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자기 결정권에 대하여
놀이워크샵을 진행하면서 나는 상담가도 되었다가 작업치료사도 되었다가 결국은 올바른 어른이 되려고 노력함을 깨닫는다..
"선생님, 너무 더워서 옷을 벗고 싶어요."
-그래? 더우면 한 겹 벗으면 시원해지지 않을까?
"그럴 것 같은데..근데 저는 옷을 벗으려면 엄마한테 허락받아야되요.."
-그렇구나...그럼 엄마한테 잠깐 가서 물어보고 오고 싶은거니?
"어..그런데 엄마는 저 내려주고 가서 여기 안계세요. 전화있으세요? 전화로 물어보게요."
순간, 내 마음이 아려왔다
아이를 이렇게 자립적이지 못하게 일거수일투족을 엄마의 허락 유무로 행동을 취하도록 묶어놓다니..
엄마가 24시간 옆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앞으로 성장하면서 혼자 있을 시간이 얼마나 많을텐데. 이 아이는 그때마다 어떻게 하라구..
그런 안쓰런 마음에 그냥 너가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으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한 가정의 규칙이고 그걸 지키고 있는 아이와 엄마를 존중해야 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되는 건 지금 이 곳 말고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보내며 지내는 시간 중에 이런 모습은 놀림감이 될 거라는 거다. 앞으로 그런 경우가 자주 생길텐데 나는 어떻게 도와줘야할까 고민이 됐다.
-ㅇㅇ야, 그럼 이 곳의 난방을 좀 줄여볼까? 마침 나도 좀 더웠어. 다른 아이들은 어떤지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히터를 잠깐 끄는 방법도 있어. 그건 어때?
"네, 좋아요! 그럼 엄마한테 안물어봐도 되니까요!"
워크샵 6번동안 아이는 빠짐없이, 항상 일찍와서 신나게 몰두했다. 단지 다른 점은, 모두들 2~5명의 팀을 만들고 재잘거리면서 의견을 주고 받고 힘을 합쳐서 진행을 하는데, 이 아이는 혼자서 하고 싶다고 했다. 우선은 의견을 존중하고 그렇게 하도록 했다. 그리고 천천히 함께 하게 되는 기회를 찾아 연결해 주는걸 나의 숙제로 삼았다. 다른 팀들이 시끌시끌 작업하는동안 조용히, 자신의 계획대로 꼼꼼하게 자신의 아지트를(집을) 만들었다.
이 아이는 자신의 의견대로 100% 하고싶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섞거나 다른 아이들의 생각대로 하기가 싫다고 했다. 과정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단지 결과물을 멋지게 만들 목표만 있을 뿐이였다.
결과물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의 즐거움과 우정, 소통 그런 경험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고, 서로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도움을 주고 받고, 실패의 좌절도 겪고, 성공의 기쁨도 겪고 함께여서 위로가 되고, 함께여서 더 큰 기쁨을 느끼면서 자라야 한다. 어른이 시키는대로 하고, 100점 맞아야 칭찬받는 수학문제 풀이만을 하다가 어떻게 갑자기 성인이 되서 알아서 창의적으로, 독립적으로 살 수 가 있단 말인가?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이 개인적이다. 남과의 소통 따위 귀찮아한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함께 어울리는 환경에 노출되고 부딪히고 느끼는 기회가 필요하다. 그래야 어른이 되었을때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힘을 키울 수가 있다.
보조강사를 11살 남자어린이 (내 아들)로 두기를 시도한 데에는 여러가지 마음이 있었는데 그 중 한가지가 어른의 도움을 받는데에 익숙한 아이들이 또래의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의 흐름을 흘리고자였다. 완벽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은 존재, 나와 비슷한 존재이면서 다름일 것이고, 혼자서 못 할 것 같아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도움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어른의 도움이였다면 뚝딱 해결해주었겠지. 하지만 뚝딱이 안될 수 있다. 그러면 혼자서 다시 더욱 고민하고 시도하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또 어쩌면 기대하지도 않았던 사사로운 위로와 관심이 고마울 수도 있고, 작은 도움이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수도 있다. 그러한 나의 생각에 동의하고 그 존재로써 함께 해 준 아들에게 고맙다. (물론, 그의 시간과 노력에 상응하는 수고비가 동의하는데에 한 몫 했지만!)
워크샵의 중간즈음, 그렇게 혼자서 또는 삼삼오오 모여 만든 아지트들을 한 데 묶기로 했다.
"너희들 각자의 소중하고 멋진 아지트를 만들고보니 그게 모여서 하나의 마을이 되었어! 마을에는 길이 있어야 지나다닐 수가 있지? 이제 길을 만들어서 서로의 아지트로 연결되서 놀러가보자.“
혼자서만 작업하던 아이는 드디어 다른 아이들과 같이 길을 만들어가며 대화를 하고 자신의 아지트 구경도 시켜주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아이와 공감대가 형성되어 서로 같이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도 조금씩 무언가 느껴질까?
이 아이는 칼도 조심히 잘 다루고, 자신이 생각한대로, 그림으로 표현도 잘하고 실제로 잘 만든다.
"저는 뭔가 만드는 걸 무지 좋아해요. 그런데 집에서는 절대로 못해요. 엄마가 지저분해진다고 못하게 해요..
-그럼 너가 깨끗이 치우겠다고 약속하면 어때?
"그래도 안되요. 깨끗하게 못치울거면서 거짓말이래요..저는 매일 뭐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여기 오는게 너무 좋아요."
부모들이 자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아이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그 아이의 성장 과정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아이가 가진 색깔대로 그대로 뿜어내면서 자연스럽게 내면이 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주어야한다. 낮은 점수의 과목을 위로 올리기 위해 학원 한 곳을 더 보내는 것보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살펴보고 잘 꺼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성향이, 재능이, 색깔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시작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은 미성숙하다. 그런 단어를 붙이면서 왜 완전하고 완벽하길 요구하는 것일까?
어린이들은 불완전한 존재다. 아직 성숙하지 못했고, 그래서 보호자가 필요한 미성년자이고, 운전면허시험을 신청할 수도 없다. 그래서 부족하고 불완전한 그대로가 괜찮다. 배우면서 성장하고 있지 않은가?
잘하라고 재촉하는 보이지 않는 채찍질보다 올바른 삶의 지혜를 전해주며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