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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연지 Nov 19. 2016

아무도 내 행복을 방해할 수 없다

디스크 女기자, 언론사에서 살아남기 ④ 내 이름으로 살기, 나 다워지기

"아무 것도 모르면서 헐뜯기는 참 쉽다"


내가 얼마나, 어떤 마음으로, 악착같이 운동했는지 알기는 할까,

아니 .. 알고 싶기는 했을까.




집-회사(출입처)-헬스장이 하루 일과였다.

시댁이나 친정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놀러간다거나 집 앞에 영화관이 있지만,

지난 추석때 시부모님과 영화 '히말라야' 관람이 마지막 영화였다.


그저 시간 나면,

틈만 나면 운동했다.


처음엔 의무로 시작했지만

운동이 너무나 재밌어진 탓도 크다.


저녁 약속 자리가 새벽에 끝나도 잠을 줄이더라도

먹은 김에 근력 운동 30분이라도 하고 잤고


화장실 갈 때마다 스쿼트 30~50개씩,

엘리베이터보단 계단을 이용하고

복도에 아무도 없을 땐 런지로 한 바퀴 돌기도 했다.


역대 최고의 폭염에 에어컨은 틀고 자면서도

허리에는 늘 온찜질기를 켜고 잤고


건강을 위해 저염식과 저당식을 늘 지키려 애썼다.


그대들이 영화관 가서 팝콘에 콜라 먹고

커피숍에서 카라멜마끼아또에 티라미스 먹을 때

곱창이나 불닭발에 소주 한 잔 할때


고기라곤 닭가슴살에 흑염소즙 먹고

돼지고기 목살에 탄산수 마셨다.


정말 매운 게 먹고 싶을 때는

마늘과 고추로 그 욕구를 해소했다.


아무리 좋은 치료도 내 몸에 들어가는 음식이 제대로 안 받쳐주면

아무 소용이 없어서다.


그렇게 그냥

자고 싶고

눕고 싶고

달고 짠거 먹고 싶은 유혹과

매번 싸우고 이겨내면서 지금의 내가 됐다.


그런데 편해서 그렇다니?

한가하게 몸이나 만든다니?


심지어 '품위 유지 위반'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내가 남자였어도 이런 얘기까지 들었을까?


엄연한 규정을 내가 '기자'라고 해서 지킬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내가 기자 타이틀로 대회를 나간 것도 아니고

주말에, 쉬는 시간에, 내 돈 내고 나간 것이다.


더구나 심지어, 경찰팀 지원 숙직 근무(아무도 안하려함)도 자원해서 했고

5월 황금연휴에 낀 이틀간의 기자협회 축구대회도 빠지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나가서 목 터져라 응원했다.


누군가 그랬다.

이게 품위 유지 위반이면,

"여름에 워터파크도 못 가겠다"고.


참가자만 남녀 종목별로 합해 900명쯤 되는 대회에서

사진이 찍혀 올라오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더구나 내가 입상할 거란 생각도 기대도 안했다.


그런데 입상도 하게 되고 사진도 우연히 찍힌 것이다.


근데 만약 이게 문제라면

친구들과 혹은 가족들과 워터 파크에 갔고

기분 내려 비키니를 입고 갔는데


한여름 스케치차 나온 지상파 중계차에

비키니를 입은 내 모습이 찍히기라도 하면

그것도 품위 위반인 거 아니냐는 것이다.


내가 아팠을 땐 아프다고 비난하거나 정작 신경도 안썼던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겨들면서 나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데 넌덜머리가 났다.


입사 4년 만에 건강 잃고

입사 6년 만엔 사생활도 잃게 되는 구나.


나는 취미도, 사생활도 없는

기자로만 살아야하는 건가.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나로서 최선을 다해 살고 싶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있도록,


그 수단으로 기자라는 직업을 택했을뿐인데..


물론 그 직업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찰나의 보람과 기쁨으로

아득바득 버텨오긴 했지만..


기자라는 직업에 나 자신이 매몰되고 싶지 않았다.


내이름 석글자.

로 살고 싶었다.


더이상 건강을 잃고

사생활을 잃고

나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사표를 냈다.




번외편)

[그톡록 원하던 직장에 사표를 냈습니다] 글 싣는 순서


 디스크 女기자, 기자로 살아남기 - 언론사 입사기 '지옥행'

② 조금만 더 버티면 웃을 수 있을까 - 버텼던 끝은 허무했다

③ '역할'이 아닌 '나'로 살면 안되는 걸까 - 내가 불행하길 바라는 것 같아

④ 아무도 내 행복을 방해할 수 없다 - 내 이름으로 살기, 더욱 나 다워지기 

⑤ 사표는 요동칠 때가 아닌 평온할 때 내는 거야 - 그래서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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