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없는 시대는 가능할까?

[계절의 오행](2023)_23NOV22

by 정연진

영상이나 이미지가 없는 시대로 우리는 돌아갈 수 있을까? 70대가 넘으신 어르신들도 카카오톡과 유튜브 영상을 이용할 줄 아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과연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오늘 수업을 하다가 학생들의 집중도에 대해 문득 느낀 바가 있었으니... 이것은 21세기의 학교 수업이라는 것이 더 이상은 전처럼 강의가 주를 이루는 방식으로만 이뤄질 수 없겠다는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학교에 다닌 기간을 포함해(!) 꽤 오래 학교에 적을 두어 본 나의 경험으로는 교수자들의 성향에 따라 수업의 방식은 아주 다르다. 저 일제강점기 시대나 그리스 스파르타 시대의 방식에서부터 한국사람들이 꽤 좋아하는, 빨리 성과를 얻는 집중식, 자기 주도식 등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


중고등학교 수업이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70년대의 방식에서 최신식까지, 일제식에서 미국식까지… 이런 저런 형태들이 여전히 공존할 것이다. 한자리에서 수십 년을 근무하는 직장으로서의 한국식 시스템에서 모든 교수자들의 수업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대학의 경우는 전공에 따라 여러 방식들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꼭 인문계나 이공계로 나누어 볼 수는 없는 것이, 인문계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경영이나 경제 같은 분야와 문학 같은 분야들이 뭉뚱그려져 있어서 사실 경계를 짓기는 어렵다.


이번 학기에 경영학 수업을 하시는 연구실의 옆자리 선생님은 매시간 진도를 빼는 일이 힘들다고는 하시지만 수업자료 만들기는 아주 수월하다고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한 경영서적이나 전공교재들은 출판사에서 수업자료로 쓸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들을 함께 제공해 준다. 이것은 이공계열 전공교재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교수자들은 이론 부분을 정리하여 따로 영상이나 화면 자료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대부분 활용해 왔다. 물론, 교재의 내용을 전달하면서도 설명은 필요하고 그 부분은 추가적인 자료나 설명으로 이뤄지겠지만 수업자료 자체를 제작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사실 여타의 전공이나 교과목에 비해 덜하다는 것이다.


적절한 교재나 자료가 있거나 이론서를 확보한 일부 인문계열 교과목이라면 경영이나 공학계열 교재가 아니더라도 또 좀 수월하다. 수업 진도에 맞게 주차별 주제와 제목 정도는 매주 선정하지 않아도 되고 학생들이 미리 읽어올 수 있도록 수업자료를 제공하거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수업은 대부분 2시간 이상이거나 75분 모듈이거나 또는 주별 3~4시간을 두 번 정도에 나눠서 진행한다. 특수대학원이나 특강 형식이 아닌 이상 3학점 수업은 기본으로 주 2회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수십 년의 경력자는 아니지만 최근의 분위기를 기준으로 과거로 조금씩 돌아가 보면, 영상이나 화면 자료로 수업을 진행하는 비율이나 빈도는 분명 이전보다 훨씬 많아진 것이 분명하다.


이번 학기 내 수업에서는 몇몇 학생들이 몇 가지 주제로 짧은 발표들을 준비해야 했는데 발표할 내용이야 미리 원고를 작성하든 아니든 크게 문제가 아니지만, 정해진 형식과 내용을 던져주지 않으면 대부분 인터넷 자료와 영상자료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직접 자료를 찾고 수집하고 영상을 만들고 화면 자료를 만들고 하는 과정들이 간소화될 필요도 있겠지만, 준비과정이 공부 그 자체라는 고리타분한 교육 목적을 주입시키려는 내가 오히려 잘못된 것인 양, 대부분은 동영상 사이트에서 골라 온 영상 몇 개로 발표를 때우고 만다.


이런 현상이 유독 이번 학기에 심하게 느껴진 것인데, 누구 하나가 최선을 다해 발표를 준비해 왔다면 뒷 순서 발표로 갈수록 몇 명쯤은 자신의 발표문을 앞사람보다 더 성의 있게 준비해오고 하는 모습도 보여야 하는 법이건만... 이건 뭐, 짜깁기 정보를 몇 분 안에 요약하는 능력 정도만 보여주고 쓱- 지나가 버리니, 공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대신, 발표 자체에 대해 긴장하고 떨고 '내가 할 수 있을까?' 자신 없어하던, 발표에 대한 거부감들은 이전보다 훨씬 줄었음을 확연히 느낄 수는 있었다. 부담이 없다는 것이겠지.


물론 화면 편집 기술과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들이 나보다 월등하니, 보기에도 듣기에도 좋은 자료들은 단연 많았지만, '공부에는 지름길이 없다'라고 여전히 믿는 사람으로서, 과연 정통 인문학 수업들은 이제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닌 시대이지만, 좋은 자료를 볼 수 있고 선별해 낼 수 있는 눈은 진짜 공부법으로 독학을 해야만 얻어질 수 있는 귀한 대가인 것을. 좋은 자료를 찾는 눈도 좋은 책을 볼 수 있는 눈도, 그리고 좋은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나 자신이 좋은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가능한 것 아니냐는 말이다. 명강의로 알려진 수업들은 여전히, 해외든 국내든, 대부분이 토론식 강의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방식’이 나름 신뢰할 만한 이유가 있어서라고 믿었는데, 다 나의 불찰인가.


교재가 없어 직접 수업 자료를 모두 만들어야 하는 이번 학기 수업에서 학생들이 아주아주 쉬운 주제들로 5분짜리 발표 준비를 해 온 것을 보면서, 모든 학업, 학습의 방식이 너무 쉽게 쉽게 이뤄지고 흘러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열아홉 살의 성숙도야 개인차가 있을 것임을 인정하더라도-열아홉은 엄연히 성인이고 다들 충분히 성숙해 있다.-“케이팝의 흐름”, “아이돌”, “한국 음악”과 아주 쉬운 주제들이 몇 분짜리 입말 자랑과 동영상 틀어주기로 끝나는 모습들이 아쉽다. 학생들의 이야기 중에는 음악, 책, 미술, 영화, 언어, 역사, 전통, 문화 같은 최신식의 키워드들이 등장할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발표자의 자료에서도 '책'에 나온 자료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 인터넷 검색 자료이다. 어떤 선생님이 수업 전 한두 시간 전에 검색자료를 붙여 넣어 수업 발표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하신 말이 생각났다.


수업을 위해서 교재에 등장하는 원문과 원저자의 책들과 원자료들을 다른 도서관의 보존 서가를 뒤져서라도 직접 보여주고, 그것도 안 되면 사진이라도 찾아서 제공하려는 나의 노력들은, 결국 헛되고 헛된 시간들이 되어 쓰이지 못한 에너지로 사라지고 말 것인가. 적당한 시점에 학생들이 좋아하는 이벤트와 휴강과 눈요깃거리들이 필요한 것을 알지만, 그래도 한 한기, 단 한 컷이라도 기억할 만한 노력의 결과와 오래 남길 지식 거리 하나쯤은 남겨주고 싶었던 나의 야심 찬 시도는 이번 학기도 실패로 끝나려나 보다.


열정이 없는 학생들을 보고 있는 것이 가장 고역이기는 하지만, 활자보다 영상에 훨씬 더 자극받고 집중하는 학생들에게서, '지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영상이 없는 시대로 우리는 돌아갈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하고 딴생각에 잠기듯, 나도 먼 산을 잠시 바라보았다. 나라도 19세기로 가서 살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 뻔한데 누구를 탓하리. 오히려 지금 내가 더 구식일 수도 있지.


내일은 영상 자료 하나 던져줘야겠다, 나도 쉽게 쉽게 살자... 되지도 않을 마음을 먹어보며 이제야 퇴근 준비를 하려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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