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오행]에 실린 글입니다._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연주해 보고 싶은 음악을 고르기로 했다. 피아노로 쳐 보고 싶었던 곡들 서너 개를 문자로 보냈더니 선생님이 모르는 곡도 있었고 내 수준에 맞는 적당한 버전의 악보가 없는 것도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나의 버킷 리스트에는 애드 시런(Ed Sheeran)의 [퍼펙트(Perfect)]- 이 음악은 정말 쉬울 텐데... 여차 저차 한 이유로 아마 나중에 내가 알아서 연습하게 될 것 같다.-와 비틀스의 [인 마이 라이프(In My Life)]에서의 중간 간주 부분의 피아노 솔로, 김광민의 [학교 가는 길] 등이 있었다. 캐논 역시, 당연히 조지 윈스턴의 편곡 악보로 해 보고는 싶지만, 언제 피아노 배우기를 포기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므로, 먼 미래의 이야기이다. 캐논은 어쩌면 조지 윈스턴의 영역으로 영원히 남겨둘지도 모른다.
뉴에이지 곡 악보 책에서 우선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번쯤 들었던 멜로디나 제목들, 이루마와 같은 연주자들의 곡들 중에서 배워보고 싶은 곡들을 봐 두었다. 악보에 음표가 적으면 왠지 쉬워 보이고 반음 표시(샵, 플랫 등이 많은 악보)가 많으면 어렵고 복잡해 보여서 나는 짧은 악보를 몇 개 포함시켰다(!)
그중 하나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삽입곡이었는데, 악보가 단순해 보였다. 그런데 내가 골라 간 악보를 본 선생님은 “나중에 같이 해 보자.”라고 하더니 다른 곡들을 넘겨보셨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라고는 차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책은 앞쪽에 쉬운 단계의 악보들이, 뒤로 갈수록 점점 어려운 난이도의 곡들이 실려있단다. 내가 골라간 곡들 대부분은 뒷부분이었다. 단순하고 무식한 이 초보 연주자는 제목과 샵의 개수, 음표의 개수로 복잡한 정도를 판단하고는 그야말로 “지 맘대로” 골라간 셈이다.
그나마 그중, 성악곡으로도 잘 알려진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바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적당히 발라드풍이 좋은 나는 멜로디만이라도 연주해 보고 싶었다.
성인이다 보니, 학원을 매일 가지는 않고 연습은 알아서 해야 하는 자기 주도식인데 사실 연습은 거의 못하고 있다. 한 곡당 한 번의 레슨으로 배우고 나머지는 알아서 익혀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 비해 진도는 빨라 보이지만 암기해서 연주하지는 못하고 있다.
성인들은 대부분 손가락 연습용 책은 잘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 연주하고 싶은 곡들 위주로 집중해서 하는 편이라고. 특정 곡들에 대한 레슨만 받는 셈. 초등학생들은 그때그때 한 시간 이상 연습을 한다는데 학생들이 많은 오후 시간에는 연습실을 사용하기도 그렇고 해서 여차저차 실력이 탄탄하게 쌓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주 암기한 기본 코드를 기억하며 연습을 시작한다. 1-5-8 코드는 보기보다 간단해서 나도 외울 수 있었다. 코드가 반복된다는 것을 알고 그걸 기본으로 마디마다 달라지는 음에 주의해서 건반을 누른다.
“띵띵” 건반 누르는 소리는 나는데 이건 음악이 아니다. 처음 해 보는 것이기는 하지만 한 음 누르고 다시 악보를 보고 계산을 해서 다음 건반을 누를 수 있는 수준이니 “띵가띵가”는 아예 먼 이야기다.(나는 정말 바이엘 단계이다.) 한 음에서 다음 음까지 몇 초쯤 걸린다. 이건 뭐 소음 수준이다.
나는 음악 천재는 아니었구나. 내 손의 반응은 내 생각보다 언제나 느리다. 노화로 인해 뇌의 반응이 느린 건가, 내가 피아노에 소질이 없는 것인가, 머리가 안 좋은 건가... 직접 연주는 그만두고 하던 대로 음악으로 듣는 게 차라리 낫겠다.
구간을 나눠서 연습해 보자고 마음먹는다. 그나마 아는 멜로디라서 내가 맞게 하고 있는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이 연주는 언제쯤 음악처럼 들리려나. 10월쯤 되어야 가능하려나. 왼손 건반은 아직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원.
닥치고, 안 틀리게 한 번만 제대로 해 보자.
ㅡ
1-5-8, 1-5-8...
ㅡ
2021/ [캐논까지 느릿느릿] / [계절의 오행](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