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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연지 Nov 04. 2019

베이비박스 아기들은 정말 버려진 걸까

법 때문에 베이비박스에 오는 아기들


10월 23일, 오늘은 박스가 비어있었다. 다행이다. 

이 박스에는 이틀에 한번꼴로 아기가 들어온다. 

여기는 아기가 버려지는 곳, 아니 새 생명이 탄생하는 곳 베이비 박스다.




하루 전인 10월 22일,

10개월된 딸 근형이 옷가지와 기저귀를 정리했다.

남편 손바닥만한 옷들도 꼭 맞았었는데, 어느새 저렇게 커버렸는지..

기저귀도 근형이 거 주문하면서 몇 개 더 주문했다. 올케 언니가 근형이 쓰라고 준 기저귀도 같이 기부하기로 했다. 사이즈가 좀 커서 두돌은 지나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박스채 잘 보관해뒀는데, 물론 아껴두면 나중에 당연히 쓰겠지만 지금 당장 꼭 필요한 곳에 보낸다면, 올케 언니도 좋아할 것 같았다.(언니~ 고맙습니다~~ 잘 전달했어요 ^^) 




<엄마는 베이비박스에 갔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8TnpcJItEg


10월 23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베이비박스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상자다. 


베이비박스는 그 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저 안타깝다..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애기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신생아 영상을 보고 한밤중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때 애기 낳고 꼭 찾아가봐야지 결심했다. 그러나 서툴고 한참 모자라기만 한 육아를 핑계로 차일피일 자꾸만 늦춰지고 말았다.


베이비박스가 있는 주사랑공동체 교회를 찾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이 신림역인데, 역에서부터 도보로 39분 거리다. 근처까지 가는 버스도 있긴 하지만, 정류장에 내려서 베이비박스까지, 하필 오르막길이다. 경사도 꽤나 가파르다.


기저귀 상자와 옷가지를 안고 이 길을 올라가는데, 가슴이 답답해졌다. 명치서부터 목구멍까지 뜨거운 입김이 퍼지는 듯했다.  


"이 길을 오르면서 엄마들은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오늘 이 곳에 있는 아가들은 5명. 이중에 2명은 그래도 위탁 아가들이었다. 3명은 입양 절차를 밟는 중이었다.

위탁은, 현재는 아기를 키울 능력이 안돼 이곳에 맡기고 있지만, 나중에 엄마품으로 돌아갈 아이들이다. '조금만 기다려, 아가들아..'


베이비 박스는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가 돌보고 있다. 그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을 돌보다, 같은 병원에서 버려진 아기들을 키우면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이 소문이 알려지면서, 교회 앞은 물론 주차장이나 이웃집 등에 아기들을 두고 가는 일이 자주 생겼다. 그러다 조금만 늦게 발견했어도 아기가 죽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아기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베이비박스를 마련하게 됐다. 


2009년 교회 담벼락에 만들어진 베이비박스, 이후 내가 찾아간 10월 23일을 기준으로 약 10년 동안 1654명의 아이들이 이 곳에 머물다 갔다.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한창 축복받고 사랑받아야 할 때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학생들은 정말 하혈을 하면서 아기를 안고 이곳에 와요. 급하니까 빨리 안전한 곳에 보호해야하니까..어떤 학생은 화장실 변기에서 아기를 출산했어요..너무 무서워서 문을 닫고 물을 내렸는데 아이가 우는거야, 또 어떤 애는 산에서 출산해서 구덩이에 파묻으려는데, 아이가 울어서, 또 그 울음 소리 듣고 도저히 묻을 수가 없어서, 교복 벗어서 데려온 경우도 있었고.."


이 곳에 온 아이들은 버려진 아이들이 아니에요 
엄마로부터 지켜진 아이들입니다


"베이비박스는 아기를 유기하지 말라고 만든 거에요, 유기하면 아이들이 죽잖아요. 생명을 아무데나 버리면, 사람은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에, 쓰레기처럼 버리면 안돼요. 하지만 베이비박스에 갖다 놓으면 안전하게 살릴 수 있어요. 생명박스에요. 늘 기도합니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들이 오지 않기를. 다만, 정말 죽을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은 이 베이비박스에 보내 살려달라고.."


밖에서 베이비박스 문을 열면 벨소리가 난다. 대부분은 생모를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안에서는 아기를 받는 동시에 문을 열고 "잠깐 만나고 가라, 그냥 가면 후회하신다"고 엄마를 안에 들어오도록 한다. 그리고 하염없이 우는 엄마들을 칭찬한다. "이곳으로 잘 왔다고,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냐, 혼자 얼마나 무서웠냐"며 손을 꼭 잡아준다. 



베이비박스에 온 아기들은 어떻게 될까?


고작, 성인 팔뚝만한 몸 누울 곳을 찾기 위해 아기들은 태어난지 50일도 안돼 네다섯곳을 거친다.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들어오면 교회는 우선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아기의 유전자 검사를 한 뒤 관악구청으로, 구청에서는 건강검진을 한 뒤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로 보낸다. 여기서 가정위탁, 보육시설, 입양 등으로 아이의 운명이 정채진다. 대부분은 보육시설로 향한다.


아기에게는 생모는 아닐지라도 따뜻히 보듬어줄 수 있는 다른 부모를 만나는 게 가장 좋은 경우일테다. 좋은 가정으로의 입양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입양은물론 상당히 힘들다. 법이 미혼모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11년 8월 입양 촉진과 절차에 관한 특례법이 ‘입양특례법’으로 개정, 다음해인 2012년 8월부터 시행됐는데, 이 법에 따라 친부모는 실명으로 출생신고를 해야만 입양이 가능해졌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아이를 낳았거나 미성년자 미혼모의 경우 출산을 숨기고 싶지만, 출생신고 절차 때문에 아이를 버리는 경우도 발생하게 됐다.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없는 미혼모 입장에선 베이비박스가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


이렇다보니, 2009년 베이비박스가 마련되고 한 2년 동안은 한달에 서너명씩 오던 아기들이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론 "아기들이 그야말로 쏟아졌다"는 게 주사랑공동체측 얘기다. 2018년 한 해 동안 227명의 아기들이 베이비 박스를 통해 들어왔는데, 이 중 73%에 이르는 166명이 보육원으로 갔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들이 몰려온다고 그럴까. 그 전에는 보육원 앞이나 입양 기관앞에 아이를 갖다두면 보호하고 입양하거나 보육원에서 키우고 그랬는데, 이법 시행되고 나선 안됐어요. 출생신고 안된 아이는 받을 수 없으니까. 정부에서는 무조건 출생신고 다 해라. 출생신고 못하면, 미혼모라든지 외도로 태어난 아이라든지, 외국노동자 아이, 근친상간. 강간 사건, 출생신고 할 수없단 말이야. 외도로 태어난 아이는 이혼하고 300일 지나지 않으면 출생신고 할 수 없거든. 미혼모들은 완전히 발목 잡힌 거지. 한달에 28명 제일 많이 들어온 달은 32명이 들어왔어요" 


물론 입양 요건을 까다롭게 만든 게, '미혼모를 비난하거나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니다. 무분별한 입양을 개선하는 동시에, 아동이 친부모를 모르고, 나중에 찾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아동 인권을 침해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출생신고 없이 입양이 가능하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주장 역시 정답은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16년부터 출생 기록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기 위해 증명서를 세분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통상 사용하는 일반 증명서에는 현재 가족관계, 신분 사항 등 필수 정보만 담고, 과거 출산이나 입양 보낸 사실 등을 포함한 전체 기록은 상세 증명서에 담아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하도록 한다. 


시행 초기보다는 보완됐지만 이것만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에 따라 '출생 기록을 원치 않는 경우에 한한 비밀출산제' (임산부 지원 확대와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안)가 발의된 상태다. 물론 모든 아동의 출생과 동시에 출생신고가 이루어지는 보편적 출생등록제의 시행을 전제로 한다. 비밀출산제는 가명으로 출생신고 하고 법원에만 기록을 남게해, 추후 양쪽이 합의되면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이해하면 된다. 아울러 비밀 출산으로 아이를 낳은 경우, 대부분은 경제적 자립이 힘든 미혼모의 경우가 많은 만큼 산모를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친부에게도 양육비를 지원하도록 강제해, 가능한 한 미혼모가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는 방안도 절실하다. 이마저 여의치 않다면 입양 절차를 밟게 하는 등의 제도도 뒤따라야 한다.



이 아기는 새벽 2시에 베이비박스에 들어왔다. 태어난지 한두시간 만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온몸에 피조차 제대로 닦이지 않은 핏덩이 그 자체였다.

엄마는 갔지만 아기는 엄마와의 끈을 여전히 붙들고 있었다. 


베이비박스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떻게 배아파 낳은 자식을 버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엄마'라는 말조차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편지 속에 여성은 엄마가 맞았다. 그저 자신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보듬어 줄 수 있는 곳에 피붙이를 두고 간 것일테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은 건강한 경우도 많지만, 장애 때문에 부모가 치료를 지속하기 힘들어 포기한 경우도 더러 있다.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기도 하고 1.6kg의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도 있다. 베이비박스 아기들 중엔 수술을 16번 한 아기도 있다. 물론 지금은 아주 건강하다고. 


만약, 아기를 키우고 싶은데 돈이 없거나 갈 데가 없으면 주사랑공동체에 선교관이 준비돼 있다. 선교관에에서 미혼모들은 양육은 물론 종합적인 자립 지원을 받는다. 학교 복학이나 자격증 취득, 직장도 갖게 도와준다. 만약 아기를 키울 만한 친구 자취방은 있는데 양육비가 없다면, 쌀이나 기저귀, 분유, 치약, 샴푸 등의 생필품, 아기들 옷, 장난감, 한달에 20만원씩 지원금을 준다. 현재 총 90가구에 베이비키트를 보내고 있다.

주사랑공동체 '선교관'


이런 종합적인 지원 덕분에 지금까지 도움받은 미혼모들 가운데
 30%는 아기를 데려갔다. "그게 우리가 가장 보람있는 일이죠"


나도 아기가 입던 옷 중에 깨끗한 옷들만 골라서 가져갔다. 그래도 고민이 돼서 조심스레 여쭸다.


"완전 새옷이 아니라 입던 옷인데,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죠. 애기들 입은 옷은 깨끗하잖아. 한두번 입히면 커버리니까. 옷들이 요즘엔 또 잘나와서 떨어져서 못입는 옷들은 없잖아요"


한달에 한 번 베이비키트가 미혼모 가구로 전달되는데 창고에 수북하던 분유며 기저귀도, 이렇게 박스 한 번 싸고 나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만큼 어려움 속에서더 자식을 키우는 엄마들이 많다는 것이다.




"잘못 알고 있는 게 하나 있어요. 베이비 박스에 맡겨진 아이들 보고 버려진다고 하잖아요. 버려진 게 아니에요. 엄마의 본능을 가지고 '이 아이만큼은 살려야겠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는 거죠. 버릴 것 같으면 아무데나 버리죠. 이 아이들은 엄마로 하여금 지켜진 아이다. 지켜진 아이를 우리가 보호해야하고 이 아이들을 안전하게 커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봉사해주시고 함께 해주시면 많은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처절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연말이 다가오잖아요. 주변도 한번 살펴주시면고맙겠습니다"


엄마 젖도 제대로 못 물어보고 이 곳에 온 아이들, 이 아이들도 가엾지만 

이곳에 아이를 두고 가는 엄마의 모습도 그려진다. 

이 내리막길을 내려가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얼마나 뒤를 돌아봤을까.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기부를 하는데, 이번이 5번째 기부입니다. 

대학 합격했을 때, 취업했을 때, 결혼할 때, 아이를 가졌을 때, 그리고 기자 김연지 채널 2주년이자 구독자 2만명이 됐을 때 기부를 결심했습니다. 


마음 같아선 많이 하고 싶지만, 부끄럽게도 그러진 못했습니다. 육아휴직중이고 구독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매달 수익도 들쭉날쭉이라 ^^;;; 상황이 넉넉치 못해 한꺼번에 많은 금액을 하기보단 소액이라도 꾸준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정기후원을 하기로 했고요, 베이비박스 후원은 구독자 여러분들께서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의 응원과 사랑이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어서 저도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기쁜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XQIAmNf2xq809gKk2mOpdg?view_as=subscri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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