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격리시절 2
8월 중순이 지날 즈음, 상황은 다시 악화되었고 급기야 급하게 구해서 들어온 내 임시 숙소에서도 난리가 났다. 같은 층에 사는 사람이 확진을 받았는데 이 곳은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인데다가 한 층에 십 호 이상이 하나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있다.
이 작은 소도시에 서울인구로 따지면 천여명 이상이 확진된 것이나 다름없는 비율로, 거의 일주일 이내에 수십명이 줄줄이 확진자가 되었다. 그 중 아이들도 몇 포함되면서 유초등학생은 물론 고학년들이 다닐 만한 장소들은 모두 행정명령 2단계이상의 조치로 '잠정 휴원'에 들어갔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잠정 휴원 상태인 것.) 거기다가 나는 옆옆집 거주자가 확진된 상황이어서 독한 소독 냄새와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며칠을 보낸 듯 하다.
한달여의 우여곡절 끝에 나는 지금의 이 작은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작다는 것은 그냥 평균정도의 소형 아파트이고, 일반적으로 서민아파트로 알려진 임대아파트이다.
대충의 분위기가 연상될 것이다. 심증에 의하면, 위층에 사시는 분들은 70대 정도의 어르신들로 부부이시며, 손주들이 멀리 살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시는 시간이 아주 이르고, 아랫집이 세를 내는 집이라는 것을 아는지, 집 안에서 아주 자유롭게(!) 활동하시는 편이다.
새벽 5시에서 늦어도 6시경에는 활동을 하시는데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시간도 꽤나 빠르다. 발걸음이 경쾌하고(분명 남성의 발걸음), 전화통화하는 목소리는 우렁차다. 아래층에서 그 내용이 들릴 정도이니 말이다. 일반전화가 있는 집이며, 가끔 전화벨이 울리는데 외출 중이신지 안 받으실 때도 꽤 있다. 집에서 담배만 안 태우시면 참 좋겠는데... 이미 알려진 흡연자이신지, 이상하게도 윗집에서 담배냄새가 나면 곧바로 관리사무소에서 집 안에서 금연해 달라고 방송을 하곤 하더라.
최근 몇 년간 내가 살았던 곳들에서 일반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잠깐 생각했다. 2014년부터 살았던 임대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도 거의 없긴 했다. 아이가 큰 소리로 울거나 거실에서 뛰는 경우는 확연히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가끔씩 다다다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이유만으로 위층으로 올라가 싸울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 슬픈 것은 그 반대의 경우들을 당하면 참 난감했다. 사람이 없던 시간인데 소리가 났다며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을 때는 억울하기도 했다. 싸우기 싫어 그냥 좋게 끊지만, 이런 비슷한 일을 당했던 동생은 결국 아파트의 제일 위층으로 이사를 하기도 했으니 정말 작은 문제가 아닐때가 많은가 싶다.
내가 지금 이 일지를 쓰는 곳에서는 중학교 운동장이 내려다보인다. 식탁을 거실 앞쪽으로 조금 더 밀면 운동장이 바로 보이고 조금 뒤쪽 현관문쪽으로 두면 4층짜리 학교 건물의 교실 창문들이 보인다. 유례없이 긴 장마가 지나고 태풍 두어개가 연달아 지나가면서, 비가 내리는 날이 며칠 있었는데 학생들이 없는 빈 운동장에 비가 내리는 모습도 나름 운치가 있다.
물론 엄청난 경관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시가지가 으레 그렇듯 학교 뒤쪽으로 높이 솟은 새 아파트가 시야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이 아파트가 가진 장점은 바로 뒤편에는 다른 건물들이 없어서 덜 답답하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바깥 샤시가 오래된 것이라 단열도 잘 안될 것이 뻔하고 청소는 해도해도 티가 안 날 집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운동장이 보이는 이 곳은 단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 부동산 중개인이 아주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세입자를 얻은 셈이다. 내가 운동장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어 계약시에 추가될 사항들이 있을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하겠다'고 답해 버렸기 때문이다.
급하게 이사를 해야 했어서 대부분은 집주인이 원하는대로, 두고 가는 살림을 가능한 잘 지킬 것 등의 몇 가지 조건들을 받아들였다. 집주인의 살림과 함께 사는 조건, 조금 이상한 계약을 한 셈이긴 한데 그게 아니었다면 싼 가격에 집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곳에 있는 한달 동안, 장마 끝과 여름 끝이 함께 맞물려 반은 우중충한 날씨였고, 반 정도는 더워 죽을 뻔했으며,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격리시절을 이어가게 되었다.
태풍과 함께 어느 새 9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운동장이 텅 빈 채로 2주나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