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격리시절 6
삶의 경험치라는 것이 꼭 나이, 직급, 경력에 따라 차곡차곡 쌓이는 법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있다. 스무살이 넘으면 공식적으로는 모두 '성인'이라는 동급대우를 받고, 조직 내에서 하늘끝까지 치솟을 것 같은 직위나 직급은 '퇴직'하면 비주류이자 외부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어떤 분야에서는 5년 경력이든 20년 경력이든 급여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을때도 있다(호봉제라는 막강한 급여체계가 있는 조직은 물론 다르다).
'사기'를 당하는 것은 꼭 아직 세상을 덜 살아봐서도, 세상을 너무 몰라서도 아닌 것 같다. 매사에 꼼꼼하고 해결 잘하기로 소문한 분이 보이스피싱으로 300여만원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최근 들은 적이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도 하루에 최소 몇 개씩의 스팸 문자도 받고 있다. 동료 한 사람은 아들이라며 급하게 돈을 달라는 문자를 받았단다. 아들이 당시에 집안에 있었기에 명백한 사기라는 것을 알고 응대했다고 하는데, 이런 시국에 사기꾼들, 참 열심히도 산다.
에고, 나도 종종 사기를 당하곤 했다. 보이스피싱 같은 일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물건을 구매하거나 사람을 믿고 기다렸거나 했다가 손해를 보거나 허탕을 치는 일 등이다. 나이가 들면 세상 물정을 판단하는 힘에도 근육이 붙으려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야무지게 사는 일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착하고 순진하다는 말이 결코 좋은 뜻으로만 통하는 세상은 이미 아니다. 10대, 20대 학생들 사이에서 '착한'것은 오히려 의아스러운 행동을 했다는 뜻으로도 읽히더라. 굳이 양보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하는 경우에 '너 좀 착하다'라고 응수하는 경우를 보았다. 협조해야 하는 상황에서 양보하지 않는 아이가 이기적이라는 느낌보다 오히려 적당한 정도의 개인주의가 더 자연스러워진 시대인 것 같다.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으레 개인주의자나 적당한 정도의 이기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에세이나 심리서들이 종종 포함되지 않나. 이게 당연한 시대에도 나는 아직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너무 적극적으로 호구들을 이용하는 행위에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그 물건을 '나 몰라라'하고 팔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는 내가 바보인가.
급하게 구하게 된 중고차로 인해 속상했다. 중간에 그 차를 소개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 탓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매매상에 나와 있는 괜찮은 차가 있더라는 정보를 준 것이 무슨 책임이 있겠는가 말이다.(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호구가 될 가능성이 남아 있는 거겠지.)
동료가 자신이 구매하려고 고민 중인 차를 나에게 양보했고 시운전이며 성능도 다 확인된 '무사고' 차라고 해서 선뜻 구매했다. 오래되긴 했어도 주행거리가 적었다. 그동안 내가 운전해 본 소형승용에 비해서는 큰 편이라 묵직한 느낌이 있기도 했다. 처음 타는 중형 승용차의 첫 인상은 괜찮았는데 차가 크고 옵션 등의 기능이 많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연비는 낮게 느껴졌다.
첫 주에 주유를 해 두고 차는 거의 탈 일이 없었다. 부동산 중개인과 만날 일 때문에 몇 번 이동한 일과 서류를 보내는 일로 한두번 우체국 등에 오간 것이 7월 말부터 8월 첫 주 사이였다. 두 번쯤 더 주유를 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기름값이 많이 든다는 생각을 얼핏 했던 것 같다.
2주쯤 지났을 때 아는 사람이 타던 중고차가 생겼다. 차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매매상 딜러에게 물어보니, 중고상에서는 그런데 이미 내가 얼마전에 사 간 차량을 다시 돌려받는다고 해서 그 돈을 돌려주거나 하는 것이 아니란다. 한달 간의 보증기간이 있지만 그것은 차가 아예 달리지 못할 정도로 멈춘 것이 아닌 이상 거래를 무르지는 못한다고 했다. 딜러의 입장에서는 싸게 차를 사서 다시 다른 고객에게 팔게 되므로 다른 차가 생겨서 차를 팔아야 한다면, 오히려 경매나 직거래를 통하는 게 낫다고 안내해 주었다. 내게 손해가 덜 가는 방법이라고 안내해 준 것같아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그런데 차에 기름이 새고 있다는 것을 얼마 후 알게 되었다. 기름이 새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고 차 바닥으로 기름이 떨어지거나 흘러내렸다면 주차장에서든, 아니면 누구든 발견을 했을 텐데 그런 일도 없었다.
경매를 통해 그 차량을 꼭 타고 싶어하는 분이 있어 비싼값에 사겠다며 차량을 인수하러 온 분이 차를 확인하더니, 차는 무사고도 아니고 기름은 새고 있다고 했다. 알려준 곳을 확인해보니 기름통은 노란색 기름으로 반질반질하고 엔진 주변도 윤기가 흐르는 듯 보이긴 했다. 자신도 난감한 것이 기름이 새는 차는 사 갈수도 없고 수리를 하더라도 돈이 꽤 든다는 것이다.
자신이 중고차를 매매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차를 가져가서 수리를 하고 수수료까지 계산해서 팔기 위해서는 차 값을 더 싸게 주고 사 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의 상태나 내가 새로 해 둔 블랙박스 등등은 모두 만족해 했다. 결국, 경매에 올린 가격은 차량을 수리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의 가격이었다는 것이다.(협상을 위한 의도도 당연히 들어있었을 것이다.) 한달여 전에 산 차이고 기름이 새는 것을 몰랐으니 이 차를 팔았던 매매상에 이야기해서 차를 다시 반납하면 안 될까하고 물었다. 경매는 없던 일로 하고 차를 가지러 오간 비용정도는 내가 주려고 생각하고 한 말이었는데, 그건 힘들 것이라고 했다.
차를 다시 가져간다고 해도 매매상에서는 단순히 수리가 필요한지 확인해 주고 하는 정도까지는 서비스를 해 주겠지만, 비용이 드는 문제와 내가 차를 사기 전에 몰랐을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물건을 넘겼다는 이유로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즉, 수리를 해서 타거나 경매로 받은 사람에게 수리비 만큼을 깎아주고 차를 내어주는 것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책임을 회피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의 말투를 나는 아주 싫어한다. 얼마 전에 만났던 중개사도 자신이 집주인과 일명 '상황치다가(!) 잘못 된' 일의 책임을 나에게는 집주인의 잘못으로, 집주인에게는 나의 잘못으로 몰았었다. 신고하려고 했지만 일이 커지는 것이 귀찮고 아는 분이 연결돼 있어서 그냥 계약금을 포기했다. 그 중개사는 앞으로 나를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일처리를 한 것 같고, 집주인은 이 작은 중소도시에서 집이 거의 수십채에 달하는 거물급 고객인 것 같으니 아마 약자보다는 강자의 편에 선 것 같았다.
믿은 죄, 아주 꼼꼼하게 따져보지 못하고 알아보지 않고, 주변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그 일을 하는 전문가들을 신뢰한 죄 - 예를 들어 부동산 중개인이 책임 중개를 해 줄 거라는 믿음과, 자동차 매매상 딜러가 책임지고 '무사고 좋은 차'를 골라 주었을 것이라는 믿음 -로 정신적, 물질적 손해를 보고 말았다. 물론 물건을 산 후에 생긴 하자는 소비자의 책임일 수도 있겠지만, 알고도 말하지 않고 물건을 팔아해치우는 행태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짜인가. 믿을 수 있는 직업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누가 호구인지 모르겠다면 그건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이제 한가지는 확실해진다. 사기를 당하는 것, 농락당하는 것, 호구가 되는 것, 보이스 피싱의 피해자가 되는 것들은 나이도, 직위도, 경력도 그 무엇과도 인과나 상관관계가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스무살이라고 한번 경험하고 마흔이라고 세번을 경험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순차적인 일련의 경험들이 아니라, 살면서 당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뉜다.
앞으로 중고차를 살 때 나는 기름통을 확인하게 될 것이며, 집을 구할 때에는 어쩌면 수십채의 집을 가진 법인사업자와 거래하는 중개사를 덜 신뢰하게 될 것이다.
즐겁게 거래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따져대고 조심스럽고 덜 신뢰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 정상인가. 더 편리해진 세상 같은데 믿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500만원 넘게 주고 산 중고차를 한달만에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다시 처분하고 말았다. 마음이 급하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사람의 심리와 또 그 타이밍을 잘 이용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 누굴 탓하리.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지했던 탓이라는 것을 알겠다.
에고, 스트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