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류가마 (飛龍窯, 히류우가마)
오늘은 레지던시 동기(?)인 Karl과 함께 도자수업을 나갔다. 오래전부터 도자를 만드는 방법은 배우고 싶었는데 일본에서 그리고 사가에서 도자 수업을 듣게 되다니 무척이나 설레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오전엔 밀린 빨래를 했다. 간단히 슈퍼에서 사 온 기무치와 여러 재료로 내 나름의 김치볶음밥을 뚝딱 해 먹었고 전기 자전거를 타고 가마로 이동했다.
집에서 가마로 가는 길은 조금 험난 했는데 칼이 워낙 빠르게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속도를 따라가며 쫓아가기 어려웠다. 다케오 마을을 벗어나 옆 동네로 가야 했고 멋진 다케오의 댐을 지나 중간에 긴 터널이 벗어난 다음 열심히 시골 논밭을 달리면 가마가 나타난다. 정말 자동차를 타고 가고 싶었다. 차로는 다케오 온센역에서 15분 거리라는데 이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가는 나를 보며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했다.
내가 이제 배울 도자 수업의 가마는 히류가마이다. 이 부근에서는 가장 큰 가마라던데 듣던 대로 엄청 컸다.
어찌나 가마가 큰지 한 번에 약 12만 개의 컵을 구울 수 있다고..?
(사가현 다케오시 다케우치초 마테노 24001-1)
이곳에서는 중간중간에 가마가 구워지는 환경과 구워진 도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나의 박물관처럼 사용이 된다.
재밌는 일화도 있었는데 히류 가마가 한글로 하면 비룡 가마 정도 되는 것 같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 가마 뒤엔 아주 큰 산이 있는데 예전에 왕 뱀이 살았고 종종 사람들의 음식이나 논밭의 재산들을 먹었던 것 같다. 일종의 마음의 골칫거리였는데 어느 날 일본인 히어로 다메토모가 나타나 비룡을 활로 쏘아 무찔렀고 뱀은 산속을 도망을 갔다고..
그리고 가마에 도자를 굽기 위해서 불을 붙이면 그 뱀이 불 속에 번쩍하고 잠에서 깨어나 용이되어 나타난다는 뭐 그런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용의 캐릭터가 떡하니 가마 앞에 전시되어 있다. 역시 스토리가 있는 곳은 재미있다.
작은 가마도 있다. 이곳은 공원을 에워대고 있어서 간단한 하이킹이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난 체력이 안되므로 하이킹은 패스. 그래도 작은 걸음걸음을 해서 가마 뒤에 올라왔다.
동네 공기가 참 좋다. 사가현 다케오시 다케우치초에 있는 히류가마.
매년 2월에 히류가마에선 도자기 축제를 연다는데 꼭 한번 와보고 싶다.
예약이 없어도 이 공방에서는 사람이 없으면 수업을 받을 수 있고 완성된 도자는 예쁘게 구워서 한 달 뒤 보내준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까지 보내주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유약은 총 4가지 중 고를 수 있고 비용은 2500엔! 나는 흰색으로 고른 거 같은데....
색은 검정, 흑색, 베이지, 흰색 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자 수업은 어렵다. 보조 선생님인 유카상이 옆에서 잘 도와줬지만 세상에 들어 올리는 과정에 내 손가락 자국이 남았다. ^^ 하하.. 그렇지만 저 흔적을 보며 나중엔 아 첫날 그랬지~ 하고 웃을 수 있는 한 부분이 될 것 같아 다시 수정 없이 구워달라고 요청했다.
양 옆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노련한 모습으로 도자를 만들고 계셨다.
앞으로 도자 수업을 여기서 배우고 진행할 것이기에 나는 스탬프를 구매했다. 총 4번 올 수 있는 스탬프이고 금액은 3500엔 정도. 4번의 굽기도 포함된 금액이다. 개인보관함도 주고 흙은 별도 구매. 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난 한 달 정도 배울 거기에 2kg 구매함. 980엔.
한번 오면 4시간 정도 도자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고 망하면 옆에서 가끔 예쁘게 도자 성형을 도와주신다.
오늘은 첫날이니 이것저것 하다 카레그릇을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다 망해버려서 아무것도 만들지 못했다!
원래 첫 술에 배부르지 않은 법이다. 마음을 비우고 손 끝 감각에 집중해서 다음에 다시 도전을 하도록 하겠다.
도자를 처음 접하다 보니 이렇게 손목에 무리가 가고 손가락 마디가 아픈 일인지 몰랐다. 세심한 과정이 필요한 일이라 그런지 손끝 마디마디에 신경이 쓰인다. 온몸의 신경을 동원해 비워내고 담아내는 것을 만드는 일. 멋지다 정말.
공방에서 한 세 시간 정도하고 나니 손가락과 손목이 극심히 아파 조금 쉬었다. 배고파서 알짱거리니 여기 간식 박스가 있다며 마음껏 먹으라고.. 감동했다. 내가 챙겨 온 편의점 녹차와 약간 매콤한 맛의 센베를 먹었다. 이따 자전거 타고 다시 집에 가려면 든든하게 먹어야 하지만 양심상 두 개만 집어 먹었다. 다음엔 간식을 좀 챙겨 다녀야겠다는 다짐. 나는 연비가 좋지 않은 자동차와 같아서 무슨 일을 도모하거나 하기 위해선 꼭 충분한 연료와 깨끗한 관리가 필요하다.
공방의 모습은 이렇다. 다들 개성이 가득하고 잘한다.
공방에서 나오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좀 아쉽다. 못생기더라도 완성했었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컵 하나를 만들긴 했지만 혼자 연습하는 과정에서 간장 종지라도 만들어 남길걸 하는 생각. 욕심이 커서 마음이 앞선 탓이다. 담는 그릇을 만들기 위해선 비우는 과정을 배워야 하는데 이미 채울 생각부터 한 터이다.
옆에서 호주에서 온 칼은 자기의 전공이라며 만만하게 자기가 도자를 만드는 것을 보여주었다. 저 아이보리색 재료는 포세린이다. 칼은 이 날 간장종지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도자를 만들기 전에 커다란 도자기를 보여주며 이런 것을 만들 것이라 했는데 아무것도 채울 수 있는 그릇을 만들지 못한 건 나와 같이 본인도 마음을 비우지 못한 까닭인 것 같다. 포세린은 특히나 다루기 어렵다고 했다. 나도 후에 포세린을 다루는 날이 오겠지?
오늘의 도자 수업은 이렇게 끝이 났다. 약 4-5시간이 소요되었고 자전거로는 왕복 한 시간이었다. 도예 수업 끝나고 나는 작업실로 향해 페인팅을 하러 갔다. 내게 잘하고 익숙한 일을 해야 오늘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 나에게 작은 위로와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도자 수업을 하며 생각을 비우는 행위는 페인팅을 하며 생각을 비우는 행위와도 같아 마음이 편했다.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에 본질은 역시 창작자의 마음인 것이다. 정성과 시간을 쏟아 만드는 물건에 대한 마음은 쫓기는 것이나 목적성을 두고 만들지 않아야 고스란히 보는 사람에게도 그 마음이 보이는 것 같다.
오늘로써 다케오에 거주한 지 약 20일째가 되었다. 나는 이 도시가 굉장히 마음에 든다.
도자기는 어디에나 눈을 놓아도 만날 수 있고 다케오를 둘러싼 자연은 조용하고 드넓다. 따뜻한 겨울이 내 마음에 제일 들지만 아직 12월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차근차근 이 도시와 남은 날들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