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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연지 Aug 27. 2018

입덧약, 정말 괜찮을까

입덧 지옥에 디클렉틴 처방 "괜찮다지만 걱정되네요. 엄마맘이 그런거겠죠"

https://www.youtube.com/watch?v=7H2d1oDWBh0


임신 6주부터 폭풍같은 입덧이 시작됐다.

입덧의 느낌?

소주와 와인을 진탕 섞어마신 다음날 아침의 숙취가

한 달 이상 계속된다고 생각하면 빠를 것 같다.


몰랐다. 입덧이 이런 건줄.

또 내가 이렇게 심할 줄은.


입덧이 첨엔 멀미같다고 해서

차멀미는 물론, 배멀미도 잘 안했던 만큼

스르륵 뭐 그냥저냥 지나갈 줄 알았다.


주변에 입덧을 그렇게 심하게 한 친구나 동료도 없었다.

다들 대부분, 냄새에 예민해지고

속이 니글니글, 울렁울렁 거리는 정도로 지나갔다고 했다.


임신 5주 후반쯤 되니,

그렇게 다들 말하는, 니글니글 울렁울렁거림이 느껴졌다.


그렇게 지나갈 줄 알았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일단 눈떠서 출근까지가 제일 힘들었다.

특히 양치할 때.


공복이어서 그런지 구역질을 수차례하다

노오란 위산 같은 게 나온다.

코를 찌른다. 속이 쓰린다.


뭘 좀 먹으면 낫긴 한데

그때 뿐이었다.


먹고 나면 다시, 먹은 것들이 막 올라오는 듯했다.

그래도 6주 초반까지는,

올라오는 것들을 꾹꾹 누르면 어찌어찌 눌러지는 듯했다.


그.런.데.

7주가 가까워지면서 하... 이게..

'입덧지옥'에 들어선 것을 느꼈다.


소주와 와인을 섞어마신 다음날의 기분이랄까..

정말 딱 숙취같았다. 아주 심한.

엄청 갈증은 나는데 물 마시면 술 같아서 먹기 힘든 그런..


음식은 정말이지..먹는 족족 토했다.


노란 카레를 먹으면 노란 토를

빨간 수박을 먹으면 빨간 토를

연두색 청포도를 먹으면 연두색 토를 했다.


그래도 수박이나 메론같은

신맛이 덜 한 과일을 먹고 하는 토는 괜찮은 편이다.


입덧이 한창일땐

속이 니글니글거리다보니

매운 음식이 당긴다.


그렇다고 매운 음식 먹었다가 토하는 날은

그날 잠은 다 잤다고 봐야 한다.


한번은 김치전에 김치 만두를 먹고 토했다가 정말 고생했다.

골뱅이를 먹은 날도 마찬가지였다.


매운 성분이 위와 식도를 건드리다못해

토가 얼굴로 쏠리면서

눈도 맵고 코도 맵고 귀도 맵고

얼굴은 붉은 반점들로 뒤덮여버린다.

붓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정말 다음날 들고 다니기 힘든 얼굴이 되고 만다.


얼굴이야 며칠 지나면 가라앉는다쳐도

속쓰림이 정말 괴로울 지경이다.

마치 불을 삼킨 듯이 식도와 위가 너무 뜨겁고 아프고 따갑고 쓰라린다.


침을 삼킬 때마다 김치 맛이 나고

물을 마셔도 김치 맛이 나고

장기를 따라 매운 기운이 퍼져서

말도 하기 싫고 밥도 먹기 싫고 정말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


끼니 때마다 그렇게 토를 하고

물은 비려서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다 보니

안그래도 혈압이 낮은 편인데

혈압이 더 떨어져서 현기증이 심해졌다.


어떤 날은 사람이 붐비는 현장에서 취재를 하다가

너무 어지럽고 진땀이 나면서 숨을 잘 안쉬어지는

일시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주변 사람의 부축을 받으면서 현장을 빠져나왔다..

눈앞은 빙글빙글 돌고 숨은 안 쉬어지고..

여길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땐 정말 아찔했다.


잘 먹지는 못하는데 영양은 태아에게도 가고,

일은 일대로 해야하다보니 몸이 못 견뎠던 것 같다.


8주가 되니 토 횟수가 더 잦아졌다. 쓰라림도 심해졌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부지런히 먹으면서 포동포동 붙었던 살이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산부인과에서 입덧약을 처방해줬다.

중요한 임신 초기에 산모가 살이 빠지면 태아에 영양 공급도 더딜 뿐더러

혈압이 더 낮아져서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입덧약 이름은 '디클렉틴'

조그만한 똑딱 단추 크기의 하얀색에

가운데 보라색으로 임산부 그림이 그려져 있다.


복용 방법은 이렇다.

복용 첫날과 둘째날엔 자기전 두 알만.

셋째날엔 오전에 한 알 추가.

넷째날부터는 오후에 한 알 더 추가, 이렇게 하루 최대 4알을 먹는다.


자기 전 두알만 먹고 자도 다음날 하루가 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엔 최대 네 알까지 먹어도 된다고 원장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런 새가슴 초보 임산부에게 '약'은 무서웠다.

물 한잔도 어떤 음식도 조심해서 먹어야한다는데..


임신 초부터 입덧약의 존재는 알고는 있었지만

'약'을 먹어가면서까지, 유난을 떨어야할까 싶었다.

그땐 내가 이정도일줄은 미처 몰랐으니까.


무엇보다, 산모 편하자고 소중한 태아의 건강을 행여 헤칠까봐...

걱정이 밀려왔다. 결혼 5년 만에 생긴 소중한 아가이니까..


약을 처방받으면서도

한가득 밀려오는 걱정과 불안에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자

원장님께서 "오랫동안 캐나다에서 임상 실험을 했고,

기형이나 특이 질병을 일으키는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안심시켜주셨다.

"이게 주로 비타민 성분이여서 해가 되는 그런 건 없다"고, "미국FDA 승인도 받아

전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약"이라고도 덧붙이셨다.


그렇게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오늘은 토를 좀 안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값도 비쌌다. 20알에 3만원이 조금 넘었으니까.


돌아오는 길에 입덧약으로 검색도 해봤다.

이미 디클렉틴의 존재를 아는 산모들이 이에 대한 궁금증과 후기에 대한 글이 더러 있었다.


모두 나와 같은 걱정으로 시작했지만,

"신세계를 맛보고 있다, 왜 진작 먹지 않았을까"는 리뷰가 대부분이었다.


태아로 가는 영양도 중요한 만큼,

또 임산부가 입덧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도 좋지 않다면서,

믿고 먹으라며 출산 선배님들이 격려?를 해주셨다.


이에 힘입어, 8주가 접어드는 날부터 먹기 시작했다.


결과는?


약을 먹는다고 아예 토가 멈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확실히 횟수가 줄어들었다.

정말 그나마.

살 만해졌다.

토를 덜하니 속도 덜 쓰리고

토가 한창일때는 끼니때가 다가오는 게 두려웠는데

이제 그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8주-9주가 지나고

이대로 서서히 사라지나 했는데...


이게 왠걸.

10주차때 정말 절정인 듯 했다.

약도 듣지 않았다.


약을 먹어도 울렁거리기만 하고

정말 10주차때는 하루에 열번은 토했던 것 같다.

먹은 게 없으면 없는대로 위액같은 게 나오고

물만 마셔도 토한다는 게 이때였던 것 같다.


사실 8-9주차때는 약을 하루 4알씩 다 먹진 않았다.

괜찮다곤 했지만 그래도 약은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ㅠ


결국 10주차때는 구토가 심해서 4알을 다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고

멈추지 않는 토에 너무 힘들어서 결국 수액까지 맞았는데

맞자마자 바로 병원 화장실에서 토할 정도였다.


약이 효과가 없었다기보단,

어느정도 내성이 생긴게 아닌가싶다. (물론 이건 온전히 내 생각이지만.)


그렇게 폭풍같던 10주-11주가 지나고

12주차때도 여전히 심했지만, 이때는 구토 자체보다

계속된 구토에 위염이 온 듯 쓰린 속과의 사투를 견뎌내는 게 더 힘들었다.


*부작용은 없을까?


아직 아이를 낳지 않은 상황이어서 태아에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제발,

제발제발 없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다만, 내가 느낄 수 있는 부작용은

몰려오는 졸음과 이에 따른 무기력함이랄까..


약은 복용 뒤 6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약 먹고 2시간 정도 지나면..

그때부터 심하게 졸음이 쏟아진다.


뭘해도 졸린다.

원래 나는 잠이 없는 편이다.

잠 자는 시간을 아까워하고 시간을 계획적으로 잘 쓴다.


그.런.데

임신 초기 졸음이 쏟아지는 것처럼

뭘해도 졸린다.


일을 해도 졸립고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졸린다.


낮잠은 잘 자지도 않고,

머리를 대도 잠이 잘 들지도 않는데,

점심 시간에 책상에 잠깐 엎드리기만 해도 푹 잠이 들고

밤에도 잘 잔다.


잠 자는 시간이 늘어나선지

상대적으로 입덧의 고통을 느끼는 시간도 줄어든 것 같긴 하다.


힘들고 주의해야할 사항이 많은 입덧 초기에

어찌보면 잠을 푹 자고, 누워있는 시간도 늘어나면서

태아의 건강과 안전(?)을 좀 더 지킬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른다.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직장인 여성들이 임신 초기에

한번쯤은 겪는다는 출혈도 다행히 없었다.


임신 13주차에 쓴 글을 24주가 돼서야 풀게 됐다.

당시만 해도 약은 끊지 못했고 하루 세 알 정도 먹었다.

서서히 끊어야하는데 약을 줄였다가 다시 토가 시작돼

자기전, 오전, 오후 한 알씩 복용했다.


15주차부터는 한알로 줄였고.

17주부터는 이틀에 한번씩 섭취했다.

18주가 돼서야 겨우 끊었다.


그뒤에도 일주일에 한두번은 토했다.

그래도 끊은 게 아까워 더이상 먹지 않았다.

어차피 앞으론 좋아질 일밖에 없었으니까..!


22주차에 정밀초음파 검사까지 받았는데

손가락 발가락 양손 양발 모두 5개씩이요

심장 뇌 장기 항문 등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무 이상 없다고 한다. 아주 정상이라고. 아주 잘크고 있다고.


의사선생님 말씀처럼, 또 많은 산모들의 후기처럼

(입덧약을 먹더라도)

태아가, 우리 튼튼이가, 건강하고 튼튼하게 태어나길

오늘도 정말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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