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비밀의 숲”에서

[계절의 오행](2023)_우리들의 격리시절 17

by 정연진

한동안 일명 '비숲러'였다. <비밀의 숲>은 전에 흥미롭게 보았던 기억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시청한 몇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다. 초반에 약간의 혹평이 있기는 했다. (어떤 기자들은 최소한의 데이타도 없이 한 장면 또는 한 편, 또는 어느 때는 드라마 한 회 속에 나오는 대사 한줄 만을 가지고도 앞으로 몇 년을 왈가왈부 해댈 기세로 초반에 혹평을 하기도 했다.)


드라마가 잘 만들어졌느냐 아니냐를 매회, 시시때때로 기사화하는 풍을 보면 작품성보다는 가십에 초점을 두려는 의도도 보인다. 아니면 네거티브 마케팅과 같은 전략이었거나. 어쨌든 최소한 '그들만이 리그'가 되고 마는 어떤 집단들에 대한 이야기-가령 <비밀의 숲>과 같은 검찰과 경찰 내부의 이야기들-는 그것이 과연 몇 퍼센트만큼 사실이고 또 허구인가를 떠나, 뒷이야기에 대한 이런 솔직한 프레임이 어느 정도 공개될 필요가 있기도 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는 있을 것이다.


사실 오랫만에 길었던 연휴를 대체알바 등으로 메꾸게 된 나는, 일요일 저녁 이 드라마 시간만큼은 사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9시를 전후하여 집에 도착했다. 연휴 마지막 날, 늦은 저녁을 먹고 차 한잔까지 마치고 나서 일행에게 드라마를 보아야해서 집으로 가야한다고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회까지 아주 흥미롭게 보았다. 오히려, 마지막이 되니 앞부분의 흐름과 대화, 그리고 복선들이 그제서야 이해가 되더라.


주연배우들보다 강조되어 보이는 조연들이 있는 점이 의도된 설정인지는 모르겠다.

초반에 황시목과 한여진의 존재 속에 다소 대사가 많은 조연들의 활동이 눈에 띄는 것이 나는 아주 좋지만은 않았다. 이유는 아주 개인적이고 편파적인데 내가 조승우와 배두나의 연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황 검사나 한 경감이 아니라, 그들의 적대적인 혹은 우호적인 동료들과의 협업인 경우가 그랬다. 주연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조연들이 내해는 역할도 상당히 중요해 보이는 구조. 드라마에 감정적으로 빠질 수 있는 로맨스, 불륜과 같은 이야기선을 절대로 넘지 않는 내용이 다소 지리해 보이기도 했었다. 전형적인 주인공 중심의 드라마나 주연만을 강조해서 보게 되는 미국식 영웅 만들기의 구조에 나도 어느샌가 익숙해져 있었나 보다.


잘 살펴보니, <응답하라> 시리즈의 모든 인물들이나 일명 <김은숙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들의 조합처럼, <비밀의 숲>에도 멋진 조연들이 정말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인물, 한 인물들은 이미 그 전에 좋은 작품들에 얼굴을 많이 비췄던 이력이 있었다. 단순히 조연이라기 보다 아주 연기를 잘하는 베테랑이 오히려 주연들의 연기를 더 돋보이게 하고, 작품의 성공을 이끈다. 개인적으로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그런 드라마였지만 방영 당시 주변에서는 '슬빵'을 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텔레비전 채널을 사수하기 위해 가족을 끌어들여 방송을 봤던 기억이 있다.



<비밀의 숲>이 종영되고 그 다음 날 밤, 첫 회를 다시 방영하길래 또 보았다. 대사가 탄탄하고 잘 된 작품- 그것이 혹은 영화나 소설이어도 그렇다.- 은 앞으로 보아도, 뒤에서 보아도, 또 여러번 보아도 이야기의 흐름이 연결되고 이해가 간다.


만화영화 <쿵푸 팬더>를 수십번을 보면서 느꼈던 점은 볼 때마다 새로운 주제, 새로운 대화, 그리고 새로운 감동이 있더라는 것인데, 주변에 아무리 내 의견을 설파해도 내 주변의 성인들에게는 아이들과 함께 봐 주어야 할 만화 이상은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대학생들의 교양 수업에 <쿵푸 팬더>를 주제로 활용했는데, 어른의 눈으로 다시 보는 만화영화들은 정말 대단한 구성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 바다.


아이들에게는 웃음보가 터질 만큼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에피소드의 연속인 장면들이 청소년이나 어른들에게는 자아정체감, 자신감, 혹은 자존감을 찾는 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것, 그리고 자신만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 나아갈 수 있다는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내용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번 돌려보게 된 나에게도, 매번 다른 시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인 것은 이십대의 성년들에게 어느 정도는 익숙한 것을 '다시 보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는 점인데, 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심리학적으로, 어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원어를 활용한 듣기, 말하기, 번역하기, 그리고 어휘 학습용으로도 좋은 콘텐츠였다. 영화 한 편이 어느 날은 앞부분이 공대생들의 수업 내용이 되었고, 어느 날은 중간부분의 한 장면이 교육학과 학생들의 토론의 주제가 되었으며, 또 <문화의 이해> 수강생들에게는 영화의 주제 찾기가 미션이 되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비밀의 숲> 앞부분을 다시 보는데, 그제서야 그들의 대화가 거의 이해되었다. 초반의 지루함과 느린 전개와, 이해할 수 없는 대화들, 전혀 연관없을 것 같은 사건과 인물들이 모두 찰지게 이어져 있었다. 감히 혼자서 결론을 내리건데, 이 드라마는 드라마가 끝난 후 다시 처음부터 돌려보면 더 한 재미가 있다.


오늘 밤에는 중간부분을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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