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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연지 Dec 12. 2016

나도 너처럼 아팠으면 좋겠다

굿바이, 디스크 - 일하다 아프면 회사에서 "고생했다"고 얘기할까요?

고등학교 때다.

수능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왔는데

안그래도 어정쩡하던 성적이

이번엔 참. 형편없이 나왔다.


부모님 사인을 받아오란 담임 얘기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내 머릿속엔

아팠으면 좋겠다

생각뿐이었다.


'혹시 열은 안나나' 이마를 수십번 짚어보고,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것 같다면서

억지 기침을 해봤지만..

목만 아팠다.


아주 찰나지만

아주 아주 아주 가벼운 교통사고가 나

"발목에 금 정도만 가서 한 사나흘만 입원할 수는 없을까"는 생각도 했다.


러나

쌩쌩 달리던 자동차를 보며

이 육중한 기계에 내가 부딪히는 상상만으로도 무서워서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그러다 결국 집 앞에 도착했고

스스로 얼굴이라도 때려서 코피라도 터뜨려,

피를 질질 흘리며 들어가야겠다 싶었지만

내가 나를 때려 피보게 하는 용기조차도

차마 들지 않았다.


결국 힘없이 터덜터덜 들어갔고

성적표를 보여줬는데


"에고..니가 더 괴롭겠지.

담엔 좀 잘 봐라"

그러고 마셨다.

(예상밖의 반응이라..

혼내기도 지쳐서 거의

체념, 혹은 포기..였던 것은데..

뭐..암튼 그렇게 고비는 넘겼다..;)


그때, 바로 든 생각은

아..내가 이 순간을 모면하고자 차에 뛰어들기라도 했다면,

내가 나를 때려 코피라도 흘렸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는 것이다.


혼났으면 혼났지

어차피 시험은 매달 있는데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지말입니다)

단지 그 순간을 피하기 위해서 내 몸을 상하게 하는 것만큼

바보같은 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기치 않은 디스크 진단에 휴직을 하게 됐다.

꿈많고 욕심많은 내게

지금 앞만보고 달려가도 매일 늦었다, 뒤쳐졌다 하는 나였기에,

'휴직'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기독교인이지만 인터넷 사주, 운세 풀이 등등

현금 결제까지 하면서 그런 것에 나의 앞날을 남에게 물어볼 정도로

많이 불안해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보는 사주마다

'지금은 휴식이 필요하다',

'도마 위에 올려져 허리가 두동강 나기 직전(이때 정말 소오름)'이라는 등

그런 풀이가 때마침(?) 나왔고

(지금 와서 돌아보기로는 일부러 그런 것만 찾아본 게 아닐까..하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과 더불어..

나는 그렇게 쉬기로 했다.

 

수술을 했다면 물론 뭐 수술하고 일주일 정도 쉬었다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수술 대신 휴직을 하고 더이상 아프기 힘든 몸, 건강한 몸을 만들어서

"오래오래 기자로서 일해야 하지 않겠냐"는 선생님의 말이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휴직을 하게 됐다.

그러나 디스크로 인한 통증보다도 괴로운 건

가만히 바닥에 누워 멀뚱멀뚱 천장만 보며 누워있어야만 한 것이다.


아무리 디스크가 심해도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다.


다만

그 통증이 사라지는 때까진 운동도 하지말고 누뭐만 있어야하는데

정신은 멀쩡한데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던 그 시간이 너무 지옥같았.


그렇게 무기력하고, 무기력에 지쳐가고 짜증만 치솟던그때

우연히 A에게서 연락이 왔고

대뜸,

나도 아팠으면 좋겠다


는 말을 내게 던졌다.


참..

외로웠다.


아프면 서럽다고

그땐 지금보다 또 어리고 많이 모자라서..

위로만 받길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그 말은 좀 아니지 않나..


마음 다 누르고 A에게

"아프면 돈 들어.

난 건강한 니가 부럽다"고 얘기하고 말았다.


그때 A가 참 원망스러웠다.


아무리 디스크 환자가 겉은 멀쩡한 나이롱 환자라지만

또, 내가 아무리 편하다지만

그런 말은 속으로만 해도 되지 않았을까.


순간 울컥해서

"너도 그럼 몸을 혹사시킨 다음에

병원도 가지 말고 악화시켜서 꼭 쉬도록 해"

라고 말할뻔 했다.


물론, 이해는 한다.

얼마나 자기도 직장 생활이 힘들었으면 그랬겠냐마는

일하고 싶지만 누워만있을 수밖에 없는 내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 내던진 A가 야속하고 미웠다.

지금도 가끔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가 들리면

그때가 생각난다.

(난 정말 뒤끝이 심하거든..)


아프지 않기 전엔 건강의 소중함을 모른다.

아프지 않기 전엔 아프지 않은 지금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디스크 진단 뒤  2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그때 뭘 그렇게 힘들어했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몸을 잘못 가눴을때 느껴지는 통증보다 괴로웠던 건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과

예상을 비껴나간 직장 동료, 선후배들의 반응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너무 일만 하는 친구나 주변 사람들을 보면 꼭 이 얘기를 건넨다.


"몸 상해가면서까지 너무 무리해서 회사일에 목매지 말라"고.


그러다 행여 아프라도 하면 회사에서,

"그래 너 그동안 열심히 일했지, 얼마나 힘들었니 조금 쉬다와라"

라고 해줄 것 같냐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기대를 하지 말라고 꼭 전하고 싶다.

이런 얘길 해줄 사람은 가족과 친구뿐이다.


회사는 회사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또 동료인 자기 수고를 거들어 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자기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사람은 사실 가치가 없다.


어쩌면, 내코도 석자여서..

아픈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지 않아서,

도와줄 여력이 없어서..

그런 구실을 만드는 것일수도 있다


아파서 휴직하는 사람한테

나도 너처럼 아팠으면 좋겠다고 말하기 전에,

자기가 놓인 상황이 힘들다면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해나가길 바란다.


아프면 좋겠다고?

부모님께서 이말 들으시면 참 좋아하시겠다.

그동안 온갖 설움 참아가며 열심히 모은 돈

병원비로 다 써봐라.

그런 마음이 과연 들까.


그리고, 아프면 내가 제일 고생이다.

감기만 걸려도 당장 머리 아프고 코 막히고 기침나 괴롭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가고 싶은 데도 못 가지 않나.


확실한 건

일하다 아프면 모두 내 손해라는 것.

내 아픔보다는

내가 아파서 생기는 업무 공백에

관심을 둔다는 것.


그래서 회사 안에 누군가 아프면

다른 직원들은 아픈 직원 걱정보다

일이 늘어날 자기 걱정을 하게 되고

그 걱정은 짜증과 비난으로 아픈 직원에게 꽂힌다.


또 아프다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아,

이를 회복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아팠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할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거나 1분이라도 플랭크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회사 안에서 자기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하루라도 빨리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

내가 살아야 세상이 있고,

성공하고 싶으면 건강이 우선이다.


건강은 자신감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줬고 열심히 일하다보니 좋은 일도 생기게 됐다. 매사.. 그저 감사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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