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김연지 Aug 16. 2015

살림이 쉽다고요? 세상의 모든 주부님들 존경합니다

디스크 女기자 좌충우돌 주부생활

여자로 태어났다. 결혼도 했다.

주부는 아니다.


그래도

설거지?

잘한다. 물 아끼면서 깨끗하고 꼼꼼하게. 오래 걸린다.


청소?

청소기가 한다. 그리고 청소 잘 안 한다.

(다들 요즘 너무 깨끗한 데서만 사니까 면역력 떨어지는 거다..(?!))


빨래?

세탁기가 한다.  속옷, 양말 외에는 옷 잘 안 빤다.(여름은 제외)

(다들 요즘 너무 옷 자주 빠니까 금방 옷 해지고 상하는 거다..(?!))

 

요리?

그래 솔직히.. 잘 못 한다.

아니 아니,


솔직히, 뭐든 가리지 않고 맛있게 잘 먹는다.


내가 만든 것도 나는 맛있다.

남들이 갸우뚱할 뿐.


이렇게 만 27년을 살아왔던 내가

결혼이란 걸 했다.


결혼식 치른다고 앞치마 두른다고

뿅? 하고 백 선생님이 되진 않더라.

정말 밥만 할 줄 알고(쿠쿠가 잘 하니까)

라면도 끓일 줄은 알지만

라면 1개 이상 넘어가면 물 조절 실패.. 싱겁거나 짜거나.

완제품 구매해 데워먹는 정도..(3분 요리 마니아. 미트볼은 진리)

그래도 만두는 노릇노릇 잘 굽는 편이다.


둘 다 주중엔 새벽에 나가고 저녁 약속도 많다 보니

결혼해도 집에서 뭘 해먹을 일이 거의 없어

요리 못 하는 걸 굳이 증명할 일은 잘 없었다.


그래도 신혼이면 로망이 있잖아~

부엌에서 앞치마 두르고

찹찹찹 칼질에 보글보글 찌개 끓여

신랑 퇴근 시간 맞춰 상 차려 짜잔~ 하면

신랑이 꺄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쉬는 날 큰 맘 먹고 요리를 해 보았다.


착한 우리 신랑은 역시 '짜잔~'에 '꺄아~'로 동조도 해주고

식탁 앞에서 야미야미 오물오물 먹고선 고맙다고도 했다.


...

.......


또 해달라고 하지는 않더라.

뭔가 기분은 썩 좋지 않은데...

고맙다고 해야 하나..?


서두가 너무 길었다. 나란 여자에 대해 설명하려다 보니..

이렇게 일을 핑계로 살림은 던져뒀던 내가

디스크로 휴직하게 되면서 살림만 하게 됐다.


회사 다닐 때는 내  마음속 고이 접은 사표를

드라마에서처럼 "저 나갑니다"  딱! 내던지고

당당하게 걸어나오는 상상뿐인 망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회사로 가고팠다.

살림보다 일이 더 쉽... 아니 쉽다는 표현은 그렇고(일이 쉬워질 날이 있을까;)

살림을 하느니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딱 휴직 3주차에 들었다.


살림은 정말 쉽지 않았다.


한창 일할 때는 늘 일에 치여

24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아침은 늘 너무 빨리 오기만 했다.

집에 있으면 시간이 정말 남아돌 줄 알았다.


그런데..

살림해보니..

물론 '왕왕왕초보 주부'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밥만 하는데 벌써 밤이다.

정말 밥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갔다.



#김주부의 하루


새벽에 신랑 출근시킨 뒤

밥 먹고 설거지를 하면 8시 정도 된다.


세탁기에 빨래 집어넣고

(나는 옷을 잘 안 빨지만 신랑은 한 번 입으면 바로 세탁기 고, 수건은 샤워하고 닦고 나면 세탁기 고,

빨래 대부분은 신랑 옷이다. 그래서 휴직 전에는 신랑이  세탁기 당번을 주로 했다. 온통 신랑 빨래니까.!!)


청소기를 일단 한 번 돌린다.

그리고 시작되는 걸레질.


그런데 디스크가 있다 보니, 이 모든 집안일이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신랑은 밖에서 열심히 돈 버는데 누워만 있을 수가 있나.


설거지든, 빨래든, 걸레질이든..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정말 천천히 한다.


설거지야 양이 많지 않으니(요리를 안 하니;) 사실 크게 힘들 건 없다.

프라이팬이나 냄비 같이 무게가 나가는 건 일단 (신랑 몫으로) 둔다.

(별 생각 없이 훅 들다가 삐끗한 적이 있어서 조심스럽다-.-;)


걸레질을 할 때는 허리를 숙이지 않게

밀대에 젖은 종이 끼워서  하는? 그런 걸로 아주 아주 천천히 바닥을 닦는다.

팔을 길게 뻗다 보면 그만큼 허리를 숙여야 하기 때문에 거의 뻗지 않는다.

엄마가 만약 청소하는 걸 봤다면.. "뭐하니" 하면서 등짝을 후려쳤을지도..


그렇게 거실 닦고 10분 눕고

방 닦고 10분 눕고(옷 방까지 3개)

부엌 닦고 10분 눕고..


(*밑줄 친 이유는..

허리가 아픈 주부라면..

꼭 천천히, 쉬엄쉬엄, 누워가며 하길 바란다.

그러다 허리 또 나가면 남편만 고생이다.

허리가 아프지 않더라도.. 집안 일 자체가 몸을 쓰는 일이라

더구나 대부분이 엎드리고 숙여서 일을 하다보니 허리에 많이 무리가 간다.  

자주 누워주면서 허리에 안정과 휴식을 주길..)


그러면 청소만 2시간은 걸린다.

(누가 이 문장만 보면 족히 50평대 집에서는 사는 줄 알겠다.;

절대 그렇지 않다.. 신랑이 청소하면 20분 안에 끝나는 그런 여느 평범한 신혼집이다.)


그렇게 청소를 하고 나면 세탁기는 어느새 빨래를 끝내 놓았다.


디스크 환자들은 빨래를 세탁기에 넣을 때도 중요하지만,

뺄 때는 물기를 머금고 잇기 때문에 무게가 더 나가므로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일단 무조건 허리는 숙이지 말아야 한다. 허리를 굽힌 뒤 뺄래가 담긴 통을 들어 올리는 건 위험하다.

쪼그려 앉아서 그 빨래통을 들고 함께 일어나야 한다.


나는, 집에 있는 짐볼을 유용하게 쓴다.

일단 빨랫대를 세탁기 쪽으로 끌고 온다.

그리고 짐볼에 앉아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통에 일단 담고,

짐볼에 앉아 빨래를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빨랫대에 넌다.


이렇게 하면 허리를 굽혔다 펼 일이 전혀 없다. 앉아서 손만 뻗으면 된다.


다 널면 빨랫대를 햇볕이 잘 드는 거실로

질질~ 끌고 오기만 하면 끝.


다만, 시간은 좀 오래 걸린다.


빨래 양에 따라 다르지만,

천천히 하다 보니 30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이렇게 집안일을 하고 나면

11시 30분~12시 정도 된다.


(아! 빨래 널고 난 뒤에도 눕는 걸 잊지 말아야!!)


이제 점심 시간이다.

혼자 먹는데 대단한 걸 차리지는 않지만

약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뭐라도 삼세끼 챙겨먹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먹고 설거지하면 1시.


병원에 가거나 혹은 운동 갈 시간이다.


*병원 코스

병원이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거리라

선생님 상담(근황 토크) + 침 추나/ 도수치료 + 물리치료 + 왕복 시간 = 5시간


집에 오면 저녁 먹을 시간이다.


*운동 코스

재활 PT를 받는 헬스장은 집에서 나와서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고

지하철 타고 헬스장 캐비닛 키를 받기까지 보통 30분이다.

물론 빨리 걷거나 뛰면 15분 만에도 간다.

하지만 허리가 아픈지라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그렇게 걸리더라.


거기서 혼저서 워밍업 30분 하고,

선생님과 1시간 수업하고 10분~20분 마무리 운동 더 한 뒤

수영장으로 향한다. 수영은 해봤자 40분 정도지만

수영복 갈아 입고, 샤워하는데 또 40분은 걸린다;

또 나와서 찍어 바르고 머리 말리고 나면

이 역시 4~5시간 걸린다.

  

집에 오면 저녁 먹을 시간이다.


보통 주부라면 이 때부터 신랑 저녁을 차릴 것이다.


이 때부터, 아니.. 아침을 먹는 순간부터 생각하게 된다.

직장 다닐 땐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던...


"저녁 반찬 뭐하지?"


정말..

전국의 아니 세계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할머니 손에서 자랐던 나는

(무려)매 끼니마다 새 밥을 지으시곤

"점심은 뭐 묵노, 저녁은 뭐 묵을꼬, 뭐 묵고 싶노?"

다음 끼니 걱정을 하는 할머니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땐 밥 지금 잘 먹고 있는데 왜 또 밥 걱정하시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 할머니 생각난다.ㅠㅠ흑 할머니가 해주신 김치밥국 참 잘 먹었는데ㅠ)

제대로 못할 걸 알면서도

병원 대기 시간이나 지하철 안에서

열심히 먹방 쿡방 레시피를 뒤진다.


먹고 싶은 것, 신랑이 좋아하는 것을 찾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급격히 범위가 좁아진다..


# 미역이 살아있다?!!!!????

한 번은 미역국에 도전했다.!

미역이 여성 몸에도 좋고.. 일단 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신랑이랑 둘이,

그래도 한 끼 분량만 하기는 아까우니까,

한두~세 끼 분량은 해야지 하고..


레시피대로 미역을 꺼내 '적당히' 자르고 물에 담갔다.


그리고 병원을 갔다 왔는데.................


세상에 세상에..

무슨 싱크대에 귀신이라도 나타난 줄 알았다..


눈코입 없는 초록색 얼굴에 머리 숱 많고 윤기 넘치는 귀신이

싱크대에서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뜨악

ㅠ.ㅠ 날은 아직 밝을 때라 귀신이 활동할 시간은 아니고..ㅠ.ㅠ


아.. 미역이여..


일단, 불어 넘친 미역을 가위로 자르고 잘라 다른 볼 하나를 꺼내 나눠 담았다.


여하튼 먹으려면 미역을 씻어야 하니.

소금을 넣고 빡빡 씻는데..

미역은 계속 계속... 불어났다.


마치 물을 머금고 증식하는 형국이다.

정말 미역이 살아있는 줄 알았다.


아.. 아직도 그 당시.. 바다 내음과 함께 미끈미끈한 그 감촉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로부터 1년 동안,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랑은 미역 한 번 구경하지 못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진료 마치고 혹은 운동하고

장보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어느새 신랑 퇴근시간이 임박해져 있다.


물론

나를 끔찍이 사랑하는 신랑은

저녁을 먹고 들어올 때가 많고 (?) 술도 같이 먹고 그냥 조용히 잘 때가 많다(??)


그래도 신랑 칼퇴근 여부와 상관없이

저녁 상차림은 마치 '아이템 발제'와 같은 압박으로 다가왔고..

(킬 되더라도 발제는 늘 해야하니까, 그리고 이미 나온 건 안된다)

그렇게 주섬주섬 챙겨먹고 설거지하면 이미 밖은 어두워진 뒤다.


다음 날 신랑이 입을 와이셔츠를 다리고,

뉴스 보고 책 좀 보면 어느새 잘 시간.



직장 여성과 똑같이 깨어있고 일하지만

집안 일은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하루라도 안 하면 안 한 티가 너무 난다.

쌔~가 빠지게 일 해도 월급이 나오기를 하나.. 보너스가 나오나..

초과 근무해도 수당도 없고

무엇보다 휴가도 없다.


하다 못해. 기사를 쓰거나, 프로젝트를 해내는 것처럼 '자기 만족'이 있기를 하나..

주부가 미니시리즈, 주말드라마 등등 드라마에 빠지는 이유도 이젠 너무나도 잘 알겠다.

이런 무료함을 잊으려면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판타지를 채워주는 드라마 말고는 일상의 별다른 기쁨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취지로 글을 쓴 건 아니었는데.

음.. 잘못된 글쓰기의 한 예로, 하고픈 말이 너무 많으면 삼천포로 갈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시며..


이 글을 본 남편님들은

아내에게 "고맙다"고 꼭 안아주고,

자녀분들은 어머님께 백 허그 한 번 날려드리시길..



그래도 왕초보 주부 김기자의 요리(?) 몇 장 올려봅니당~


1. 신랑이 좋아하는 돈까스.

2. 돈부리

(다 된 돈까스에 야채와 육수 얹기)

3. 성탄절 기념 샐러드와 브로콜리, 딸리, 토마토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4. 김치전!!

@@@@@ 신랑이 맛있게 먹어줬어용!!@@@@@

@@@@ '자신감' 있는 표정 지으라는 최작가님 지시대로 자신감 눈빛 발사!!


* 눈빛과 입꼬리론 백선생도, 샘 킴 오라버님도 다 물리칠 기세 ㅎㅎㅎ


저 사진 보고선 아직도 많이 웃는다.ㅋㅋㅋㅋㅋ(내가 봐도 너무 웃김 ㅠ)


모두들 식탁에 행복한 가득 하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수영, 쉽고 단순한, 그리고 시원한 名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