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의 <마켓컬리 인사이트>를 읽고
공룡 같은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스타트업으로서 살아남는다는 건 참 막막한 일이다. 최근 '플랫폼' 기업에서 '커머스' 기업으로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재정의한 우리 회사도 그중 하나다. 이러한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을 품게 하는 기업이 있는데, 그건 마켓컬리다.
2015년 5월 첫 서비스를 론칭한 후, 2021년 현재 국내 대표 이커머스 기업이 된 마켓컬리. 대표의 이력이 나름 화려하긴 하지만, 대기업 자본을 들고 시작한 기업이 아닌 만큼 마켓컬리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의미가 크다. 이런 맥락에서 <마켓컬리 인사이트>는 그들이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사업을 바라보는지,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시스템으로 조직과 서비스를 운영하는지 등을 겉핥기로나마 알려주는 매우 유용한 책이다. 이 글에서는 내게 가장 큰 인사이트를 준 3가지 포인트를 살펴보려 한다.
마켓컬리 성공의 가장 큰 비결은 책의 첫 장인 '고객 가치를 향한 집념'이다. 서비스 공급자로서의 효율성이나 비용 절감보다 고객 가치와 품질을 우선에 두고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를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에 옮긴다. 상품을 선정하는 기준도, 고객 불만과 문의를 처리하는 방식도,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때도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고객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MD를 평가하는 기준(KPI)이다. 마켓컬리 MD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매출로 평가되지 않는다. 상품 품질과 VOC(voice of customer) 해결 역량으로 평가받는다. 평가 기준이 이렇게 정해지고 나면 개인은 당연히 매출 극대화보다는 최고의 품질과 최선의 고객 경험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과 제도로서 진정한 고객 가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두 번째로 인상 깊게 본 부분은 그들의 데이터 기반 운영방식이다. 마켓컬리에는 조직의 의사결정을 돕는 '데이터농장팀'이 있다. 그들이 개발한 '데이터 물어다 주는 멍멍이'(줄여서 '데멍이')는 30분 단위로 매출, 프로모션, 재고, 서치 로그(검색량, 키워드), 주문 수량을 전사에 알림 한다. 심지어 재고가 예상 판매량보다 높을 때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할인율로 프로모션을 하는 게 적합하다'는 의견까지도 보내준다고 한다. 데이터농장팀이 만든 대시보드를 통해 직원들은 판매 예측 정보와 실시간 판매현황 등의 데이터를 수시로 점검한다. 그 과정에서 평소와 다른 패턴이나 수치를 발견하면 그 원인을 파악해 문제 해결을 위한 플랜을 짜고 실행에 옮긴다.
스타트업은 실험하지 않으면 필패하는 조직이다. 그리고 성공적인 실험을 위해서는 회고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결과가 실패했다 하더라도 회고가 제대로 되었다면 성공한 실험일 수 있다. 마켓컬리는 이 회고의 문화가 전사에 잘 퍼져있다. 직원들은 어떤 업무나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당초 예상은 이러했는데, 현실은 어땠고, 그걸 통해 뭘 배웠으니, 다음에는 다르게 접근하겠다"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를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은 실험의 정석적인 과정을 거친다고 할 수 있다.
1) 가설 수립
2) 결과
3) 배움
4) 후속 가설 수립
스타트업은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다. 멋진 포부와 좋은 뜻을 품고 시작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일만큼 힘든 곳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성장하고 결국 성공하는 조직은 기본과 본질에 충실한 기업이다. 마켓컬리의 성장 요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결론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고 노력했기에 지금의 마켓컬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