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김연지 Oct 25. 2020

힘들 때 힘 내려 글을 씁니다

[나를 바라보는 글쓰기①내 감정 마주하기]안괜찮으면 안괜찮다고 말하세요

생각이 복잡하고 마음이 힘들 때,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을 때 펜을 듭니다


나를 찾고 싶고, 글도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나를 찾아야 하니까 나에게 집중할게요. 내가 있어야 세상도 있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최고라지요(뭐래;;)


지금 내 기분, 내 상태를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화가 나면 화가 난대로, 그저 의식의 흐름에 따라 펜 가는 대로 써내려면 된다. 누군가 내 노트를 보게 된다면, 이 사람은 화가 참 많거나 '하늘이 무너질 건 걱정하지 않나'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내 다이어리를 예시로 붙여볼까 생각도 했지만 프라이버시상 안될 것 같다. 아무래도 다이어리를 펼 때 기분이 좋을 때보단 안 좋을 때가 많았던 듯하다.


지금은 잘 기억도 안 나는, 일기장 속 몇몇 분들께 죄송하고 일기장만 보면 내가 너무 불쌍하기도 하고 어리기도 하고; 철없기도 하고 그래도 한편으론 그나이여서, 그 상황이여서 그랬던 건 같기도 하다. (그래요, 그저 부끄럽지만 어쩌겠어요. 그 또한 '나'였으니까)



나를 찾기에 앞서 지금 내 감정상태, 기분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일단 내 기분이나 상태가 안정돼야 나를 찾든 어떤 여행이든 떠날 수 있을 테니. 내가 어떨 때 기분이 안 좋아지고 슬퍼지고 혹은 좋아지고 들뜨는지 등을 알게 되는, 중요한 '자아 체크 포인트'다.




1. [나 들여다보기] 지금 나 어떤 것 같아?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딱 세가지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자. 그리고 생각하는대로 거침없이 답하자. 매일 쓸수록 좋다. 매일 쓰길 권한다. 


Q1. 오늘 내가 가장 기뻤던 순간은? 내가 언제 활~짝 웃었을까? 

Q2. 내가 오늘 가장 힘들거나 짜증났던 순간은? 웃은지가 오랜지라면(오래됐다면) 마지막으로 웃은 건 언제인가? 그땐 왜 웃었고, 지금까지는 왜 내가 웃지 못했을까? 나의 문제일까, 상대의 문제일까, 상황의 문제일까? 

Q3. 어제보다 나는 조금더 나아졌을까? 어떻게 나아질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다면 왜 그럴까?


아니, 나 좀 힘드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나조차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친구들을 만나도, 남편이 잘해주는데도 외로움이 가시질 않아.

나는 왜 이런 걸까? 뭘 해도 힘도 안 나고 의욕도 안 나고, 심지어 밥맛도 없어. 인생이 꼬인 것 같다.

내 처지가 아주 그냥 막 그냥 불쌍해.

미래도 보이지 않아. 이렇게 살다 죽는 건 아니겠지?

감정 컨트롤이 안돼 계속 신경질과 짜증만 내고 있어.. 진심은 이게 아닌데..

부장이 너무 나를 괴롭혀. 출근하기 싫어. 어쩌지?

이직하고 싶어. 아니 이직 말고 전직. 아니 그냥 다 그만두고 좀 쉬었으면 좋겠어.


(어렵지 않죠? 당신의 기분을 저 질문들을 통해 한번 쑥 들여다보세요. 너무 우울했을까?; 제가 한번 적어볼게요. 제 지금 기분을)

2020.10.24일 새벽.

매일 새벽에 일어나 노트북을 켠다. 브런치 북 공모에 낼 글을 쓴다. 사실 글들은 오래전에 써뒀긴 했는데, 다듬지를 못했다. 이번엔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고 싶다. 기사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일관된 이야기로 쭉 이어져간다는 것이 참 어렵다. 사람들이 필사하고 싶을 만큼 멋진 문장으로 뽑아내고 싶은데, 그러다 보니 자꾸 욕심만 덕지덕지 붙는다. 다른 사람들은 몇 권씩도 척척 내고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한 권조차도 힘들까? 이런 것도 돈 내고 배워야 하는 건가.. 그래도 기잔데, 글을 내가 못쓰는 건가.. 다른 사람들 책도 좀 보러 가봐야겠다.


하고 싶은 말을 손으로 내뱉는다는 생각으로, 진솔하게만 표현하면 좋겠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나를 찾는 글쓰기]이기에 '첫 문장은 어떻게 쓰고', '단어는 이렇게 정제해야 하며', '문장은 간략하게' 등의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내 모든 걸 받아줄 수 있는 바다에, 감정이라는 모래를 한 움큼씩 집어서 대차게 던진다는 생각으로!! 당신이 모래 던진다고 바다가 메워질 것도 아니고,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다. 던지는 폼도 중요하지도 않다. 가까이서 던지든, 멀리서 던지든, 오른팔이든 왼팔이든 상관없지 않나. 당신 기분만 풀리면 된다.  다만, PC나 스마트폰보다는 손으로 써보시길 권한다.


2. 내 감정, 내 손으로 써보기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언제 종교에 귀의하는 줄 아는지?


바로 "힘들 때"다. 일이 뜻대로 너무 안 풀리기만 할 때, 하다 하다 안될 때 신을 찾는다. 그러나 신께서 너무 할 일이 많으셔서 기도 응답이 빨리 오지 못할 때가 더 많을 테다.


글을 처음 시작할 때도 신을 찾는 이유와 비슷하다. 잘 살다가도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 일이 늘 잘 풀리기만 하면 글을 쓸 필요를 못 느낄 테다. 보통 간절한 게 있다 보니 그걸 글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 응답은 때에 따라서지만, 보통 기도보다 빠르다. 신께서 해주실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본인만의 정답을 직접 찾아 나서기에.


자기 계발서에 한 번쯤은 다 나오는 공식. <목표의 시각화> 보이지 않는 그 간절한 바람이, 글로 적으면 어쨌거나 보인다. 내가 이루고픈 목표가 지금 눈앞에 있다. 그래서 머릿속에서는 막연한 목표가 '쓰기'라는 과정을 통해 좀 더 구체화되면서도, 쓰고 보면 왠지 간단해 보인다는 게 <목표의 시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얘기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를 찾는 게 목표니까 내 상태부터 적어보자. 일이 잘 안 풀릴 때, 마음이 어지러울 때,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할 때, 애먼 남자 친구나 엄마한테 화풀이하지 말고 돈 내고 멀리까지 사주 보러 가지 말고, 타로점에 기대기보다는 노트를 펴 보자. 펜을 쥐어보자. 돈 안 들이고 굳이 옷 갈아입고 나가지 않아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거니까.


써보면 안다. 특히 으로 쓰는 것과 청소는 닮았다. 지저분한 방도 청소하면 깨끗해지는 것처럼 손으로 쓰다 보면 머릿속이 정리되고 분주하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기자란 직업 덕에 PC로 글 쓰는 게 훠얼씬 편하지만 반드시 펜을 들고 쓰는 날이 있다. 내 마음이 최소 일주일간 청소 안 한 내 방 같을 때다. 월화수목금 입고 나간 옷이 허물처럼 벗어져 있고 수건이란 수건은 실내 사이클 손잡이와 의자에 널려져 있고 컵이란 컵은 다 내 책상 위에 있다. 화장대는 뭐.. 말해 뭐해, 이상하게 화장대는 아무리 정리하고 자도 출근 뒤엔 '환장대'로 변해 있다. 힘들 때마다 붙잡는 구절이 있다.


"세상을 원망하기 전에 네 방부터 치워라"

펜을 잡고 한 글자 한 글자 노트에 눌러쓰는 건, 청소기로, 또 걸레로 구석구석 집 청소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수고와 고통과 시간이 필요하다. 허리 숙여 허물들 걷어내고 치우고 닦아내고 주방 옷방 화장실 등등 제자리에 물건을 갖다 두다 보면 원래 내 방에 있던 물건들만 남는다.


글을 쓰면 번잡한 것은 사라지고 나만 남는다. 흠.. 좀 허세 같다. 너무 진지했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에 비춰 더 와 닿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준비됐다면, 지금부터 쏟아낸다. 노트는 지금부터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이다. 지금 내 상태를 낱낱이 상세히,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 오늘 있었던 수많은 원망과 울분과 혹은 외로움을, 차오르는 이 어떻게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미친 듯이 써 내려간다. 우울할 때 펜을 들면 정말 우울한 생각이 어쩜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 내가 이렇게 우울한 인간이었나? 세상 우울과 걱정은 다 내가 안고 가는 걸 깨닫는다.


재밌는 건, 글을 쓰는 속도가 내 분노와 우울을 결코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막 휘갈겨쓰면서 지금 내 분노나 원망을 토해내다 보면

...

..

.

팔이 아프다;; 

손가락도 아프다.. 펜이 닿는 중지 손가락 안쪽이 아프다. 기분도 우울하고 짜증 나는데 이제 팔까지 아파...;;;; 에이씨; 신경질 내면서, 손을 탁탁 턴다.


와우. 뚜껑 열리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물이 100도씨까지 끓어 넘쳐 더 이상은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글에 쏟아내는 분노도 쉬어가는 타이밍이다. 물이 끓으면 불을 끄듯, 숨마저 참고 미친 듯이 분노를 글로 옮기던 내가, 겨우 한 숨을 돌리는 순간이다. 책상에 코 박을 정도로 열을 내며 쓰다가, 팔이 너무 아파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 고개를 들고 의자에 기대 노트를 바라본다. "하, 진짜 저 글씨마저 내 기분 같군;;"


저만치서 휘갈겨쓴 노트를 한참 들여다본다. '내가 뭐라고 썼나' 눈으로 읽어 내려가다 아 또 다른 분노가 차올라 글을 더 써 내려... 갈 수 있지만 일단 팔이 너무 아프면, 한 숨 돌리며 노트를 쳐다보게 된다.


내가 상황에 매몰되기보다는 그 상황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귀찮아서 도저히 손으로는 못 쓰겠다"면 PC도 좋다. 사실 모든 건 도구일 뿐이다. 다만, 손으로 쓰면 고통이 빨리 오기에, 반대로 분노가 절정을 찍고 사그라드는 시점이 빨리온다. PC로 쓰면 좋은 건, 그 감정을 빨리 놓치지 않고, 담아낼 수 있긴 하다. 그리고 자판을 뚫어버릴 것 같은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탁! 하는 타자 소리에 뭔가 좀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도 있다. 


말 나온 김에 '청축' 자판기를 감정 마주하기용(이라고 쓰고 분노 배출용으로 읽는다) 추천한다. 이건 직접 써보지 않고선 절대 그 쾌감을 알 수 없다. 단 꼭 반드시 혼자 있을 때 써야한다. 사람들 많은 데서 그렇게 쳤다간, 층간소음보다 더 한 큰 싸움 날지도 모른다. 


3. 문제는 네 착하니즘...'내 탓' 좀 그만하고, 내가 힘든 '상황' 바라보기


절망의 혹은 좌절의 웅덩이에 빠져서 '어떻게 올라가지?' 위만 바라보며 전전긍긍하는 게 아니라, 나는 웅덩이에 빠졌을지라도 '그 웅덩이에 빠진 나'를 웅덩이 밖에서 바라보게 된다.


나를 찾아 떠나겠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착하고 근면 성실한 사람들이다. 타인의 시선에 살아왔기에 나를 못 찾았던 것이다. 남들이 "예쁘다, 괜찮다, 멋지다" 생각하는 기준에 자기를 욱여넣어왔기에 지금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인지 모르는 것이니까.


그러기에 여태껏 살면서, 엄마가 사준 옷 너무너무 별론데, "엄마 너무 예뻐요, 내 스타일이에요" 정도의 거짓말만 하고 산 사람들이다. 웬만해선 본인이 사고 쳐서 힘든 것보단 현재 지금의 상황이 힘든 게 대부분일 테다.


왜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어. 착해서 그렇다. 거절하지 못해서 그렇다. 지금껏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이 좋다는 기준에 부합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기대치는 자꾸만 높아진다. 속으로 생각하지 '나는 원래 이거 안 좋아하는데..' 그러나 주변에선 "이거 맞지? 네가 좋아하는 거 사 왔어, 엄마가 네가 좋다는 그 과목 과외 선생님 찾았어"


그거 아닌데, 싸우기 싫으니까 괜히 갈등 만들기 싫으니까 넘겼던 것들이 쌓이고 쌓여, 이게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건지, 원하는 건지, 하다 보니 좋아진 건지, 괜찮다고 하고 나도 나쁘진 않으니, 이 정도면 내가 원하는 게 맞는 건지 막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제일 처음 1도 어긋났던 게 시간이 흐르고,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면서 진짜 나와는 멀어지고 말았다.


그럼 나를 찾으러 가야지. 주변 것들을 치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최소 일주일간 청소를 안 한 방을 우리 엄마가 보면 질색팔색 하면서 이놈의 가시나 이 나이 되도록 방구석을 이모양으로 하고 사냐고 잔소리를 쏟아내겠지. 그러나 우리 엄마는 내 물건들이 있던 원래 장소들이 어딘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어질러져있어도 나는 안다. 무질서 속에도 다 질서가 있다는 것을.



마찬가지다. 웅덩이에 어떤 고난에 처했어도 이렇게 된 원인이 뭔지, 왜 나 여기에 있고, 어떻게 해야 나갈 수 있는지, 나는 안다. 그동안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 잊고 있었을 뿐. 아니 어쩌면, 결국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지금까지 끌어왔을 수도 있다.


행여 몰랐다면 지금부터 알면 된다. 글을 쓰다 보면 상황 정리가, 내 마음 정리가 될 것이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가장 쉬운 방법이 글쓰기다. 그래서 글쟁이들 모두가, 힘들 때 힘을 내려 글을 쓰는 것이다.








이전 05화 뻔뻔하게 너만 생각해. 그래도 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