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오행](2023)_22NOV22
여전히 판타지(fantasy)를 좋아하는, 미성숙한 인간인 나로서는 드라마에서 두 번째 기회를 얻는 주인공들을 보면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시그널]이나 [터널]은 접근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인공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이야기라서 좋았다. 정경호가 나오는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도 좋았고, 하여튼 이런 류의 환생 스토리들은 어느 정도 머리도 써 가며 봐야하고, 언제나 은근한 매력들이 있다. 몇 년 전 드라마이긴 하지만 [시카고 타자기]까지도 드라마의 인기와는 상관없이 나의 상상력도 자극해 주었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지만 절대 그럴 수 없는 인간의 대리만족이긴 하지만, 혼자인 밤이면 더없이 좋은 '땅콩'이자 자극거리다.
요즘은 보통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방송이 끝난 후 바로 재방송을 해 주기도 해서 시간을 잘 맞추면 하루에 두번씩 같은 편을 볼 수도 있다. [나의 해방일지]도 대부분 그렇게 봤다.(나도 참 한가한 인간이군.) [빈센조]는 악을 처단하는 방식이 속시원해서 드물게 통쾌한 복수극이었다. 한참 [빈센조]에 빠져있다가 방송이 끝나고인가, [빈센조]의 매력에서 1-2주 정도 빠져 나오지 못했다. [빈센조]이후 그나마 몇 편의 드라마를 보면서 [빈센조]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 사이 [나의 해방일지]도 보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다시 보고, [수리남]도 볼 수 있었으니 심심하지는 않았나 보다. [오징어 게임]은 앞과 뒤 부분을 다시 보기는 했지만 마지막 편은 재미가 없어서 보다 말았다.
[부잣집 막내아들]이던가 송중기가 새로운 드라마를 찍는다는 소식이 있었다가 시간이 꽤 지나서 잊고 있던 참에, [재벌집 막내아들]이 시작되었다. 1편, 2편은 텔레비전으로 보지 못하고 넷플릭스를 찾아 보았다. 아직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레트로(retro) 스타일의 장면들이 여럿 등장했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니 한국사회의 민낯을 시원하게 드러내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시도는 해 보려나 보다. 지금까지 모든 드라마들이 그렇듯이, 보통 사람들이 재벌, 특히 한국의 재벌에 갖는 환상을 어느 정도는 유지해 주면서 말이다. (원작의 이야기를 나는 알지 못한다.)
다큐멘터리처럼은 아니어도 한 나라의 경제를 흔들만큼 영향력을 지닌 큰 기업들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다루는 드라마 한 편쯤 있었으면 좋겠다. '재벌'이라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재벌은 그 자체로 권력을 가진 거물들이다. 그간 이 거물들이 한국의 정치와 호의적으로 결탁했든 아니든 간에 이제는 한국의 역사를 배우는 저 먼 외국의 학생들도 알 만큼, "한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몇 가지" 안에 드는 이야기로 한국과 관련한 경제 서적이며 자료들에도 등장한다. 이 드라마에서 소재로 하는 한국의 재벌집 이야기는 그럼 어느 쪽일까,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이상과 현실, 뚫을 수 없는 두 가지의 층위로 남을까, 아니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살해 당한 후 환생하면서 내뱉는 그 말, "이번 생은 나에게 기회다."에서처럼, 사회의 낮은 계층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죽고 마는 현실을 뒤집어 주고 나아가 한국 사회를 뒤집어 정의를 실현하는 구세주가 될까. 그에게 이번 생은 어떤 의미에서 또다른 기회가 될까.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제목이야 그동안 한국의 드라마계를 이끈 아침 드라마나 소위 막장 드라마의 대를 이을 만큼 상업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작가와 연출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최소한, 납득할 만한 인과관계들이 속속 들어있기를 희망한다. [오징어 게임]에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주는 우울감과 같은 이중 프레임이 들어 있지 않았다면 나는 내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으로 남아야 할 놀이들을 한낱 돈놀이쯤으로 여기게 해 버린 감독을 미워했을 것이다. 감독은 [오징어 게임]으로 대여섯 가지의 한국의 놀이를 돈과 목숨을 맞바꾸는 이벤트로 탄생시켰다. 그것도 전세계에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오징어 게임]이 내게 던져 준 두어가지 충격 때문에 이 드라마의 성공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건드렸어야 할 한국 사회의 민낯이기도 하기에,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의 생존 게임의 방식을 거부할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나라도, 지역도, 그리고 어느새 종교도, 직업도, 모든 것들이 대략 반반으로 나뉘는 이 현실을 나도 살아내야 하니까 말이다.
하긴 우리는 언제나 '하느냐, 하지 않느냐', '가느냐, 가지 않느냐', '기냐, 아니냐', 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부자와 아닌 자'와 같은 반반의 논리와 선택 위에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삶의 현실에서는 1:100으로 결정되는 일들은 거의 없다. 우리가 완벽한 어떤 쪽이 아니라 실은 덜 싫거나 덜 손해가 나는, 차선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규칙없는 게임'들에 노출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49:51로 선택되는 일상의 일들. 그런데 그런 선택 앞에서라도 설 수 있는 것, 그것은 언제나 기회이다. 모습이 어떻든 삶 자체는 매일 주어지는 하나씩의 기회나 다름 없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두번째 삶의 기회를 얻는 주인공의 비장한 말, "이번 생은 나에게 기회다."와 같은 거국적인 말들은 던질 수 없어도, 하루하루 우리는 최소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들을 부여받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해 그 기회들을 여유롭게 선택하지 못하고 후다닥 또는 우당탕탕, 그것도 아니면 헐레벌떡, 출근 차에 몸을 싣는 나같은 인간의 후회도 있고. 아아, 나는 오늘도 계획보다 늦게 일어났다, 두 시간 만큼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늘 능동적으로 고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삶, 그 자체는 모두에게 기회이므로. 던져진 기회를 던지는 것은 너무 어리석다. 그래서 나는 이번 드라마에서 나의 "빈센조 까사노"가 아주 적극적으로 자신의 기회를 사용해 주기를 바란다. 아니, 사실은 당장 볼 만한 드라마가 없어서 몇 주간 송중기에 다시 빠져주기로 한다. 판타지는 언제나 현실이 아닌 그 어떤 환상을 기다리는 마음에 불과한 것이라서 이미 우리는 '현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진리로 알고 있다.
지금 저 드라마는 사회적 정의와 불평들을 위해 싸워줄 투사가 아니라 상업적인 콘텐츠로 높은 시청률에 목표를 두고 달리고 있는 것임을 물론 알고 있다. 어차피 알고도 속는 것,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척 하는 어린 아이들의 그 영악함은 그래도 '선물'이라는 베네핏으로 보상받지 않던가.
나는 이 드라마가 알고도 속으려는 나같은 철없는 어른을 위해, 적당한 선에서 대리만족과 보상을 하는 척이라도 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내게도 환생의 기회 한번쯤 던져 준다면 더없이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