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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킴 May 02. 2021

An invitation to everyday life

Chapter.1 : 일상을 담는 작업과 내 귀여운 오브제들

하루를 반복하면 그것이 일상이 된다. 일상(日常)의 사전적 의미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지만 아쉽게도 누구나 일상이 갑작스레 끝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일상이 무너지고 찾아오는 순간의 편협한 마음과 증오, 분노, 슬픔과 억울함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가득할 때는 어떤 하루를 보내야 할까? 그러한 시점에서 나는 개인 정체성에 대한 삶의 자각 변화가 일어났다. 관용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와 타인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내게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통해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힘들겠지만 무탈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지난 과거의 기억을 용기 삼아 쥐어 짜내며 살아내는 것이다. 인간은 예로부터 변화에 무쌍한 생명체라 했다. 하루하루 치열한 전쟁 같은 삶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지키고 싶어 하는 걸까? 바로 평범한 일상이다.


무한하지 않은 삶의 주어진 제한 속에서 살아 있음을 기록하는 것은 흥미로웠다. 이전에 의식하지 않았던 무의미한 기록들조차 인식의 변화를 겪고 난 후, 작고 소소한 내 일상들은 당시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기록물이 되었다. 그 속에 기록된 크고 작은 오브제들은 각각의 사적인 히스토리를 가지고 상황과 시대적 배경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지키고 연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록을 반복하고 작업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삶에 대한 고찰과 인식을 상기시키는 행위를 작업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일상이 담긴 사진들을 찍고 작업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  오브제들은 각기 다른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제껏 모아 온 소품 대부분은 뉴욕에 거주할 당시 직접 구매해 가지고  것들인데, 그중 하나인 '뉴욕'. 퍼그 모양 cookie jar은 내 컬렉션 중 가장 오래된 오브제이다. ‘뉴욕’은  없이 보내던 유학 시절, 크리스마스 당일에 메이시즈를 방문해 나에게 스스로 위로  응원의 선물하고 싶어 $20 주고 집으로 들고 와 유학 시절 내내 함께한 친구이자 든든한 집 지킴이었다. (몸통에 귀중품을 숨길 수 있고 유광 세라믹이기에다가 사이즈도 실물 강아지 사이즈와 엇비슷했기에 반짝 눈에 띄는 것이 실제 강아지 못지않았고 내 귀중품을 잘 지켜줬기에 본인의 역할은 톡톡히 한 것 같다.) 당시에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지만 키울 형편이 안돼었기에 하나둘씩 수집한 강아지 또는 동식물 형상의 오브제들은 하나의 컬렉션 취미가 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나를 위한 토템이다. 가만히  자리에서 나를 위해 소리 없이 안녕과 행운을 빌어주는 것들. 보이는 토템들은 내가 성장했던 지난날의 뉴욕을 포함해  도시에서 수집한 이름 또는 애칭을 여주었. 가령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식물의 애칭은 ‘덕수이다. 무엇이든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애정은 시작된다. 매일 마주하는 집에서 지난날의 위로와 힘이 되었던 오브제들이 함께한다는 것은 언제나 보아도 좋다. 가끔 속으로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요새  침대 머리맡에는 '언양'이라는 강아지 토템이 항상 함께 한다.


항상 내 머리 맡에서 잠이 잘 들 수 있게 쳐다봐주는 '언양'은 언양 휴게소에서 만났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박한 일상들이 모여 커다란 삶을 이룬다. 특별하지 않고 평범하지만 이러한 평범한 하루의 반복을 지켜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낸다. 사적인 공간의 일상을 담은 작업부터 소박한 야외활동의 순간까지 하나 둘 조각을 모아 개인의 삶을 대변하고 나아가 동시대 삶을 표현하고자 했다. 하루를 반복하는 일상을 통해 삶의 목적보다는 과정의 길이 더 중요하다 생각되는 시점이었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일상을 매개체로 기록하고 이를 창작 활동하는 행위를 통해 하루가 반복되는 삶을 살아낸다. 완성된 작품은 작가의 삶과 나아가 동시대의 모습을 대변하여 존재한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창작된 작품의 존재는 관람하는 대중으로 하여금 완성이 된다. 이는 작품 속 함의를 전달하여 살아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일상을 지키는 사람들의 안녕을 빈다.

 
 내게 살아있음의 인식은 구멍 뚫린 도넛으로 비유할 수 있다. 흔하게 집어 든 도넛의 한가운데 뚫려 나간 도넛 홀로 부재(不在)를 인식한다. 도넛 홀이 비워진 그 구멍의 크기는 채워져야 하는 부분의 부재로서 이러한 존재 유무의 인식은 내게 살아있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이는 곧 일상의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던 것처럼 '물론 도넛의 맛에는 차이가 없다'겠지만 적어도 더 특별한 도넛이란 기분은 들겠지 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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