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잘하지 않아도 돼. 즐거웠으면 된 거야.
세 살 아이와 함께 엄마도 성장한다.
by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 Jan 30. 2021
아이와 함께 놀고 있던 오후 5시.
우연히 컵케이크 모양으로 그려진 카드를 발견한 딸아이가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말한다.
"엄마. 이게 뭐야?"
"응. 이건 엄마가 우리 아가 2번째 생일 때 써준 축하 카드네."
그러고는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세 살 아이에게 카드에 쓰인 내용을 천천히 읽어주었다.
아이는 편지 내용을 다 듣더니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카드를 들고 거실로 갔다.
그러고는 거실에 있는 인형 친구들에게 카드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내 생일카드야. 정말 멋지지? 축하 카드 받으니 너무너무 행복해."
엄마가 써준 생일카드 하나에 온 마음 다해 기뻐하는 아이를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듯 세 살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에선 내가 놓치고 살았던, 순수함과 작은 것에서 찾아오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아이는 어느새 자신의 크레파스가 담긴 통을 가지고 와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축하 카드에 그림 그릴 거야."
그리고는 크레파스로 열심히 카드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카드랑 크레파스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행동에 궁금증이 생긴 나는
"왜 거실에서 안 그리고 안방에 와서 그리는거야?"
라고 아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곰돌이 인형이 그림 안 예쁘게 그렸다고 할 것 같아서 여기서 그리는거야."
라고 답했다.
깜짝 놀란 대답이었다.
나는 조용히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아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림을 잘 그리지 않아도 돼.
OO가 지금 그림 그릴 때 즐거워?"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된 거야. 그림을 그릴 때 즐거우면 된 거야. 꼭 잘 그릴 필요는 없어."
라고 말하자 아이는 걱정이 사라진 듯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이 떠올랐다.
비행을 쉬면서 처음 온전히 살림을 하며, 아이를 돌보고 있다. 하루를 보내기 위해 아기 엄마가 해야 하는 일들은 정말 많다.
아침, 점심, 저녁 세끼의 밥을 차려야 하고, 밥을 먹은 것에 대한 정직하게 쌓여가는 설거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환기를 시키고 청소기를 돌리고, 이부자리를 펴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놀아주다 보면 어느새 시계는 7시.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목욕을 시키고, 아이를 재운 후 놀이방 정리를 하면 시계는 10시를 향해있다.
가정주부로 생활한 지 9개월 차.
가끔 익숙하지 않은 이 생활이 벅찰 때도 있다.
비행을 가면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이 보장되었기에, 나 혼자만의 시간이 보장되기 어려운 세 살 아기와 함께하는 가정주부로서의 삶.
이 생활이 벅차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에 생각해보았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이 마음에서 비롯된 감정인걸 알았다.
문득 오늘 아이와의 대화에서 했던 말이 나에게도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잘하려고 노력할 필요 없어. 지금도 충분해.'
나를 다독이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24시간 바쁜 아기 엄마가 완벽할 수 없기에 맛있게 밥을 먹고, 즐겁게 놀며 건강히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조금은 정리가 되지 않은 방을 보아도 당장 치울 힘이 없으면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괜찮다 하는 것.
야근하고 온 남편이 나에게 건넨
"고생했어. 여보. 오늘 힘들었지?"
라는 따뜻한 말을 들으며
"오늘 괜찮았어요. 자기도 늦게까지 일하느라 고생했어요. 어서 씻고 푹 쉬어요."
라고 따뜻하게 답 하는 것.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로 오늘의 삶에 찾아왔던 힘듦을 녹이고, 오늘 있었던 일상을 나누며, 정갈하게 펴진 침대에 지친 몸을 쉬게 한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잠든 지금.
남편과 아이가 잠든 이 순간을 좋아한다.
내가 사랑하는 두 존재가 숨 쉬고 있는 이 공간을.
잠이 든 남편과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두 존재가 있는
이 공간이 나로 인해
행복 가득한 곳이 되도록 해야겠다.
너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내려놓자.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오늘 우리 모녀에게 찾아온
'잘하지 않아도 돼. 즐거웠으면 된 거야.'
라는 한마디에. 사랑하는 내 딸은 위안을 얻었고, 엄마인 나는 또 한 번 성장했다.
아기에게 우주인 엄마라는 존재.
그 무겁지만 빛나는 자리를 늘 기억하며, 보석처럼 빛나는 아기를
잘 키워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0.12.10 목요일의 기록)
*이미지 출처: https://candijonesphotography.pixieset.com/stephaniemommyandme/p/MTA4MzYwNzE3MQ==-MjgyMTMxMzQ0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