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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연지 Oct 25. 2020

뻔뻔하게 너만 생각해. 그래도 돼

[기똥찬 순간 만들기 ]자식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을 인생, 살고 있나요

내 인생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눈물 나게 웃긴, 너무나 웃긴데 웃고만 있기엔 마음이 헛헛한 형제간 대화가 나온다. 그중에서도 마음을 후벼 파는 건 삼형제 중 맏형 역할인 상훈(박호산 배우님)의 대사다.


"내가 내년이면 오십이다. 놀랍지 않냐. 인간이 반세기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게. 아무것도 안 해서 기억에 남는 게 없어"


"죽어라 뭘 하긴 한 거 같은데 기억에 남는 게 없어. 아무리 뒤져봐도 없어. 그냥 먹고 싸고. 대한민국은 50년 동안 별일을 다 겪었는데 인간 박상훈의 인생은 50년 동안 먹고 싸고 먹고 싸고 먹고 싸고 먹고 싸고.... 징그럽도록 먹고 싸고.."


박기훈(막내): "본론으로 좀 들어가라 그만 좀 싸고!!!"


 "그래서 만들려고. 기억에 남는 기똥찬 순간 있어야 될 거 같아. 뭐라도 만들어 넣어야 그래야 덜 헛헛할 거 같아"




꿈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초조하기만 했던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술 마시고 불안을 잊어보기 하고, 드러누워 말도 안 되는 꿈을 누렇게 색 바랜 천장에 그려보기도 했다. 다음날 책을 펴고 다시 공부한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미래에 한 발 더 가까워질 것 같았으니.


이미 이 길에 들어온 지 10년. 나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 내가 꿈꾸던 모습으로 살고 있나? 10년 전엔 어렴풋하게나마 10년 뒤 내 모습을 그렸다. 그럼 10년 뒤에 나는 뭘 하고 있을까? 참 이상해. 분명 내가 원했던 일인데, 끊임없이 항상 정신없고 분주하기만 한데, 늘 피곤하기만 한데, 왜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질까?


두려웠다. 아침에 눈뜨는 게 겁이 났다. 내 삶이, 내 하루하루가 죽을 때까지 이렇게 반복될 것만 같았다. 잠수라도 타버릴까? 아니야, 그러기엔 뒷감당이 안될 것 같고 도망칠까? 아 그건 좀 X 팔리잖아..


멀쩡하게 잘 걷다가도 누가 "쭉 걸어가 봐"라고 하면 오른팔과 오른발이 함께 나가는 것처럼. 모든 게 뒤틀리고, 어긋나기만 하는 것 같았다. 숨을 쉬는 매 순간마다 불안에 휩싸이는 것 같다. 



"20년 전에 망한다던 지구는 언제 망하는 거지?" 나만 망하면 억울하니까 그냥 세상이 같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더라.


일이 힘들기만 했어? 어쨌든 월급 받지 않았냐고? 그럼. 월급 받았지.


그 돈으로 먹고 싸고 먹고 싸고..

일하고 먹고 싸고 먹고 싸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고 이렇게 꾸역꾸역 먹고 싸기만 한 걸까;;;

아 안돼 안돼!!"반백살 되기 전에 기똥찬 순간 나도 만들 거야!!"


그런데 뭘 하지? 흐미.. 아무래도 이 길이 아닌 건가;;;; 근데 어쩌냐.. 이미 와버렸는데ㅠㅠ 이제 와서 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CEO 간담회에서 내가 하는 단골 질문이 있다. "대표님의 꿈은 뭐예요? 회사 대표 말고 000님의 꿈이요!"


여기서 단 한 번도 대표 말고 그냥 사람 000의 꿈에 대한 대답을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공식 석상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짐이 곧 회사요" 같은 물아일체의 느낌?이랄까.;;그래, 이 분은 최소 수천 명의 직원 생계를 책임지는 수장이라 그럴 수 있다. 대표 한마디 한마디 무게는 대단하니까.


그럼, 질문을 바꿔서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꿈. 언제 들어도 설레는 그 한 단어. 지금부터 10년 뒤, 20년 뒤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우리 어렸을 때, 장래희망을 쓰고, 돌아가면서 발표도 하고 직업 탐구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어떠세요? 그 꿈을 이뤘나요? 그럼 이제 그다음 꿈은 없나요?


이 글을 쓰기 위해 직딩이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결혼하는 거, 그냥 한 번 푹 자보는 것, 여행 가는 것, 외제차 사는 것, 내 집 마련, 카페 창업.."


이것도 꿈이라면 꿈이고 소중하고 중요한 목표다. 확실히 학창 시절 그렸던 꿈의 모습이나 크기가 다르다. 뭔가 쓸쓸하기도 하고, 꿈에 생기가 없달까. 그 꿈에 지금 고달픔이 스미는 것 같아 서글퍼졌다. 


<나의 아저씨>진짜 현타 제대로 오는 명대사가 있다. 세상의 모든 성실한 사람들은 반드시 새겨야 한다.


(드라마를 안 보신 분들도 있으니 간략히 설명하자면,)

삼 형제 중 유일한 대기업 부장인 동훈(이선균), 파견직 여직원 이지안(아이유)이 손녀 가장인 걸 알고 짠하고도 대견해 챙겨준다. 알고 보니 이지안도 동훈을 견제하는 세력에 동훈에게 접근했던 것(그러나 나중에 동훈 편으로 돌아서죠. 의리녀 등극) 아내의 불륜을 알면서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모른 척한다. (일단 여기까지. 아직 못 본 분들도 계실 텐데 스포를 다 말씀드릴 순 없으니)


그런 동훈의 단짝 친구이자 수재이지만, 불자가 돼버린 겸덕(박해준)의 대사다. 경직돼 있는 현대인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려준다. 특히 매일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출근한다면, 꼭 한번 올해가 가기 전엔 이 드라마를 보길 추천한다. (작가님 존경합니다)



겸덕: 넌 어떻게 지내는데?


동훈: 망했어. 이번 생은.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


겸덕: 생각보다 일찍 무너졌다.

난 너 한 60은 돼야 무너질 줄 알았는데

내가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는데 결정타가 너였다.

이 세상에서 잘 살아봤자 박동훈 저 놈이다.

더럽게 성실하게 사는데, 저 놈이 이 세상에서 모범 답안일 텐데 막판에 인생 더럽게 억울하겠다.


동훈: 그냥.. 나 하나만 희생하면 인생 그런대로 흘러가겠다 싶었는데..


겸덕:  희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가 6.25 용사냐 인마, 희생하게?

열심히 산 거 같은데 이루어놓은 건 없고, 행복하지도 않고,

희생했다 치고 싶겠지. 그렇게 포장하고 싶겠지.

지석이한테 말해봐라(지석이는 극 중 이선균 아들)

널 위해 희생했다고. 욕 나오지 기분 더럽지.

누가 희생을 원해, 어떤 자식이, 어떤 부모가 누가 누구한테 거지 같은 인생들의 자기 합리화 전다 인마.


동훈: 다들 그렇게 살아~


겸덕: 그럼 지석이도 그렇게 살라고 그래!

(이전까지만 해도 초점 없던 이선균 눈이 번뜩인다.!!)


겸덕:  그 소리에 눈에 불나지,

지석이한텐 절대 강요하지 않을 인생 너한텐 왜 강요해 너부터 행복해라 제발,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상훈이 형하고 기훈이 별 사고를 다 쳐도, 네 어머니 두 사람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는 거 못 봤다. 그놈의 시키들 어쩌고 저쩌고 매일 욕하셔도 마음 아파하시는 거 못 봤어.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는 너 때문에 매일 마음 졸이시지. 상훈이 형이나 기훈인 뭐 어떻게 망가지든 뭐 눈치 없이 잘 살 거 아시니까.

"뻔뻔하게 너만 생각해. 그래도 돼"


이 두 마디가 참 가슴 아린다.


어쩌면 난 상훈이 아저씨처럼 반백살이 되기 전에, 또 대기업 부장쯤의 나이가 되기 전에, 회사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달아서 참 다행이라 느꼈다. 이미 아픈 뒤긴 했지만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나름 어린 나이에 알았지. 젊어서 고생 사서 한다고(?) 일찌감치 몸이 아프고, 마음도 병들고, 내가 뼈를 묻을 거라 다짐했던 회사에 사표도 내보고, 두루두루 상처도 받아본 게 내가 좀 더 뻔뻔해질 수 있었던 것, 나답게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


"나만 생각한다"는 것. 함께 사는 세상에서 나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남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하는 것. '뻔뻔하게 나만 생각하는 삶'의 정의를 나는 이렇게 내렸다.




남이 보는 나에서, 내가 나를 보기로 했을 뿐인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주어지는 24시간이 너무 소중해졌다. 일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까지 하려면 허투루 버릴 시간이 없었다. "시간은 절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만 35년 인생을 살면서 나름의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겪었고 10년 간 기자로 일하면서 정말 황당하고 어이없는 사건사고들도 숱하게 마주하면서 특히 내가 아프고 난 뒤에 결심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미루지 않고 바로 할 거야"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하루를 1 시간 단위로 계획하고 1분 1초를 쪼개 쓰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내다 보면 스스로가 대견해지는 순간이 온다. 이런 작은 성취는 조금 더 큰 성취를 불러온다.


오늘에 감사하고 내일을 기대하며 살게 된 이유. 상처 받은 순간들, 아팠던 시간들, 눈물로 보냈던 세월들이 지금은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 오히려 이런 것들도 나의 스토리가 됐다. 이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낸다면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리라 믿는다. 나는 또 이걸 통해서, 또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비록 세상이 말하는 실패를 겪더라도 내가 얻는 게 있다면 그건 절대 실패가 아니다. 대단한 삶을 살고 있진 않다면, '성공한 삶=행복한 삶'이라면 나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라고 자신한다.


직장 생활이 너무나도 힘들다면, 그전에 직장을 갖는 과정이 고달프다면, 입시를 준비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버겁기만 하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의 수많은 원 오브 박동훈으로 살고 싶지 않다면,


이제 먹고 싸지만 말고;;;;^^;;; 이제는 써보자. 나를 위한 글을, 나를 찾는 글을. 그간 혹독하게 나를 보채고 앞만 보고 달려오기만 한 나 자신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는 글부터 써보자. 그럼 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테다.


한 번뿐인 인생, 진짜 나로 나답게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를 좀 그만 괴롭히고, 내 인생의 기똥찬 순간, 만들어보길 바란다. 내가 살아 숨 쉬는 한, 나로 살기에 늦은 때란 없다. 


세상의 수많은 성실한 박동훈 님들. 뻔뻔하게 너만 생각합시다. 그래도 됩니다.


자, 나를 만나는 설렘을 장착하시고

나를 찾고 싶은 분들은 

펜 한 자루와 노트 한 권을 준비합시다. 

(PC도 괜찮습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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