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먹는 일, 너무 어려운 일

[계절의 오행](2023)_10NOV22

by 정연진

마음을 먹는 일은 항상 어렵다, 우리의 생활에는 생각과 생각의 연결고리 저 끝에 언제나 '결정'이라는 무겁고 어려운 단어가 쇠구슬처럼 매달려 있는 것 같다. '마음을 먹는 일'이 정해진 방향과 각도를 가지고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움직이는 진자의 추와 같은 것이라면 차라리, 진자의 구슬이 내 쪽으로 올 때만 결정의 짐을 지고 있다가 저리로 다시 가 버리면,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남의 일마냥 결정을 유보할 수 있는데.


진자의 구슬은 그래서, 내 쪽으로 다가올 때는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조금만 버티면 결정을 하지 않고도 슬그머니 남의 탓, 다른 것의 탓으로 결정하지 않는 이유를 넘겨버릴 수 있는 편리함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진자의 구슬 그 자체의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으므로 언제나 마음의 짐으로 왔다리 갔다리... 움직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그 진자의 구슬과 같은 삶을 매초, 매분, 매시간, 매일, 그리고 매해 반복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다행히도 시간이라는 녀석은 쇠구슬을 달고 있지는 않아서 굳이 결정이나 행동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그저 내 시간만 잡아먹는 것이니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 참 좋다. 시간이라는 것은 사실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나의 무형 자산이면서 또 가장 비싸고도 귀한 것일텐데, 너무 귀하고 또 너무 풍성하게 주어지다보니 그 소중함을 매순간 깨치며 지내지는 않게 된다. 그 가벼운 시간의 무게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마음을 먹는 일, 그 자체를 매우 어려운 일로 인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먹는 일, 그것은 사실 소로(Thoreau)가 말했듯이, 단 한 순간, 1초면 충분하다.


3년째 미완으로 남아 있는 일이 있다. 2019년에 시작했고 그 때만 해도 이 일은 6개월이면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계획서를 써 내는 과정 자체가 이미 그 일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어서 자료를 찾고 준비하는 과정 자체로 이미 반은 다 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전세계적인 전염병의 유행을 핑계대지 않더라도 나는 그때부터 너무 게을러 있었나 보다. 중간에 보고서를 한 번 썼어야 했는데 그 일도 거의 마감을 앞두고 급하게 제출하고 말았다. 몇달 전에는 드디어 마무리를 하겠다고 마음 먹고 보고서의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었는데...


결국 이번달 마감을 앞두고도 아직 결과 보고서의 초안을 완결하지 못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우선 어떻게든 시작하고 조금씩 조금씩 진도를 나아가야 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손은, 마음은 왜 그리 이 일을 해 나가기를 거부하는지...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다가 어느 새 몇달이 또 지났다. 이제는 평생 처음으로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오고야 말았다. 물리적으로 아무리 계산을 해 보아도 이 일은 이제 하루이틀 사이 밤을 새어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내 몸의 시계추하나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어른인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염치없지만, 개인적인 사정들을 고려하여 보고서 제출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해 보고 싶었지만,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내가 겪었던 내 인생의 큰 일들 - 정말 일에 집중하지 못할 만큼 중요하고도 힘들었던 사건들-은 연장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가령, 내가 이 기간에 출산을 했거나 코로나에 걸려 심하게 아픈 상태라면 마감 기한이 연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산이나 육아, 그리고 질병에 걸리지 않으면 다른 개인적인 어떤 일도 변명이나 해명거리는 될 수 없는 증거주의.


나는 그냥 힘을 빼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일을 다 잘 해 냈으면 참 좋았겠지만 가끔은 힘을 툭 - 빼고, 그저 애쓰던 일에서 잠시 손을 놓고, 조금 돌아간다고 느끼고 조금 실패했다고 느끼고, 평가나 재평가의 잣대 위에서 조금은 '잘 못 해낸 인간'으로 기록되더라도, 그냥 마음을 놓자. 지난 2년은 너무 힘들었지만 그것은 누구에게 증명해 낼 수 있는 일들은 아니었으니까.


일을 추진하기로 마음 먹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인데, 포기하기로 하는 일은 또 왜 이리 쉬운가. 마음을 먹는 일...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자존심만 버리면 되었다.


시간아, 낙오자가 되려는 나를 조금만 위로해 주렴...한국과 같은 성과중심 사회에서 낙오자란 참 힘든 자리이고 경험인데...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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