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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연지 Nov 19. 2016

조금만 더 버티면 웃을 수 있을까

디스크 여기자, 언론사에서 살아남기 ② 버텼던 끝은 허무했다

환상이 너무나 컸던 걸까.

기자로서의 삶은 정말 쉽지 않았다.


일단 술자리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많았다.


대학생때부터 술을 즐겨하긴 했지만

기자가 되고서 술이 싫어질 정도였다.


정확히 말하면

술보다도

강압적이고 마초적인 그,

술자리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여자'라고,

"봐달라"고 말한 적 없었다.


그런데 매번 술자리마다

"여자라고 봐주지 않는다"는

엄포로 시작해


노랗고 김서린 소폭잔이

쉴새없이 돈다.


조금이라도 남기거나,

먹기 힘들다는 내색을 비치면


"여기자들은 술도 잘 못 먹고,

이래서 여자들은 안돼"


그들의 머릿속엔

술을 못 먹는다 = '여자'

였다.


금새 비아냥이 나오고

남자들끼리 잔을 부딪히며 입꼬리 한쪽을 올린다.


외모는 순둥순둥해보이지만

지는 거 하나는 곧 죽어도 싫은 나다.


술 주는대로 다 마셨다.


집에 와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변기통을 끌어잡고 잠들지언정

단 한번도 외부 술자리에서

추태를 부린 적도 없다.


이런 술자리가, 심할 때는 주 5일 내내 반복됐고


아무리 애를 쓴들

여(기)자들에 대한 편견은 지워지지 않았다.


몸만 상했다.


소심한 성격 탓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아니 늦춰선 안되는 기자로서의 삶은

'쉬는 법'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사건사고는 언제나, 예고없이,

여기저기서, 시간대 가리지 않고 터졌고

당연히 기자는 현장으로 신속하게 달려가야 했다.


혹시라도 잠든 사이 사건이 터졌는데

너무 깊이 잠들어, 팀장 전화를 못 받거나,

혹은 카톡을 못 볼까봐

깊이 잠들지도 못했다.

그런 날이 되풀이되면서

불면증이 왔다.


잦은 숙직은 상처난 데

소금 뿌리는 격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서야하는 숙직.


회사에서 밤을 새야 하는데

출근시간은 같다.


새벽 6시까지 출근하고 일과를 다 마친 뒤

오후 7시까지 회사에 들어가 밤새 사건 사고를 챙긴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9시에 퇴근한다.


물론 새벽 1시에서 4~5시까지는 눈을 붙이긴 하지만

평소에도 못자는데 숙직땐 더 긴장된 탓에

뜬눈으로, 꼴딱, 밤을 샌다.


숙직 뒤 다음날은 일명 '숙퇴'(숙직 뒤 퇴근)라 해서

오전 9시에 퇴근하고 그날은 오프다.


문제는

숙퇴날, 말 그대로 정말 '오프'면 다행이지만,

사건사고가 내가 쉬는 날을 맞춰서 터져주는 건 아니라서

퇴근해서도 계속 일을 챙기기도 허다하고,

저녁 술자리가 있으면 또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나날을 4년간 반복하니


생리가 끊겼고,

질염과 장염은 만성이 됐고

늘 부족한 수면 탓에 정신은 늘 혼미했다.


가끔 보는 엄마는 날 볼 때마다.

"무슨 20대 여자애 얼굴이 '장판색'이냐"며

안타까워하고 답답해했다.


주중엔 일하고 술마시고 토요일 당직을 피하면

산부인과, 내과 진료가 필수 코스였다.


술먹고 약먹고 술먹고 주사맞고..


그래도 나를 붙잡아 준 건

기자가 내 '꿈'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최고의 수단으로 택했기 때문이다.


정성껏 취재하고 쓴 기사가 나간 뒤

"기자님 고맙습니다.

우리같은 사람들 얘기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그 한 마디는


내가 뭐라고,

'기자'라는 명함만 있을뿐

풋내기인데다 어설픈 것 투성인데도...


내 손을 꼭 잡으며 "진실을 밝혀달라"는 그 눈빛은


"다 때려치우겠다"며 투정하는 나를 항상 반성케하고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지금은 정말 힘들기만 하고,

아직 많이 너무나도 턱없이 부족하고 버거울 때도 많지만


어쩌면 어딘가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지금은 그만두지 말자

조금만 버티면 나아지겠지

언젠간 지나가리라.

조금만 더 버티자. 여기서 도망치지 말자.


수없이 외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표는 품었지만,

그만둔단 말은 수도 없이 내뱉었지만,

입사 4년차에 목허리 디스크 판정까지 받았지만,


6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단 한번도 입밖으로, 품 안에서 '사표'를 꺼내지 않았던 이유다.


그런데

그렇게 버티고

비티던 내가,

결국 사표를 던졌다.


정말 이렇게 사표를 낼 줄은 몰랐다.

이럴거면 버티지나 말걸...


번외편 )

[그톡록 원하던 직장에 사표를 냈습니다]

글 싣는 순서

 디스크 女기자, 기자로 살아남기 - 언론사 입사기 '지옥행'

② 조금만 더 버티면 웃을 수 있을까 - 버텼던 끝은 허무했다

③ 그저 내 이름으로 살고 싶을 뿐인데 - 내가 불행하길 바라는 것 같아

④ 남말은 쉽고, 상처받긴 더쉽다 - 그래서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⑤ 사표는 요동칠 때가 아닌 평온할 때 내는 거야 - 깎아내릴수록 난 더 날카로워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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