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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연지 Dec 09. 2016

숨 쉬는 법을 잊은 것 같아

디스크 여기자 운동으로 극복하다 - 허겁지겁 사는 건 잘 사는 게 아니야

어릴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다.

'끼'까진 모르겠지만 흥이 많았다. 지금도 참 많다.

한때 "가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노래가 엉망이었고

춤 잘 추는 애들이 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았다.

그들에 비하면 난 그저 평범했다.


노력하면 될 수 있을까.


물음표는 지워지지 않았고

그렇게 가수에 대한 꿈은 접었다.

꿈이라는 게 꾼다고 다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란 걸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사실 꿈이 많았다.

선생님도 되고 싶고, 의사도 되고 싶고, 발명가도 되고 싶었다.


그러나

선생님한테 대드는 무서운 아이들을 보며 선생님은 안되겠다 생각했고

의사와 발명가가 되기에는 수학과 과학을 잘해야하는데..

그래서 그것도 접었다.


오늘 꿈꾸고, 내일은 접고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비록 찰나같은 꿈이었지만

내가 어떤 모습이 돼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땐 참.

행복했던 것 같다.


그렇게 꿈처럼 시간을 보내다

정말, 적어도, 한 분야로는 방향성을 정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좀 더 방점을 둔 것 같다.


그나마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다 여긴 건

나름의 사교성과 친화력,

잘 웃고, 긍정적인 성격,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것,

글쓰는 것,

잘 듣고, 듣고 있다는 걸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

친구의 비밀 얘기 지켜주는 것,

친구의 아픔에 같이 울어주는 것..


'기자'를 하면 어쩌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물음표가 느낌표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신문방송학과를 들어가게 됐고

비슷한 꿈을 가진 꿈동기들을 만났다.


"어떤 기자가 되겠다"기 보단

"어디 기자가 되겠다"는 얘기를 서로 나누며

어설프고 치기 어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정말 빨랐다.

그때부텨였던 것 같다.

긴장하면 숨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사회로 발을 내딛어야하는 순간이 점점 가까워져왔고

현실은 사회에 나갈 준비가 전혀 안돼 있었다.


똑똑하고 잘난 애들이 넘쳐났다.

글도 잘쓰고 말도 어쩜 그렇게 똑부러지게 술술 내뱉는지.

이들에 비하면 난 너무 초라했다.

초조해졌다.

몇명 뽑지도 않는 언론사 공채 시험날이 다가올수록,

또 운좋게 다음 전형으로 넘어갈수록 압박감은 더해졌다.


실패와 시련의 나날 끝에 기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바닥까지 쳤던 자존감과 자신감이 어깨정도까진 올라온 듯했다.


자소서에 썼던 대로.

"어떤 기자가 되겠다"는 초심을 붙잡고

어디서든 내 꿈을 이뤄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서른쯤이었던 것 같다.

숨 쉬는 법을 잊어버렸다.


분명히 내가 원하던 꿈이었고,

가고 싶던 길이었는데,


단 한번도 크게 아프지 않고 자라왔던 나였는데,

식도의 위치를 매일 느껴야 했다.

위와 장, 자궁이 있는 듯한 곳에서

자꾸 신호를 보냈다.


"내 길이 아닌가"


혼돈과 혼란의 시기였다.




<이무렵 썼던 일기를 발견했다.>


늘 쫓긴다.


내가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기보다는 내가 늘 일을 쫓아가는 형국이다.

그러다보니 늘 숨이 차고 답답하다.

일을 끝내도 끝낸 것 같지가 않다. 불안하다.


잠을 쉽게 들수 없다.

피곤이 쌓인다.

겨우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또 해가 뜬다.

하루 중 아침을 제일 좋아했던 나인데,

아침이 싫다.


몽롱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지옥철에서 틈틈히 영어 단어도 외우고,

취침 전 30분이라도 책도 읽겠다 다짐했건만

주어지는 일거리를 해치우기조차 버겁다.


피곤이 쌓인다.

눈꺼풀이 무겁다.

누가 내 어깨 위에 올라서 두 발을 힘껏 짓누르는 것 같다.

등이 아프다.

가슴이 아프다.


숨이 안 쉬어진다.

아니, 숨 쉬는 법을 잊은 것 같다.

숨을 어떻게 쉬는지 모르겠다.


다시 밤이다.

두 다리를 질질 끌고 침대에 쓰러진다.

못다한 계획들이 생각난다.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어느새

아침이다.


잘 살고 있는 걸까.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이럴려고 태어난 건 아닐텐데

이러다가 눈감을 것 만 같아서


문득. 갑자기. 엄마가 두 눈에 시리도록

보고 싶은 날이다..



앞만보고 숨가쁘게 살았던 시간들에 또다시 물음표가 생겼고

이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새로운 길은 막막하기만 했다.


기자라는 타이틀은 얻었지만

기자가 될 준비는 전혀 돼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재빨리 새로운 길을 찾아야한다는 조급함과 강박은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학창시절 매일 꿨던 꿈처럼 접어버리기엔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또 아깝고,

도망가는 것 같은 느낌이 너무 싫었다.


어릴 때처럼

꿨던 꿈을 쉽사리 접을 수도 없었다.


하루하루 허겁지겁 살기에

숨은 점점 가빠졌고,

숨을 또 참고, 쉬어야 할 타이밍에 숨쉬지 못하면서

그렇게 숨쉬는 법을 잊어버렸다.


숨 쉬고 싶었다.

분명히 깨알았다.


허겁지겁 사는 건 잘 사는 게 아니야.


'허겁지겁 살지 않기로 마음 먹었을 때'

일종의 시험대였을까.


온갖 위장 장애에 '디스크'까지 닥치면서

어쩔 수 없이, 앞만보며 달리던 숨가쁜 인생에서

어쩔 수없이 잠쉬 쉬었다가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내가 쉬는 동안 같은 길을 걷던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나를 앞질러 갔을 테다.


타발적 의지에 하던 걸 모두 멈춰야만 했고

처음엔 많이 초조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간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정말 구석기 시대에서 나온 듯한 명언이,

오래도록 명언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지,

인류가 존재하는 한 명언으로 남을 것이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때보다 2살을 더 먹었지만 지금도

때때로 마음이 급해진다.


이런 조급함, 초조함, 강박들..

결코 이게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단지 제목만으로도 지친 청춘을 어루만지는 이 불안과 방황의 시대.


'포기=실패'

'무성과=패배'로 단정지어지는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만 하고, 어떻게 해야만 한다는 목표 의식보단 당위성만 강조되는 이 시대에

내 또래 많은, 아픈, 불안한 영혼들에게

그저 '잠시 숨 좀 돌리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쉬었다가도 괜찮다고.

숨쉬는 법을 까먹는 것보다 낫다고.


나 역시

숨가쁘게 정신없이 달려가지 말고

내 숨소리에 조금 더 집중하고

그 평온함 속에서 나를 다잡고 나를 지켜나가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꿈꿨던 내 미래엔,

아무리 허무맹랑한 꿈이였어도,

그 꿈엔 내가 그리던 나만 있지

라이벌과 경쟁하는 모습이라든지,

비교당하고 좌절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은 없었다.

그저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모습뿐이었다.


그랬기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꿈꾸고 도전했던 시절이 행복했으리라.


마치표를 찍기 위해 가는길에

물음표가 느낌표로,

느낌표가 물음표로 되기도 하지만

쉼표가 있어야 문장은 더 완벽해진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나의 내일은 또 허겁지겁해지겠지.


그렇게 삶은 계속될 것이다.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면서,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또 더 발전하고

어제보다 깻잎 한장 두께만큼이라도 더 나은 내가 되면,

어제보다 많이 웃는 오늘이 됐다면

그걸로 됐다.


그정도면 이미 '성공'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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