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기획의 5단계
스타트업 전직 후 내가 가장 처음으로 맡은 업무는 콘텐츠 기획이었다. 3개월 간 약 36개의 콘텐츠를 기획해 회사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과 SNS 채널에 게재했다. 지금도 병아리 수준의 기획자지만, 나와 비슷한 초심자들을 위해 나의 경험담을 적어보고자 한다.
쉽게 하려면 한 없이 쉽게, 어렵게 하려면 한 없이 어렵게 할 수 있는 것이 콘텐츠 기획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들일수록 퀄리티는 올라가지만, 어디쯤에선가 멈추고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것이 콘텐츠이기도 하다. 회사와 나의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퀄리티를 마냥 올린다고 그만큼 효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콘텐츠 기획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내는 것'이다.
콘텐츠 기획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콘텐츠 기획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콘텐츠 기획의 로드맵은 다음의 5가지 단계다.
1. 목적과 목표 설정
2. 타깃 설정과 타깃 이해
3. 전략 수립
4. 개별 콘텐츠 기획
5. 평가 및 개선
아래에서는 각각의 단계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이야기해보겠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이지만, 기획에는 명확한 목적과 구체적인 목표가 필요하다. '목적'은 일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나침반과 같다. 목적이 뚜렷할수록 방향성을 잡는 데 수월할 것이고, 정말 이루고자 하는 결과에 가까워질 수 있다. '목표'는 그 목적 달성을 위해 가는 길목에 있는 한 지점과 같다.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되며, 이것이 추후 결과물에 대한 평가의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예를 들어, '백두산 정상에 오르자'가 목적이라면, '10일 안에 정상에 오르자'가 목표가 될 수 있다. '10일'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면, 백두산 정상에 오르는 일은 1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 100년 후가 될지 모를 일이다. 그만큼 구체적인 목표 설정은 일에 추진력을 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같은 회사/부서에서 콘텐츠를 만들더라도 목적과 목표가 다르면, 전혀 다른 결과물과 방법론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과 목표 설정이 모든 일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상사에게 기획 지시를 받았다면, 그 기획의 목적과 목표가 무엇인지 꼭 물어보자.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기획안을 써간 다음 모든 것을 뒤엎고 다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전략>
목적 A: 기존 유저 리텐션을 높이자. => 기존 유저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퀄리티를 높여서 만들자.
목적 B: 신규 유저 유입을 늘리자. => 타깃 하고자 하는 유저의 관심사/니즈를 파악하여 그것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자.
<목표에 따라 달라지는 방법론>
목표 A: 현재 DAU가 200명인데, 1달 안에 300명 달성 => 유저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퀄리티를 높여 제작하고 더 자주 업로드하자.
목표 B: 현재 DAU가 200명인데, 3달 안에 1만 명 달성 => 이슈성이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광고를 통해 노출을 극대화하자.
내가 실무에서 설정한 목적은 '유저들에게 유용한 콘텐츠를 제공하여 앱에 자주 들어오게 하는 것'이었다. 목표는 4달 안에 일 활성 사용자(Daily Active User: DAU)를 1만 명으로 높이는 것 (당시 DAU 300명 수준).
자, 이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타깃 소비자에 관한 것이다. 그들 없이 비즈니스는 존재할 수 없고, 그들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비즈니스는 성공할 수 없다.
콘텐츠 기획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콘텐츠가 타깃하고 있는 독자는 누구인가? 넓디넓은 독자군 중에서도 로열 독자로 만들고 싶은 무리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떤 이슈에 관심이 있고, 어떤 문제에 불편함이나 불만을 느끼는가? 그들은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에 화가 나며,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에 따라 콘텐츠의 주제와 톤 앤 매너, 전략이 결정될 것이다.
내 경우에는 위의 질문들에 아래와 같은 답을 하며 기획을 했다. 모든 대답들을 다 한 후에 기획을 했다기보다는, 기획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쌓이는 유저 데이터를 보면서, 경험치가 쌓이면서 대답들이 더 구체화되었다.
Q. 내 콘텐츠가 타깃하고 있는 독자는 누구인가?
A. 채식에 관심이 있거나, 채식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사람들
Q. 로열 독자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A. 본인의 삶에서 채식을 실천하고 있으나 불편을 겪고 있으며, 개선하고자 하는 사람들
Q. 그들은 어떤 이슈에 관심이 있는가?
A. 환경, 건강, 동물복지에 관심 있는 사람이 지배적으로 많고, 부가적으로 명상, 요가, 다이어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존재함
Q. 그들은 어떤 문제에 불편함이나 불만을 느끼는가?
A. 인간관계 및 사회생활이 가장 힘든 부분이며, 특히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외식을 해야 할 때 선택지가 거의 없어 불편하다. 자신의 신념이나 식습관을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기에는 갈 수 있는 식당이 많이 없어,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사회생활에서 소외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Q. 그들은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에 화가 나며,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
A. 그들은 채식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소식에 열광한다. 새로운 채식 식당 개업, 일반 식당의 채식메뉴 추가, 편의점 채식 상품 출시 등의 소식에 열광한다. 그들은 환경파괴나 인권, 윤리적인 문제에 민감하며, 본인이 생각하는 불의에 맞서기 위해 기존의 사회관습/제도에 이의를 제기하고, 사회적 소수자가 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이제는 위에서 설정한 목적, 목표, 타깃을 바탕으로 전략을 세울 차례다. '전략'이라는 단어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크게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볼 수 있다.
양 VS 질
양으로 때려 부을 것인가? 양보다는 질로 승부할 것인가? 사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양과 질의 두 가지 추를 들고 어디쯤에서 균형을 잡을지 정하면 된다.
흔히 말하는 '킬러 콘텐츠'는 오랜 기간 많은 콘텐츠를 만들다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얻어 빵 터지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그렇다. 싸이는 그 노래를 다른 노래에 비해 특별히 많은 제작비와 시간을 투자하여 만들지 않았다. 이전부터 차곡차곡 자신의 색깔로 곡을 만들고 대중에게 선보여 왔으며, 그러던 중 '강남 스타일'이라는 곡이 유튜브에서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 것이다. 선례들을 보면, 양은 최소한 일정 정도는 받쳐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작은 많은 연습과 실행을 통해 실력을 키운다는 뜻도 되니까 말이다.
실무자의 입장에서 양과 질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해보자.
주 40시간 근무, 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내보내기까지 내가 투입하는 시간이 개당 3~9시간이라고 가정해 보자. 만약 내가 투입하는 시간이 콘텐츠 퀄리티와 정비례한다면, 다음과 같이 콘텐츠를 구분할 수 있다.
- 하급: 투입시간 3시간
- 중급: 투입시간 6시간
- 상급: 투입시간 9시간
여기서 선택할 수 있는 전략
1) 최대한 많은 양의 콘텐츠 => 일주일에 하급 콘텐츠 약 13개
2) 횟수를 줄이더라도 최상의 콘텐츠만 => 일주일에 상급 콘텐츠 4.5개
3) 상중하급 콘텐츠를 적절히 배분하며 매일 업로드 => 일주일에 총 7개(하급 2개, 중급 3개, 상급 2개)
정답은 없다. 서비스의 목적과 목표, 타깃에 따라 최적이라고 판단되는 전략이 있을 뿐이다. 내가 우선 선택했던 건 3번 전략이었다. 다양한 퀄리티의 콘텐츠를 매일 주기적으로 올리면서, 어떤 콘텐츠가 킬러가 되는지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만약 우리 서비스가 '프리미엄'을 표방했다면 2번 전략을 선택했을 것이고, 만약 우리가 콘텐츠에서 힘을 빼고 최대한 노출을 늘리는 것이 목표였다면 1번 전략을 선택했을 것이다.
콘텐츠 전략이 세워졌다면, 이제는 정말 실전이다.
나는 기획자가 '혼자 밑그림을 그린 후, 다른 사람들을 데려와 색칠을 해서 그림을 완성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콘텐츠가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전할지 밑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작가와 디자이너 등 콘텐츠 완성에 필요한 리소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린 밑그림을 설명하고, 그 의도에 따라 색칠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 색칠 결과물들을 종합하고 최종 마무리하여 세상에 내보낸다.
이 과정에서 최종 아웃풋에 대한 그림, 그 아웃풋을 만들기까지의 제작과정과 방식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보통 항상 그렇다.) 이 모든 과정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통해 원만하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기획자의 자질이다. 자신이 그린 밑그림을 고수할 수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 고칠 수도, 함께 논의해 새로운 밑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그 어떤 것도 정답은 없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그때 그 상황에서 최선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선택을 하는 것도 기획자의 역할이다.
순서상 마지막 단계이지만, 또 다른 사이클의 시작인 단계이다. 1번에서 설정한 목표 달성을 위해 우리가 잘 가고 있는 것인지 주기적으로 점검이 필요하다. 실무에서는 보통 1-2주에 한 번 그간 발행된 콘텐츠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과 이로 인해 달성된 효과를 평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평가의 목적은 '더 나은 콘텐츠 기획을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쁜 평가가 기획자의 업무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기획자 스스로에게도, 회사에게도 좋지 않은 피드백이다. 그러므로 내가 기획한 콘텐츠의 성과가 좋고 나쁨을 개인적 역량과 일대일 매칭하지 말자.
콘텐츠 평가를 할 때 가장 많이 보는 지표가 조회수, 좋아요 수, 댓글 수이다. 부가적으로 인스타그램 콘텐츠라면 해당 콘텐츠로 유발된 프로필 방문, 팔로우, 노출, 도달, 저장, 웹사이트 클릭 등의 지표를 확인할 수 있다. 유튜브의 경우에는 해당 콘텐츠로 유발된 구독 수, 시청시간 등의 지표가 있다.
요즈음에는 평가에 사용할 수 있는 지표가 너무도 많다. 수많은 지표 중 어떤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인지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해, 수백수천 개의 숫자의 홍수 속에서 헤맸던 기억이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비즈니스에 중요한 지표를 선별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추후에 다른 글에서 정리해 보겠다.
평가를 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염두에 두고 데이터를 바라보면 유용하다.
Q. 다른 콘텐츠와 비교했을 때, 독자 반응이 유달리 좋거나 나쁜 콘텐츠는 무엇인가?
Q. 이렇게 튀는 콘텐츠는 왜 그런 결과를 만들어 냈을까?
Q. 우리의 예상과 다른 결과를 낸 콘텐츠는 무엇이며,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대박 날 줄 알았는데 중박인 콘텐츠, 중박일 줄 알았는데 대박 난 콘텐츠 등)
핵심은 '왜'이다. '무엇'은 중요하지 않다. 똑같은 콘텐츠를 똑같이 다시 만들 일은 없기 때문에. '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보고, 추후 기획에서 그 가설을 검증할 수 있도록 기획내용을 조정하면 좋다. 예를 들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 콘텐츠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면, '독자들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질문형 콘텐츠에 반응한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추후에 질문을 던지는 콘텐츠와 그렇지 않은 콘텐츠를 각각 기획해 실험해볼 수 있다. 이러한 검증과정을 통해 기획은 개선되며, 독자와도 한층 가까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