했다.

그렇게 장거리 비행을 다녀오고, 봄은 어느새 여름으로, 여름은 어느새 가을로 그리고 겨울이 되어 또다시 새로운 새해가 밝았다.

주변 승무원들은 말하곤 한다.


"비행만 했는데, 나이만 먹었어. 아쉬워"


사실 승무원의 직업 특성상 비행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에 해외 스테이션에서도 푹 쉬어야 하고, 한국에 도착해서도 푹 쉬어야 하기에, 생각보다 비행만 하고도 1년이 금방 간다.


내가 12년 동안 비행을 하며
가장 잘했던 일은
바로 하루 24시간을 쪼개며
소중히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비행하고, 여행하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사랑했다.


늘 내 인생은 바빴다. 스무 살 이후 단 한 번도 인생을 살면서 '심심해'라는 말을 해본 적 없는 삶을 살았다. 가끔은 벅찬 일정을 소화하기가 힘든 적이 있긴 했지만 돌이켜보니 그 모든 경험은 내 안에 자산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나는 더 나은 나로 성장해있었다.


2021년.

또다시 나에게 선물처럼 365일이 찾아왔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그토록 살고 싶어 하셨던 그 귀중한 하루가 시작된다.


딸아, 유한한 삶에서
너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니?


라는 숙제 같은 유언을 남기시고 떠나신 내 아버지를 기억한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뜰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씀하셨던 나의 아버지.

내가 사랑했던 아버지를 기억하며, 아버지의 몫까지 살아내는 2021년을 보낼 것이다.

매년 나에게 했던 다짐처럼


'매 순간 충실히 살아가자.
훗날 현재를 후회하지 않게
내 삶에게 미안하지 않게, 그렇게'

라는 마음으로 매 순간 살아간다면 백발이 되어 노인이 된 내가 내 인생을 돌이 켜봤을 때 후회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인생에 후회하지 않게 늙어가는 것.

인생의 마지막 순간.

내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신

"열심히 살아서 후회가 없다."

는 말이 내 마음속에 아직 살아있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 마음.

이것이 내가 12년 동안 비행을 하며 가장 잘한 일이었다.


지금,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2021년 ,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오늘이 당신의 가장 젊은 날이고,
삶은 유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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