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두 줄

[계절의 오행](2023)_16NOV22

by 정연진


예전에 김밥집이 한집 건너 한집 수준으로 아주 많았을 때나 분식집 찾기가 지금보다 쉬웠을 때 '김밥 1인분'을 시키면 기본으로 두 줄을 나란히 받았던 것 같다. 얼마 전 김밥집을 찾아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짜버린 탓에 월요일과 수요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이 없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아예 이른 아침부터 집에서 나서야 한다. 일을 쉴 틈이 없다는 것이, 나는 놀고 기계는 잘 돌아가는 그런 효율적인 시스템이어야 일하는 것보다 돈을 더 버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데, 나는 몸이 고생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오전/오후/밤 나누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직접 오가야 한다.


아침에는 강남, 낮에는 강북, 저녁에는 경기도에 집이 있는 것이라고 이상하게 한번 표현해 보자. 지방에서 느끼는 동네와 동네 사이의 거리감이라는 것은 서울에서의 강남, 강북, 경기권의 느낌과 맞먹으니까 말이다. 나는 하루에 3개의 소도시를 오간다. 지난 3개월간은 중간에 쉬거나 먹지 않고 바로바로 이동해 야식 수준으로 밥 한 끼를 먹은 것 같다. 물론 잠도 늦게 들고 속도 쓰린 탓에 고생을 하게 되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화요일, 목요일을 앞두고는 가능하면 저녁 한 끼는 아예 안 먹고 건너뛰어 버린다.


전에는 김밥집이 아주 많았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몇 집 안 남았는지 있었던 자리에 더듬어 가니 가게가 바뀌어 있다. 밖에서 밥을 사 먹은 지 한참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새로운 형태의 프랜차이즈들이 나름 유명했던 김밥 체인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두 곳 생각나서 직행해 본 곳에서 김밥을 주문하면서 나는 1인분을 먹는다는 계산을 하고 '두 줄'을 샀다.


너무 허기졌고, 오랜만에 김밥을 먹는 것이어서 순식간에 두 줄을 먹어치웠다. 역시, 김밥이 최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의 애정 음식이기도 한 김밥은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한국음식 중 상위에 오르는 메뉴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들이야 어려서부터 김밥을 접하면서 살았으니 보통 사람도 웬만하면 다 김밥 전문가쯤은 될 텐데, 외국인들은 가끔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의 다양함에 놀라기도 하는 것 같다.


김밥 두 줄을 순식간에, 그것도 손으로 막 주워 먹고 조금 있으니... 배가 너무 부르다. 속이 쓰릴 정도로. 생각해보니 내가 먹은 김밥 한 줄이 꽤 크고 두꺼웠다. 김밥 한 조각이 입을 크게 벌려야 겨우 들어갈 정도였고, 어떤 조각은 입 하나를 다 잡아먹고도 삐져나올 정도였으니 한 줄이 밥 한 공기 정도의 기준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밥 두 공기를 해치운 셈. 소화가 안 되어 저녁 내내 고생했다.


정신을 차리고 계산해 보니, 김밥 한 줄은 더 이상 <천 원짜리>가 아니었다. 김밥 한 줄의 가격은 무려 삼천 원이거나 삼천오백 원이었던 것이다. 카드결제가 너무도 자연스러워진 한국에서 살다 보면, 현금의 가치에 대해 무감각해질 것도 같다고 느끼는데 김밥 한 줄이 어느새 밥 한 공기만큼의 무게를 달고 뭉툭해졌고 가격은 세배쯤 뛰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어디 김밥뿐이랴, 그렇지 않아도 음식 메뉴는 물론 기본적인 서비스 비용이 상당히 올라 있다고 최근에 느낀 참이다. 생활 물가가 올랐다는 것이야 알고는 있었지만 김밥이 어느새 “1인분=한 줄” 기준이 되고(또는 인분 자체를 계산하기보다 '줄'이 하나의 단위로 기능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격은 올랐으며 그 가격에 걸맞게 크기도 조금 크게 말아주는 서비스 정신이 생겼다는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먹은 김밥은 정말 맛있었고 그래서 충분히 김밥 두 줄은 7천 원의 가치를 가질만했지만, 김밥집의 불친절함은 뒷맛이 좀 남긴 했다. 김밥 주문도 많고 인기가 많은지 손놀림은 아주 바쁘셨지만 우리의 영원한 '김밥 이모'는 그날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다. 먹고 나서야 김밥이 너무 차가웠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 김밥은 찬밥으로 말지는 않으니까... 전과는 달리 김밥집에서 모든 김밥 재료를 손질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으니, 결국 재료는 배달로 받고 김밥만 말아주면 되는 과정에서 그 김밥 집은 가격에 매겨져 있을 서비스 정신도 없었던 셈이다. 다음에는 다른 김밥집을 미리 알아두고 천천히 들러 천천히 메뉴도 보고 골라보아야겠다. 아, 그보다 먼저 이 살인적인 월요일, 수요일의 스케줄부터 어서 잘 버텨내고.


김밥 두 줄이 나란히 들어가던 어릴 때의 도시락이 갑자기 생각난다. 거의 하루 두 끼 이상을 김밥으로 살았던 수험생 시절, 학부를 졸업하던 2008년 무렵이 생각난다. 그때 신림동 주변의 김밥집들...


2022년 가을 어느 날 비싼 "김밥 두 줄"로 힘을 얻은 그대여, 자, 내일도 힘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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