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 여기자, 언론사에서 살아남기 ③ 내가 불행하길 바라는 것 같아
피트니스 대회에서 기대치 않았던 입상에 대한 기쁨은
불과 이틀 채 가지 않았다.
대회 당시 무대 위 모습이 찍힌 사진과 내 입상 사실이
언론사 기자들과 출입처에 알려지면서 난리가 난 것이다.
회사 사람들로부터 전화와 메시지가 빗발쳤고
비난의 화살은 쉴새 없이 날아와 온 몸에 꽂혔다.
"허리 아파서 휴직까지 한 애가 몸짱 대회나 나가고, 참 나"
"아프다고 배려해줬더니, 남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몸이나 만들고"
...
휴대전화 너머 이 얘기를 듣고 있으면서
"내가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동안 이 악물고 참고 버텼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내가 디스크 판정 받고, 수술 대신 재활을 택하면서 휴직할 때
"넌 니 몸 관리 하나 못하고 뭐했냐"
"늘 여자들이 문제다, 이래서 여기자들을 뽑으면 안된다니까"라며
(실제 내가 휴직한 그 이듬해 여기자를 실제 뽑지도 않았다)
아픈 사람에게 돌 던진 사람들이
이제는 "남들은 고생하는데 지혼자 몸 관리한다"고 정말 가시박힌 말들을 내뱉는 것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편한 곳'이라는 건
주말도 없이 바쁜, 정치부, 사회부가 아닌
내가 '산업부에 있다'는 걸 비꼬는 것이다.
단언컨데, 난 단 한 번도 일하면서 편했던 적은 없다.
복직 하자마자 한 주 내내 메인 뉴스 기획성 리포트를 해야만 했다.
1년 4개월쯤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방송사 시스템상 산업부 비중이 적은 이유도 있다.
영상이나 생생한 현장음이 없으면 방송 뉴스 아이템으로 잡히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그림이 없는 바쁘게 돌아가는 국회나 사회부에 비해
경제부, 산업부에 쏠리는 뉴스 리포트 비중은 적은 편이다.
더구나 우리 회사는 경찰팀(사건팀)-> 법조팀-> 정치부로 가는 걸 소위 '엘리트 코스'라 칭하면서
산업부와 경제부로 가면 경력쌓기 힘든 부서라는 인식이 있었다.
내가 휴직할 때 쓴 글에도
난 정말 경찰팀 다음엔 법조팀, 정치부로 가면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싶었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로
정당과 법조팀으로의 인사를 원했다.
그러나 동기들 다 경찰팀 나와서 정치, 법조, 경제부로 갈 때
나 혼자 (힘들어서 빨리 나가고 싶고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아하는) 경찰팀에 남아있었다.
사실, 경찰팀 3년차때 법조로 발령이 났다.
그런데 그 인사가 결혼식을 앞두고 나면서 당시 법조팀장이 '유부녀'라는 이유로 받지 않았다.
결혼하게 되면 "전투력이 떨어진다"는 전언이었다.
그래서 미혼이던 동기가 법조로 갔고
나는 우리회사, 타사 동기 및 후배들 타 부서에서 경험쌓을 떄
그걸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러다 만 29세에 목과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고 계획에 없던 휴직을 하게 됐다.
그리고 복직할 당시, 산업부에는 인력이 모자랐다.
마치 병자인 여기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보냈다지만,
인력도 모자란데다, 출입처에 여러 이슈가 터지면서
복직 석 달만에 재발까지 할 정도로 일이 자꾸만 몰렸다.
정당과 법조처럼 티는 안나지만
주말에 일한 적도 많아, 어떤 달에는 주말 특근 수당이 기본 수당보다 더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편한 데서 몸이나 만들었다고?"
남들한테 모두 이해를 받고 살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한 회사에서,
내가 왜 아팠는지, 어떻게 휴직하게 됐는지, 지켜본 '동료'라는 이들로부터
이런 비난을 들으면서 일할 것까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계속 아파야만 하고..
불행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로만 가득찬 것 같았다..
번외편)
[그톡록 원하던 직장에 사표를 냈습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디스크 女기자, 기자로 살아남기 - 언론사 입사기 '지옥행'
② 조금만 더 버티면 웃을 수 있을까 - 버텼던 끝은 허무했다
③ '역할'이 아닌 '나'로 살면 안되는 걸까 - 내가 불행하길 바라는 것 같아
④ 아무도 내 행복을 방해할 수 없다 - 내 이름으로 살기, 더욱 나 다워지기
⑤ 사표는 요동칠 때가 아닌 평온할 때 내는 거야 - 그래서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