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을 의심했다.
"2025학년도부터 2028학년도까지 4년간 5개 학년 입학"
2018년 12월에 태어난 첫째와 2022년 5월에 태어난 둘째까지 어쩜 기가 막히게 해당됐다. 초저출산 시대에 아이 낳고 새벽 네시 반 미라클 모닝 하며 일도 육아도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의 현재는 딸의 미래"라며 커리어 부여잡고 힘들게 번 돈으로 세금도 꼬박꼬박 냈다. '하나 키우기도 힘들다'는 시대에 둘째까지 낳았더니, 출산 장려는 못해줄망정 돌아온 건 언니 오빠들과의 피 튀기는 경쟁과 만 5세부터 돌아야 하는 학원 뺑뺑이라니. 아니면 엄마의 커리어는 '여기까지'인 걸까.
첫째는 12월생이라 같은 또래보다 아직 어린 구석이 많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들었던 아이는 유치원 적응하는데도 꼬박 한 학기가 걸렸다. 엄마와의 애착형성이 잘 돼서 그런 것이라며 선생님들은 위로했지만, 울면서 헤어지는 아이의 모습은 회사 가는 내내 눈에 밟혔다.
방과 후 수업할 때 반을 바꿔 수업하는데 학기 초에 근형이가 그 반에 들어가질 못하고 밖에서 울기만 해서 "아예 반을 바꿨다"는 선생님의 얘기에 한숨밖에 나오질 않았다. 문 밖에서 울면서 서성이는 딸의 모습도 떠오르고, 저희 애 하나 때문에 수업 진행도 못하고 동동거렸을 선생님들께도 너무 죄송했다. 반을 바꾸는 번거로움을 감내해낸 다른 아이들한테도 너무나 미안했다.
첫째는 정말 잘 놀고 에너지 넘치고 활발하고 친구들을 좋아하고 또 잘 챙긴다. 다만 어디까지나 익숙해졌을 때 이야기다. 새로운 환경을 굉장히 낯설어하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타입이다. 어린이집 적응할 때까지 (어린이집에서) 식음을 전폐했다. 유치원에서는 대소변을 꾹꾹 참고 왔다. 첫째의 이런 예민한 성향을 알게 된 것은 돌 이후였다. 신기하리만큼 태어난 지 1년 딱 되는 날부터 '자기 스스로 먹겠다'고 숟가락을 쥐어든 아이는, 처음 보는 음식을 마주하면 엄마 아빠부터 먼저 떠먹여 주고 (음식이 괜찮다는 걸 알면?) 그다음에야 자기 입에 넣곤 했다.
물론 교육이라는 게 이런 아이들 하나하나 발달과정을 맞출 수는 없다. 아이들도 맞춰가야 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배워나가고 성장해가는 것일 테다.
하지만 이건 단지 1년 빨리 공교육에 편입되는 것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만 5세에 입학하는 것은 한국이란 교육환경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이 뉴스가 나오자마자 한 시간도 안돼 맘 카페와 또래 엄마들의 단톡방엔 불이 났다. “학교 입학 시기를 앞당기면 영어유치원 입학 시기는 만 5세가 아니라 4세부터 해야 하고 한글도 지금 늦었다”는 부모들의 불안으로 어수선하기만 하다. 나 역시 이 기사를 보고 난 다음에 신랑한테 바로 했던 말이 “첫째, 한글 시작해야 하는 거야?”였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를 책상 앞에 앉혀두기보다는 많이 뛰놀게 하자”는 게 부부의 철칙이었지만, 동공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부는 아직 '검토 중'이라지만 벌써 이때 입학하는 아이들을 두고 '박순애 세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 무슨 평행이론인가.
나는 '이해찬 세대'다. 이해찬 세대를 일컬어 당시 어른들은 '정부에 제대로 뒤통수 맞은 세대'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 뒤통수에는 학생도 있지만 수험생 부모들도 포함된다.
요즘 학생들은 이해찬 세대를 잘 모르겠으니 잠깐 설명하자면 당시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이 "공부 못해도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선포해 그 대상이던, (뭣도 모르고 좋아하다 단군 이래 최저학력으로 역사에 기록된) 학생들을 일컫는 말이다.
*2002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02학번)이 이해찬 1세대, 2003년 졸업(03학번)이 이해찬 2세대, 그다음인 1985년생과 빠른 1986년생(1~2월생)을 이해찬 3세대라고 한다. 나는 3세대다. *(흐릿한 기억력에 위키백과를 인용합니다)
취지는 좋았다.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 재임 당시는 1998년부터 1999년 무렵으로 인터넷이 본격 태동되던 시기였다. '정보화 사회'에 맞춰 새롭게 도래할 사회에 걸맞은 인재상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핵심은 '박학다식한 인재'와 '한 분야에 특출한 천재'에 대한 논의였다. 특히 빌 게이츠처럼 독보적인 인재가 '우리나라에서는 왜 나오지 못하냐'는 것에 성토가 이어졌다. 인터넷에서 어지간한 정보는 다 검색해서 찾아낼 수 있는데, '과거처럼 모든 것을 머리에 담고 있는 것이 과연 좋냐'를 두고 고민한 끝에 "하나만 잘해도 된다"로 결론 내려진 듯하다.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갈 수 있다"는 교육 정책은 "(강제적인) 야간 자율학습을 비롯해 월간 모의고사, 학력고사 등을 폐지시켰다. 당연히 교육 환경은 전반적으로 느슨해졌다. 그러나 정작 수능은 불수능이 되면서 '폭망'한 세대가 이른바 이해찬 1세대다. 서울대에 가려면 400점 만점에 적어도 380~390점을 받아야만 했던 커트라인이 340점대까지 내려갔다. 서울대가 인원이 남아돌 정도의 미친 하향지원이었다. 미친 척하고 서울대 넣었는데 인원 미달로 합격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하향 지원이 심각했다. 상당수 학생들이 진로에 큰 혼선을 빚었다. 수시에 합격하고 놀던 학생들도 망했다. 하향 지원해 합격했더라도 재수를 택하거나 편입학을 준비한 학생들도 많았다. 암학생들은 대학 대신 군대를 택하기도 했다.
당시 고3은 망했지만. 재수생들은 선방했다. 한해 이전 시험은 유례없던 물수능이었다. 만점자가 속출하면서 상대평가에 밀려 SKY에 못 갔던 우수 학생들의 재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재수생 선배들은 "공부 못해도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간다"는 말에 휘둘리지도 않았다.
이로 인한 여파는 2003년 이후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수능은 꾸준히 재수생들의 강세였다.
"특기 한 개만 있어도 대학 간다"는 정책 아래 공부한 학생들 중에는 당시 고등학생만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정책이 발표될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 중에서는 교육부의 그 말만 믿고 공부보다는 어떤 특기를 살려줄 방도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어중간한 성적으로 잘하는 아이들 들러리만 설 것 같으니, 차라리 그 시간에 '내 새끼 특기 살리고 기도 살리는 게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중 3 때였다. 수업 시간에 자거나 노는 애들이 주의받으면 "공부 못해도 대학 간다는데요"라며 말도 안 듣고 약 올리곤 했다. 선생님들은 코웃음 쳤다.
"공부 못해도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 간다고? 당구만 잘 쳐도 대학 간다고?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면 대학 간다고? 근데 그리 되나 봐라. 서울대, 연고대에서 미쳤다고 당구 잘 치고 공부 못하는 애들 뽑겠나? 그림 잘 그리가 대학 가려면 피카소만큼은 그려야 될 거다. 너네 그렇게 공부 안 하다가 진짜 땅을 치며 후회할 거다. 두고 봐라" (제가 대구 출신이라..)
선생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모두 맞았다. 모두가 속았다. 물론 특기 하나로 대학에 갈 수는 있었다. 거의 국가대표 급이나 돼야 가능했을 뿐. 김연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안도 미키 정도는 돼야 했다. 선생님의 예언대로 당구'만' 잘 치는 애들은 SKY에서 원하지 않았다. 김연아급의 실력이 있어도 유능한 코치에게 훈련받고 국제무대에서 겨루려면 외국어를 잘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육 정책은 바뀌었지만, 대학은 이를 빨리 반영 못한 것도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부에서 이렇게 하라'라고 했다고, 없던 과를 당장 신설하고 교수를 뽑고 학생을 모집할 수도 없지 않나.
아이들이 특기 전형으로 무엇을 내세울지도 모르는데(?!) 정부는 '공부와 상관없는 것을 잘해도 전공과 어떤 연관이 있다면 그 학과에 진학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교사고 학생이고 이해찬 1세대에 적용될 입시에 대해 감도 못 잡는 상태가 무려 2년간 지속됐다. 공부를 못해도 뭐든 간에 하나만 잘하면 괜찮은 대학교로 진학할 수 있다는 환상을 정부와 언론이 계속 심어줬기 때문이다.
결국 보편적인 분야에서(이미 기존에 학과가 있는 등) 진짜 뛰어난 무언가가 없다면 결국 국영수 위주의 기존 공부를 해야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이해찬 세대의 교훈은 진짜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길이었음을 상기시켜준 것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구 학과라는 건 생기지도 않았다.)
이해찬 세대부터 음지에 있던 사교육이 무섭게 활개를 치게 된 시기라고 한다. 야자가 폐지되면서 돈 좀 있다는 집에서는 마음껏 사교육을 시켰다(곤 한다. 지방 고등학교는 무조건 다 하는 분위기이긴 했다. 0교시도 유지됐다) 야자 끝나고 밤 10시부터 과외를 받을 필요 없이 오후 5시 이후로 쭉 ~ 과외를 받았던 것이다. 혼자 공부하는 아이들과는 성적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해찬 1세대는 '단군이래 최저학력'으로 남았다. 당시 교육 정책을 추진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교육 정책의 실패는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길뿐이다.
이미 교육 정책의 희생양이 됐던 이해찬 세대 엄마는 박순애 세대 남매를 키우게 됐다. 어떠한 돌봄 대책도 없이 만 5세에 입학 정책이 자리 잡는 과도기에 언니 오빠들과 함께 기초 학력을 다져야 하는 아이들이다.
첫째가 유치원 추첨으로 선발됐을 때, '떨어진다는 애들도 많은데 다행'이라 싶었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유치원은 어린이집보다 등원은 30분 정도 늦어지고 하원은 1시간이나 빨라졌다. 늘 종종거리며 출근하고 동동거리며 퇴근한다. '이래가지고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우라는 거냐, 맞벌이가 많을 텐데 다들 어떻게 키우는 건가'며 늘 초초하고 답답한 심정이 가시지 않는 와중에 만 5세 조기입학이라니. 그럼 아이가 점심 먹고 1시에 하교하면 애는 누가 돌보는 건가. 만 5세짜리를 벌써부터 학원 돌려야 하는 건가. 교육을 위한 학원이 아닌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한 '사보육'인 셈이다. 여기다 둘째까지 하면 그 비용은?
보육도 안되고 경쟁은 치열해지고 애들은 어쩔 수 없이 어린 나이부터 학원 전전하고. '엄마의 퇴사만이 답인가' 싶다가도 퇴사한들, 엄마가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한정돼 있다. 공부하고 숙제하고 시험치는 것들은 아이 스스로 감내해야 할 일이다.
공부, 성적만이 문제가 아니다. 만 5세 어린이 30여 명의 인성, 사회성 등을 담임 선생님(부담임이 있다한들) 감당할 여력이 될까.
아이들은 '양보'라는 게 입력이 잘 안 된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선생님이 그랬다.
엄마가 아이들 장난감 선물하면서 "00 친구랑 사이좋게 가지고 놀아"라는 말은, 남편이 아내에게 비싼 옷 선물하면서 "옆집 엄마랑 사이좋게 나눠 입어"라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함께 논다'는 개념도 다르다. 친구와 함께 놀이터에 가도 '따로' 논다.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함께 노는 것이다. 만 5세에 입학하는 아이도 힘들겠지만, 이런 아이들을 매일 몇십 명씩 컨트롤해야 하는 교사는 극한직업 중에서도 초극한 직업일 것이다. 특히 초1 담임은 좌천 혹은 귀양살이 취급받으면서 다들 기피 하지나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아이들 교육 정책에 정작 아이들이 빠져있다는 건 아이는 물론, 부모, 교사들까지 피 말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한다. 먼 앞날까지 미리 내다보고 세우는 크고 중요한 계획인 것이다. 아이들이 나라의 미래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어떤 것보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육아템들이 많이 나오고 정부 지원금도 늘리는데 왜 갈수록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는지, 조기교육 사교육에 공을 들여도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형 인재는 왜 한국에서 나오지 않는 건지, 성적비관으로 자살하는 아이들은 끊이지 않는 건지 근본적인 원인을 찬찬히 따져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