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격리시절 8
10년을 지도해 주신 선생님께서 퇴직을 하셨다. 2020년 8월 31일자였다. 정년 퇴직이니 선생님은 만 65세 전후라는 계산이 나온다. '선생님'은 사실 내게는 스승이다. 요즘 세상에는 '스승'이라는 말 자체가 웬지 옛날 꽃날에나 의미있던 말 같아서 '스승의 날'이라는 말에도 아주 팔다리가 간지러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마치 동료를 떠나 보낸 것처럼 그냥 '선생님'이라고 쓰고, 마음으로는 '스승'이라 읽는다.
방학까지 끼어 있어서 6월 중순이후부터 연구실 정리를 하셨다고 한다. 내가 그 학교에 근무했다면 오가며 짐이라도 좀 들어 드렸을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핑계야 여럿 댈 수 있는 시절이니 이런 저런 핑계로 8월 말이 되도록 선생님의 퇴직 준비에 어떤 도움도 드리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9월 첫 주를 어수선하게 보내고 어느 순간 생각해 보니, 아차, 선생님께서 퇴직하셨다.
태풍이 오고 사회적 거리두기의 행정 명령이 상향되고 하는 상황이라 퇴임식도 취소되었다고 한다. 내가 알던 선생님이 퇴직하시는 것은 사실 처음이라, 보통 대학 교수가 퇴직하면 제자들이 할만 한 선물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학교나 학과마다 전통이나 분위기의 차이가 있다고 하고, 졸업 후에도 생신 등을 명절처럼 알고 무조건 모이는 제자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건너 듣기는 했다.
내가 선생님의 수업을 듣던 때에 있었던 여차저차한 이야기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선생님이 정년 퇴직을 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왜 그런지 모르게 나도 이제 그 학교와 인연이 다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야무진 학생들은 지도교수가 퇴임하기 전에 다른 교수들과 미리 친분을 쌓는다고 했던가. 어쩌면 세속적이고, 어쩌면 아주 똑똑한 것들 같으니.
선생님께서 내가 있는 동네에 들르셨다. 제자들이 선생님 계신 곳으로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고 해야 옳은데, 지나가는 길에 잠깐 만나자는 문자를 먼저 주셨으니... 아주 시골에 사시는데 종종 생필품을 사러 나오시는 경우가 있다.
지난 몇 달간의 이야기를 짧게 해 주셨는데, 며칠 전에 학교 근처에 가셨다가 마음이 착잡해 지셨단다. 연구실이 있는 건물을 보고 있노라니 '이제 저 곳은 내 자리가 아니구나', '학교에 가도 갈 곳이 없구나' 하고 생각하니 웬지 이상하셨다는 것. 그 말씀을 듣고 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게 아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화려하게 마무리를 해 드리지도 못하고 변변한 기념품 하나 챙겨드리지 못했다. 물론 학교에서 충분히 행사(!)를 치르고 왔다고는 하셨지만.
너무 죄송한 마음에 아직 댁에 잘 도착하셨는지 인사도 못 드렸다. 알고보니 선생님은 내게 연구보조비를 전달하기 위해 오신 모양이었다. 받지 않을 것을 아시고 직접 주시려고 하셨나 보다. 대학원 시절을 거의 선생님의 연구조교로 보낸 것도 같지만, 나 말고도 매학기 대학원생들이 여럿 돌아가며 연구보조나 조교가 되었으니 유독 내가 많은 도움을 드린 것은 아니다. 선생님의 작업을 도우며 공부법을 배우고, 책읽는 법을 알았으며, 정신적으로도 성장했다. 그러니 내가 선생님께 받은 것이 많은데, 아마 얼마 전에 출간된 선생님 책의 마지막 작업을 내가 조금 도와드린 것에 대한 성의를 보여주신 것 같다.
운전에 재미가 없으셔서 고속도로에서도 거북이 운전자이시다. 오래된 경차를 느리게 느리게 움직이시는 선생님. 가시는 뒷모습을 보다가 천천히 돌아왔다.
사실 선생님은 내 지도교수도 아니며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연락을 자주 하는 사이도 아니다. 1년에 한 두번 점심식사 겸 뵙기는 한다. 선생님은 학부 때에 내가 수강했던 교과목의 담당교수였는데, 나는 10여년 넘게 선생님의 수업을 계속 듣게 되었다. 선생님과 공부하기 위해 또는 선생님의 권유로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학생들을 위해 조용히, 물심양면으로 애써 주신 분이라는 이야기는 전해 내려온다.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이야기들은 없지만, 착하게 사는 삶의 방식을 늘 고민하게 만드시는 선생님은 몇몇 학생들에게는 그래서 '스승'이다.
선생님, 퇴직을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다음 막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퇴직이라고 생각하니 이상하더라”는 말씀이 기억나 한동안 먹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