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태어나서
아이 갖고 키우는 게 뭐 그리 대수냐,
원해서 아이 낳아놓고
힘들다고 하는 건 무슨 소리냐"
육아가 요즘에만 힘들어진 것도 아닐 테다. 6남매, 8남매를 키우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육아 휴직도 생기고, 여러 가지 육아 템들도 쏟아지는 세상인데 고무줄 기저귀 채우던 시절보다, 분명 애 키우기 편해진 건 맞는데 난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한 건지.
정체 모를 힘듦이, 단순히 육아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만 생각하며 살다가 나만 바라보는 아기가 내 품에 있다는 것. 아직 내 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내가 세상의 전부가 된 아이를 케어한다는 것. 철부지 여성이 엄마가 되는 과정, 그 어딘가쯤에 내가 있었다.
육아가 처음이라
그 어떤 것도 내 의지나 결심대로 되는 건 1도 없었다. 계획표 쓰기 좋아하는 나는, 조리원에 있으면서, 또 내 나름대로 3시간 텀의 수유 시간과 집안일, 아이와 놀아주기, 책 읽기, 낮잠 재우기 등의 육아 계획표를 짰다. 조리원에서 나가는 순간, 내가 아주 헛되고도 허황된 망상을 했다는 걸 알았다.
"신이 자식을 보내준 건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걸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애를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는 그 말도 하루하루 매 시간 매 분 초마다 실감했다.
울기만 하는 아이를, 왜 우는지조차 모른 채 보채고 어르며, 오늘도 발만 동동 구른다. 아기 응가엔 가슴이 조마조마. 이 응가가 건강한 응간지 아닌지 냄새 맡고 들여다보고 만져도 보며, '황금똥'이면 그저 감사하고 평소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곧바로 네이버 검색창을 켜게 된다.
소위 '참젖' 먹이겠다고, 손하나 까딱하기 귀찮아도, 배 안 고파도 미역국에 오색 반찬 삼세끼 해 먹으며
새끼 밥 주고 내 밥 먹고 밥밥 거리다 수개월이 지난다.
잠깐 장이라도 보러 갔다가 늦어지면, 양쪽 가슴에 돌이라도 매달아 놓은 듯 뻑적지근한 통증이 묵직하게 밀려온다. 그 돌들은 '지금 당장 젖을 빼내지 않으면 곧 터져버릴 거예요' 신호를 보낸다. 그때를 놓치면 양쪽 유두 쪽이 소변을 지린 듯 지도를 그려버린다.
이유식을 시작할 때쯤 '돌 밥(돌아오면 밥)'의 굴레에 빠진다. '오늘은 대체 뭘 먹여야 하나...' 이유식 필독서라는 <아이가 잘 먹는 이유식>을 보며 매끼 다른 야채와, 과일을 종류별로 번갈아가며 영양 가득한 이유식을 먹인다. 나는 미국산 소고기 먹어도 우리 아기 입에는 한우만 넣었다. 이렇게 이유식 만들고 이유식 먹이다 하루가 다 간다. 장보기가 무섭게, 돌아서면 냉장고가 텅텅 빈다. 간식까지 해먹이다보면 집에 있어도 제대로 허리 펴고 쉬는 시간이 없다.
아가가 이쁘고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힘든 게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늘 그렇든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켰다. 이상은 이상, 현실은 현실이었다.
모유수유, 안눕안눕(안고 눕고)의 끝없는 반복, 재워도 재워도 자지 않는 아기. 이런 건 육체적으로 지치는 부분이다. 솔직히, 이런 힘든 것들은 이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며 정신적으로 괴롭힐(?)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작은 아이의 세상이 '나'라니
평소 내 밥도 제대로 안 챙겨 먹고 먹을 게 없으면 시켜먹거나 굶어버리거나 했던 내가, 나 없인 정말 아무것도 못 먹고, 잠도 스스로 못 자는 이 작은 생명체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은 공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외출은 꿈도 못 꾸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잠이 와도 눈 한번 붙이기 힘들고 하다못해 아이 옆에서 책조차 맘 편히 보지 못하는 상황에 겁이 났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도 그렇게 컸을 테고, 남들도 그리 큰 것인데.. 다른 사람들은 다 쉽게 쉽게 하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것 같지?
남들 하는 만큼 다 해주지 않아도 돼
다른 엄마와 비교를 한다는 것. 다른 엄마는 아이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데 나는 이것도 못해주고 저것도 못해주고 스스로 비교하면서 무너져버리는 것. SNS 세상이 낳은 새로운 육아 고충이었다.
젖병소독기도 없던 시절엔 남들이 젖병소독기가 있는지, 이유식을 어떻게 만들어 먹이는지 아이에게 어떤 옷을 입히고 무슨 책과 장난감을 보여주는지 어디에 놀러 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지금은 그런 걸 알고 싶지 않아도 모르기 힘든 세상이다. 내 체력과 시간, 비용은 한계가 있는데 여기저기서 자꾸 새로운 육아템과 교구, 책 등이 보이면 조바심이 또 가슴이 쿵쿵 댄다. 여기서 또 죄책감이 든다.
"우리 애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엄마가 당연히 해야죠"
이젠 안다. 다 개똥 같은 소리란 걸. 엄마가 행복해야 애도 행복하거든.
두 아이를 키우면서 완벽하게 깨달은 것은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나를 사랑하는 것부터였다.
첫 번째 육아는 엄마라는 역할이 낯설기만 했다. 둘째를 낳고 두 번째 육아이지만 여전히 지금도 어렵다.
그래도 지금은 아이가 운다고 허겁지겁 달려가진 않는다. 5분 울고 그칠 거, 10분쯤 울리더라도 끼니때가 조금 지나더라도. 아이는 여전히 잘 크고 엄마를 보며 웃어 준다.
<아이가 잘 먹는 이유식>에 나오는 대로 굳이 이렇게까지 매번 다른 삼시세끼와 간식을 먹일 필요는 없었다. 매끼 같은 거 먹여도 아이는 잘 큰다. 간식도 굳이 핑거푸드 이런 거 안 만들어줘도 된다.
엄마가 된다고 꿈의 크기가 작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첫째 때는, 아이가 생겼는데 하고픈 게 여전히 많은 내가 잘못된 거라 생각했다. 모성애도 없는 모진 여자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한 여성으로서 이루고픈 꿈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것이 육아를 내팽개치는 게 아니라면 절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 자연스러운 것이라 스스로 다독였다. 슈퍼 맘이란 건 다들 엄마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었다. 다만, 지금은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도 인정했다. 이 아이가 엄마 없인 밥을 혼자 먹긴 힘든 건 맞으니까. 기저귀도 스스로 갈 수 없으니까. 엄마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줘야 한다. 몇 년만 지나면 엄마보다는 친구를 찾을 나이가 된 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둔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자. 후회하지 않게.
그 최선이라는 건 일 때문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단 한 시간밖에 없더라도 그 한 시간만큼은 휴대폰도 치운 채 최선을 다해 웃어주고 반응해주고 놀아주는 것으로 내 나름의 정답을 찾았다. 좋은 엄마가 되고픈 것도 내 꿈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꾸준히 하면서 내 꿈의 시간도 조금씩 앞당기고 있다.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기에 충분한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다. 엄마는 무언가를 더 채워야 하는 부족한 대상이 아니라 이미 충분한 힘을 가진 존재다. 내가 육아라는 일을 가벼이 여기거나, 눈에 당장 보이는 급한 일들 때문에 그 힘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엄마는 내가 나 자신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에 따라 많은 게 바뀐다. 나는 부족하기에 더 채워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충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자.
너무 애쓰지 말자. 너무 완벽하려 하지 말자. 슈퍼맘이 되려고 내가 태어난 것도 아니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슈퍼맘이 돼주세요"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조바심 내지 않아도 이 아이는 스스로 자라나고 있다. 이 아이는 여전히 엄마라는 세상을 가장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니 내가 흔들리지 않고 중심만 잘 잡고 있어도 되는 것이다. 아이 곁에서 웃어주고 보듬어 주면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늘 아이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주고, 다그치기보다는 기다려 주려 한다. 쉽지 않겠지. 그래서 기록으로라도 남긴다. 철부지 여성은 그렇게 어른 엄마가 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