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에 교통사고를 겪었다. 운전 중에 우회전을 하려다 보행자 신호가 바뀌어 곧장 멈추었는데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린 뒷 차가 내 차를 쾅하고 박은 것이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내 차의 뒤가 다 망가졌고 나는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 나는 얼마간 운전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운전대를 잡은 지 얼 마 안된 요즘 운전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어떤 용기로 차선을 바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선을 바꾸는 것엔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차선을 바꾸려면 내가 끼어드려는 차선으로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온다면 어떤 속도로 오는지 그래서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속도인지 아닌지 체크해야 한다.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있다 하여도 내가 직접 핸들을 돌려 그 차 선으로 뛰어들어야만이 차선을 바꾸는 것이 실현된다.
상황을 판단하고선 그 누구도 아닌 운전대를 잡은 내가 직접 행동해야 한다. 망설임과 두려움 끝에 판단하고 행동하기.
이따금 그런 주체적인 행동력을 발휘하기가 버겁게 느껴져 차선 따위 안 바꾸고 마냥 직진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어렵고 긴장되는 순간을 겪고 싶지 않아 내가 있던 길을 그대로 가는 것. 나의 목적지 따위는 포기해 버리고 그냥 아무 의지도 없이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고 그냥 가던 대로 가는 것. 알지도 못하는 곳에 알지도 못하는 때에 도착해 버릴 지라도 그렇게 하고 싶은 욕구에 휩싸인다. 목적지에 갈 수 없을지라도, 아니 목적지 따윈 잊은 채 그냥 지금 당장의 편안함과 안락함에 안주하여 이 길 대로 마냥 가버리면 어떨까. 용기는 애초부터 없었고 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이상 그것은 잠시 꾸어 본 꿈일 뿐이다. 나는 깜빡이를 켜고 사이드 미러로 차가 오는지 살 피고 기회를 포착하여 두렵지만 과감하게 액셀을 밟으며 핸들을 튼다. 그리곤 차선 바꾸기에 성공한다.
그리곤 생각해본다. 나는 나의 자동차뿐만 아니라 내 삶의 운전자이기도 하다는 걸.
올 한 해 열심히 사이드 미러를 보며 기회를 포착해 보려 했을 것이다. 어떤 것은 성공하기도 했고 어떤 것은 다음 기회로 넘기기도 하였을 것이다. 여전히 사이드 미러를 노려보며 끼어들 마음을 먹고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삶의 운전자라는 것을 잊을 뻔 한 시간들이다. 누군가가 나의 삶의 운전대를 잡아주기를, 저절로 알아서 적당한 타이밍에 핸들을 틀어주기를, 혹은 핸들을 틀지 못하고 그냥 지금껏 살아온 대로 살기를,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안일하고 무책임하게 바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운전을 하면서 안일하고 싶어 지는 유혹에 빠지듯 나의 인생 역시 안일하게 살고 싶어 질 때가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결국엔 차선을 바꾸는 용기를 낸 것처럼 나의 인생을 용기 내어 주체적으로 살기를 바라본다.
두 달 여 남은 올 한 해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내어 차선을 바꾸어 내가 가고자 하는 길로 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