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을 기록하려는 것

우리들의 격리시절 5

by 정연진

단지 일기를 쓰려는 것일 뿐인데, 내가 쓴 글모음을 잠깐 본 친구는 '자서전을 쓰는 것이냐'고 물었다. 요즘 자서전 쓰기나 글쓰기 특강들이 크고 작은 이벤트와 수업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늦게서야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의 시나 일기가 방송의 소재가 되거나 책으로 나오기도 한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에세이 쓰기' 특강들도 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는 친구의 프레임에서 저널을 쓰는 일은 정치적이라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주변의 인물들이 어느 시기가 되면 우후죽순 자서전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하는 일들을 가까이서 보기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인, 나의 이 이야기는 단순한 생활의 기록일 뿐이다. 근거와 기록이 자동으로 남는 활동들은 빅데이터가 되어 언제 어디서든 흔적을 남겨 주겠지. 하지만 그 때 그 순간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그런 객관적인 데이터와는 별개이다. 바로 이 순간이 지나면, 이 하루가 지나면, 이 시기가 지나면 잊혀져 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박완서 선생의 에세이는 유명한 문학 작품으로 읽히고 평가되는 걸작이 된다. 그리고 나의 글은 그저 이름없는 자의 생활의 기록일 뿐이다. 친구가 왜 내게, '우리가 벌써 자서전을 쓸 때는 아닌 것 같다.'고 일축했는지는 당연히 알고도 남는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십대에도, 또는 팔십대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물론 어떤 이의 기록은 그저 일기였다가 버려질 것이고 어떤 이의 기록은 명작이나 역사서가 되기도 할 것이다.


기록을 며칠 하다보면 느끼게 된다. 아, 내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는구나. 그 때는 생생했던 대화와 기억이 조금씩 생각이 나지 않게 되는구나, 몇 년전의 일도 기억이 가물하구나, 그 때 느꼈던 감정이 그 끝맛만 남아있고 과정은 다 잊혀져 버리는 것인가 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면서 쓰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벌써 5년쯤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지역 방송국의 한 작가는 매일 자기 전 한시간씩 무조건 글을 쓴다고 했다. 내게 직접 말한 것은 아니었고 한 다리 건너 그 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분이 있는데, 그렇게 창작에 뜻을 두고 몰두하려는 사람들은 으레 매일 훈련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 나야 소설가 같은 작가가 되려는 꿈은 꾼 적도 없고, 그 작가처럼 부지런하지도 못하다.



한달여를 출근도 하지 않고, 운동을 포함한 외출은 역시 전혀 하지 않고,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으며, 밥만 먹고, 티비만 보는 생활을 해 보니, 시골에서 새벽부터 텃밭을 가꾸고 몸을 계속 움직이시는 할머니들이 정말 현명하다는 것을 알겠다.


내가 좋아하는 92세의 동네 할머니는 5시면 일어나 콩을 심고 잡초를 뽑고 염소밥을 주고 옥수수를 다듬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이가 드니 잠이 없어지더라'는 할머니의 말씀은 거짓일 수도 있겠다. 그저 매일 몸을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손수 보여주신 것일 뿐. 존경스럽다.


꼭 해야하는 일이 아닌데도 게을러지지 않고 아주 생산적인 일에 몰두한다는 것, 그런 에너지만큼 신성하고 본받아야 할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의무가 아닌데도 '일'을 통해 몸을 훈련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일의 신성함과 일에 쏟는 인간의 에너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고 나는 손가락만 움직이고 있다. 비생산적인 날들을 보내면서, 지난 1년간 살이 찐 만큼 내가 지금 허세만 가득한 어른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에고, 또 사기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