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격리시절 9
몸이 따끔거리는 것 같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있었다. 태풍이 지나가서 지난 며칠이 약간 선선했던 것이었는지 오후 한낮, 문닫힌 집 안에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에어컨을 트는 대신 복도식 아파트의 현관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 보았다. 바람이 통한다는 티를 내듯 현관문 앞 싸구려 커튼이 잠깐 팔랑거린다. 그러다 이내 일자로 쭉 뻗어 움직이지 않는다. 바람 한 점 없는 오후.
플라타너스 즐비한 커다란 그늘에서 매미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학교 운동장에서 어린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 것도 오랫만이다. 오후 내내 근처 공사장에서 들리는 소음으로 귀가 멍하다. 아침부터 공사차량 진입하는 소리에 깼는데 오늘은 종일 굉음이 규칙적으로, 쉬지 않고 들린다. 매미가 울어대고, 아이들이 재잘거리고, 공사장 기계음이 한번에 들려오니 웬지 나른해진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더욱 그렇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소통할 곳이 없을 때 어디든 무엇이든 마음 둘 곳이 있어야 한다.
두리번 거리다가 한껏 짜내어 버린 커피 캡슐을 괜히 한 번 더 눌러보았다. 바닥에 널부러진 것들을 주워 올리고는 설거지할 것은 없나 둘러보았다. 바깥도 한 번 내다보았다가 이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미루고 있던 서류를 인터넷으로 발급해 파일을 저장한다. 프린터가 없으니 내일 인쇄하러 갈 계획을 세운다. 1분이면 처리할 일을 덥다고, 나른하다고, 따분하다고,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미루고 있었다.
바람이 없는 오후, 에어컨을 틀지 않고 실내에만 있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미처 몰랐다. 그래서 그렇게 몸이 더웠구나. 1~2주 전쯤인가 8월 더위가 한창일 때, 문 밖은 내다보지도 않고 죽은 듯 2주쯤을 보냈을 때, 나는 내 몸에 이상이 생긴 줄 알았었다. 목에서는 이물감이 느껴지고 얼굴은 따끔거리고 식은 땀이 나고 잠도 뒤척였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최근 겪은 몇 가지 일들과 스트레스 때문에 몸에 무리가 간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어느 순간 현관문을 활짝 열어 바람이 통하게 했더니 금새 몸이 시원해졌다. 격리생활을 너무 잘 지킨 탓에 오히려 몸에 무리가 갈 뻔 했던 것이다.
그랬다. 지난 몇 주간, 그냥 내가 있는 환경이 더웠던 것 같다. 에어콘 온도를 좀 더 낮춰도 되었을 법한데 그렇지 않아서 더웠던 것이고, 몸이 붓는다고 느낀 것은 에너지는 쓰지 않고 먹기만 해서 실제로 몸에 살이 붙은 것이었을 뿐이다. 턱에 살이 붙어서 딱딱해진 근육과 함께 목과 턱이 좀 더 뻣뻣해진 것이었고... 단순하다. 열심히 살지 않아서 답답하고 힘들었던 것.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답답할 때, 그저 바람이 통하도록 해 주면 될 일이다. 바람이 불 때처럼 하던 일을 해 주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답답한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니.
잠시 도로쪽을 내다보니, 길가에 노점상이 펼쳐져 있고, 병원과 서점이 문을 열었으며, 분식집에서 손님이 문을 열고 나온다.
나 말고 모든 사람들은 제 할일을 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불지 않아도, 그저 제 할일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