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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바보 아빠가 죽었다 2 (PM 8:00의 부재)

누를 수 없는 전화번호를 가진다는 것.

PM 8:00

어김없이 찾아오는 부재.

밤 8시면 늘 아버지와 1시간씩 영상 통화하던 시간들.

누르고 싶은 전화번호.

누를 수 없는 전화번호.

은 시계만 쳐다본다.


내가 쓴 ' 바보 아빠가 죽었다'라는 글을 보 다시금 가슴이 철렁하는 건, 어쩌면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기보단 어딘가에서 살아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 자존감의 원천.

새로운 것을 도전할 때도 우리 딸은 잘할 수 있다고 늘 응원해주시고, 딸이 삶에서 만난 축하받는 자리 늘 내 아버지는 환한 미소로 내가 좋아하는 프리지아 꽃다발을 들고 서 계셨다.


"역시 우리 딸 최고야.
대단해. 잘할 줄 알았어."


웃으시는 모습이 직도 눈에 하다. 

늘 나를 믿어주었던 한 사람.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나의 우주.

내가 살았던 우주는 아버지 덕에 참 따뜻하고 행복했다.


손 잡고 걸으면 느껴지던 아버지의 따뜻했던 온기와 늘 따뜻하고, 좋은 말만 나에게 하셨던 내 아버지.

삶의 좋은 순간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아버지의 깊은 사랑과 지지가 문득문득 생각나서 일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삶에 좋은 날이 찾아오면 울기보단 웃으면 아버지한테 인사 건네는 날이 많아지겠지 생각해본다.

그래도 다행인 건 눈 감으면 생전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는 것.
마지막까지 내 앞에서 웃어 보이셨던 그 모습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오시며 살이 많이 빠지셔서 걱정하자, 걱정하지 말라며 장난치듯 볼에 바람 넣으시고 웃으셨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해서 마치 손을 뻤으면 아버지의 얼굴을 만질 수 있을 것 같고, 따뜻하게 안아드릴 수 있을 것만 같다.
현실은 그럴 수 없기에 내 머릿속에 가슴속에 계시는 내 아버지를 꺼내어 마주 보아 본다.

우리가 함께했던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7일.

그날 기억한다.

슬픈 기억보다 죽음 앞에서도 우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보며 웃어 보였다.

심지어 아버지가 밥을 두 수저도 못 넘기셨을 때까지-
식사를 거의 못 드시는 아버지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정말 돌아가시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 하지만 불안이란 감정은 전염됨을 알기에

그 불안을 감추고, 나는 아버지께 말했다.


"자식이 배부르면 부모는 배부르다고 했어요. 내가 아빠 대신 많이 먹어줄게요."


라며 아버지께서 거의 손도 못 대신 음식을 흐르는 눈물을 감추며 맛있게 먹는 척을 하던 날들. 눈물이 섞여 짠맛이 나던 음식들이 기억이 난다.
아빠는 우리 딸 입에서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르다고 웃곤 하셨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내 아버지의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7일의 기억이 무섭고, 힘든 것이 아닌 사랑과 웃음으로 우린 그 시간을 채웠다.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그 시간들은 아버지가 딸을 사랑했던 시간과 그런 아버지를 사랑했던 시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가끔은 멍해 보이시던 아버지.

암이 많이 진행되면 정신이 멍해진다고 하던데 혹시 그런 건 아닌지 덜컥 걱정이 되었다.


"아빠 아프지?"


라고 물어보아도 아버지는 애써 미소 지으시며


"괜찮아."

말씀하셨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

내 아버지는 사랑하는 딸이 걱정할까 봐 과 죽음 그 문턱에 서서 가늠할 수 없는 아픔을 참고, 웃음을 건네셨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헤아릴 수 없는 마음에 지금도 눈물이 고인다.


아버지의 그 사랑 덕에.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생전 모습들은 대부분 아버지가 웃고 계신 모습뿐이었다.

아버지는 아셨을까?

나에게 이 모습을 기억하게 하시려고, 그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참고 계셨던 걸까?


아버지가 보고싶으면 찾아가는 곳.
바람에 흔들리는 종소리를 들으면 마치 아버지가 어서오라고 반겨주시는 느낌이 든다.


흩날리는 바람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좋은 날 더 생각나는 한 사람 있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


PM 8:00

시계를 가만히 본다.

누를 수 없는 전화번호.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잊고 있던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한다.


이런 날은 아버지의 사진과 영상을 모아놓은 폴더로 들어간다.

체크 난방을 입으신 다소 쑥스러운 미소로 기타를 큰소리로 내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주시는 내 아버지와 마주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던 시간들.

이렇게 내 평생 생일 선물도 만들어주 내 아버지.


딸아이가 인생에서 처음 만난 축하받는 날 늘 아버지는 나에게 손 편지를 건네셨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항공사에 입사했을 때

내가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내가 결혼을 했을 때.

내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의 첫 번째 생일 때.

그렇게 하나, 둘

어느새 내 서랍 안엔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편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딸이 인생에서 만난 축하받는 순간 내 아버지는 손편지를 주셨다.


PM 8:00

아버지의 부재가 찾아오면

나는 내 안에 살아 계시는 아버지를 만난다.

그것으로 되었다.


평생 이 모습 그대로 내 안에서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지켜줄 한 사람이 내 안에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내 우주였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내 안에 우주를 만들어 주시고 가셨다.

그것으로 되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미지 출처: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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