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만하던 우리가, 어느새 콩을 키우고

엄마가, 그리고 엄마의 엄마가 되어 간다는 것

by 기자김연지


어릴 때 오빠는 나를 '콩마이'라고 불렀다.


내 키가 콩만하다는 이유에서다. 행여 기분이 좋은 날이면 그는 나를 '개콩마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는 '개'를 완전이라는 뜻의 접두사로 쓰지는 않았을 때인데, 유행어에 선구자인가)


지도 콩만 한 게. 핏줄이 호빗인데 지는 King콩이라도 되나 보지. 제 허물은 못 보는 법이다.


흔한 남매처럼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오빠는 나를 하루라도 놀려먹지 않으면 똥꼬에서 가시가 돋는 듯했다. 그렇게 서로를 하찮게 여기고 쉴 새 없이 으르렁대면서도 오빠가 자전거 타고 놀러 나가면 (5살짜리 나는) 짧은 다리로 "같이 가자"며 쫓아다녔고 보이스카우트에 들어간 오빠가 2박 3일로 첫 야영을 가는 날에도 "따라가겠다"며 울고불고했던 기억이 난다.


군대 가기 전날에는 내게 2만 원을 쥐어주며, (당시 2001년) 엉엉 우는 내게 "니가 가면 내 안 가도 된다. 니 좀 가라"며 떠났던 그는 집에서 한 시간 거리 부대에 자대 배치를 받으며 잊을만하면 나타나 엄마의 지갑을 거덜 내곤 했다.


<경찰청 사람들>을 보고 밤길이 무섭다는 내게 '얼굴이 무기'고 '몸이 흉기'라며 그렇게 놀려대더니 군대에선 여동생을 그렇게 선임들한테 팔아넘겼더라.


나는 알지도 못하는 소개팅을 어찌나 많이 잡아놨던지. 일면식도 없는 한 장정이, 동성로에서 "니 00 동생 맞재"라며 알은척을 했다. 그제야 그의 만행을 알게 됐다.


오빠가 캐나다 어학연수 갔을 때 나도 잠시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다른 친구들과 함께 클럽 같은 곳에 데려갔는데 내게 접근하는 외국인 남성들을 다 차단하는 게 아닌가 "자기가 내 남자 친구"라며.


아니 난 눈도 없는 줄 아나. 사람을 뭘로 보고
아니, 그럼 자기가 멋있는 줄 아는 갑지?


나에게 기억력이라는 게 생긴 이후 약 30년간 '저 인간은 도대체 뭔가' 의문과 의심이 참 많이 들었다. 밑도 끝도 끝도 없이 싸우고 울고 혼나던 콩만하던 남매는 어느새 각자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며 살고 있다.


첫째는 오빠의 아들을 정말 좋아한다. 조카가 "집에 놀러 온다"라고 하면 첫째 딸내미는 눈 뜨자마자 현관문 앞에서 사촌 오빠를 기다린다. 참 많이 날 울렸던 오빠지만, 그래도 그자가 있어 첫째 둘째에겐 친구 같은 사촌이 생긴 셈이다.


며칠 전엔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부모님 치매보험 얘기가 나왔다.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콩만하던 우리가 벌써 이런 나이가 됐구나. 새삼 부모님 연세 생각에 옅은 한숨이 나오면서도 이런 얘기를 나누고 준비할 수 있는 형제가 있다는 것도 '참 다행이다' 싶다.


오지 않길 간절히 바라지만, 결코 피할 수는 없는 이별의, 힘든 순간을 나 혼자 견뎌내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첫째가 유치원에서 직접 심고 키운 콩이라며 가져온 완두콩을 보며.. 콩만 한 두 녀석을 보면서.. 엄마가 되어간다는 것, 한편으로는 엄마의 엄마가 되어간다는 것이 이런 건가..


딸아이가 가져온 콩을 넣어 밥을 짓고, 고봉밥으로 먹었다.

콩을 먹지 않는 딸아이가 남긴 콩까지 먹었다.

단백질, 영양 가득한 콩 많이 먹고 힘내야지.

아이들의 엄마도, 엄마의 엄마도 잘 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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