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똑같은 제품이라도 "한국에서는 비싸게 팔면 잘 팔린다"는 마케팅 공식이 있다고 합니다.
각 기업은 물건을 만들면 나라마다 현지 시장과 수요를 파악하고 이 물건이 잘 팔릴 수 있는 전략을 짭니다. 가격도 마찬가지고요. 각 국가 국민들의 수용성과 소득 수준을 보고 책정을 합니다. 그래서 중저가 마케팅이 잘 통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는 고가 마케팅이 먹힌다는 거죠.
최재섭 남서울대 국제 유통학과 교수는 "지역이나 국가에 따라서 가격을 차별화하는 건 기업의 고유하면서도 오래된 마케팅 전략이고, 우리나라가 고가 마케팅이 통한다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설명했어요.
예를 들어, 국내에서도 와인을 저가로 충분히 좋게 살 수 있는데 고가 상품부터 팔린다고 하고요, 와인의 맛이나 특성보다는 "얼마짜리야?" 이렇게 질문하면서 그 가치를 판단한다는 거죠. 이처럼 국내 소비자 행동 특성이 다른 나라와는 많이 다르고, 이것을 마케터들도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최 교수는 또 "특히 우리나라는 제품을 빨리 경험하려는 '얼리어답터'들도 많고 디저털 제품에 대한 수요가 많은 편"이라고 덧붙였는데요. 그만큼 가격을 높이 설정해도 "한국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얘깁니다.
애플만 뭐라 할 수도 없는 게 사실 '명품 청소기'로 유명한 다이슨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다이슨은 제작년에 별도 공지 없이 소모품 가격을 40%나 기습 인상하면서 한국 고객 '차별' 논란이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전부터 다이슨은 한국에서 유독 더 비싸게 팔기로 유명하죠. 전수조사를 한 건 아니지만 일부 청소기 모델은 해외와 최소 10만 원에서 최대 40만 원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똑같은 사양인데도 말이죠.
한국 소비자원 자료를 보면 V8애니멀 청소기는 국내에선 74만 3140원이지만 미국에선 59만 1314원이고요.
국내 매장에선 109만 원에 팔리는 V10앱설루트는 최근 20만 원 할인에 들어갔는데, 보니까 미국에선 699.99달러, 우리 돈으로 약 79만 원에 판매 중이었습니다. 미국은 할인이 적용되지 않은 정가였고요. 20만 원이나 할인해도 더 우리가 비싼 거죠. 근데 안방인 영국에서는 이보다 훨씬 싼 64만 원(449.99파운드)이더라구요. V10플러피도 국내는 94만 8000원이지만 일본에서는 약 65만 원입니다.
다시 아이폰 얘기로 돌아가서,
아이폰이 국내에서 더 비싼 두 번째 이유,
애플의 거센 입김,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갑질' 때문입니다.
업계 얘기를 들어보니까 휴대폰 가격은 통신사와 협의를 통해 진행되는데요. 여기서 가격을 결정할 때 제조사 권한이 80~90%, 통신사는 10~20%라고 말하더라고요. 애플과 삼성전자 같은 경우는 실제 인기도 많아서, 가입자를 유치하려는 통신사 입장에서는 삼성 물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겁니다.
이들 제조사가 가격을 정하면 반기를 들기 어렵다는 거죠. 통신사 입장에서는 물량을 많이 빼 오려면 제조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도 삼성은 국내 기업이라 10~20% 라도 딜이 되는데 애플은 국내 통신사랑 협의건 협상이건 없고 무조건 '100% 통보'라고 합니다.
"우리가 너희 나라에선 이 값에 팔 거니까 싫으면 말아"
이런 식이라는 거죠.
그리고 여기다 아까 말씀드린 '고가 마케팅'이 통하는 곳인 만큼 미국, 일본보다 20~30만 원 넘게 비싸도 사는 사람은 산다는 거죠. 애플도 그걸 아니까 한국에선 가격을 내릴 마음도 없고요.
그러면 궁금하실 겁니다.
우리나라는 계속 이렇게 호갱이 될 수밖에 없는 걸까요?
아닙니다. 바꿀 수 있습니다.
애플과 다이슨이 이렇게 한국에서 고가 정책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유지가 가능한 건 아이폰이 아무리 비싸도 국내 고객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만큼, 한국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얼리어답터들이 많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가정책과 별개로 이런 글로벌 업체들이 우리 작은 한반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게, "한국에서 성공하면 세계 시장에서도 성공한다"는 공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업체의 테스트 마켓이라는 얘기죠.
만약 우리도 차별 없이 같은 가격에 제품을 사고 싶다면
이는 전적으로 우리 소비자에게 달렸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안 사면 됩니다.
지난해 중국 사례를 보시면 됩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에서 아이폰 Xs 점유율이 떨어지자, 애플은 정말 이례적으로 신형 아이폰 출시 3개월 만에 출고가를 내렸어요. 아이폰은 신형 모델이 나오더라도 지난해 나온 모델 가격도 잘 내리지 않거든요.
실제로 다이슨이 저렇게 폭리를 취하니까 우리 소비자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어요. 가격 비교 사이트 에누리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다이슨은 무선청소기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면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지만, 하반기부터는 LG가 그 자리를 빼앗았고요, 그래서 제 가격을 늘 고수하던 다이슨이 국내서 할인 정책을 펴기도 한 거구요.
전문가들은 직구를 하는 것도 추천하더라고요.
만약 국내 시장에서 안 사고, 해외 직구족이 늘다 보면, 우리 소비패턴도 변하는 걸 기업들이 직감할 거고, 국내 판매량을 늘리려면 거기에 맞춰 가격을 내린다든지 다른 혜택을 늘린다든지 그렇게 할 거라는 거죠. 실제 다이슨은 직구족이 많은 걸로 알아요. (다만 아이폰은 각 나라 출고 모델 제품명/번호가 달라서 AS가 힘들 수 있다는 게 또 맹점이긴 합니다만..ㅠㅠ)
또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도 중요한데요,
직구나 역직구가 더 용이해지도록 그런 장치를 마련하거나 물꼬를 터주면 가전, 소비재 물가가 상당히 내려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애플이나 다이슨 같은 회사에 우리 국민이 더는 호갱이 되지도 않을 것이고요.
직구가 활성화되면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다양한 구조가 달라질 것이고, 기업들도 좀 더 소비자 친화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