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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Jun 25. 2019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지?

안냐 푀르스터 & 페터 크로이츠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읽고


미리 말하지만 이 글은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 대한 리뷰라기보다는,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에 질문을 던져보는 글이다. 책의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요약본이라기보다는 책 속 주요 내용을 한 사람의 인생에 적용해보는 글이다.




90년대생 한 여성은 소위 SKY 대학 상경계열을 나와, 영어권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영국 명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스위스에서 국제기구 인턴을 거친 후 귀국해 한국의 경제사회정책에 이바지하는 국책연구원에서 일했다. 지금은 미국의 돈 많은 주립대학교 경영학과 박사과정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을 앞두고 있다. 화려해 보이나? 탄탄대로의 보장된 앞날이 예상되나? 사실 당사자는 전혀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다. 그는 바로 나다.


어디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할지는 인생에 있어서 손꼽히는 중요한 결정들이다. 지금 내 앞에 예정된 미래에 가슴이 뛰지 않는 이유는, 날 여기까지 오게 한 나의 선택들이 내 가슴을 뛰게 한 결정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기준과 타협해 내린 것들이기 때문이다. 내 주변 인생 선배들이 밟아 온 보장된 성공의 길은 고학력자가 되어 '박사님' 소리 들으며 전문가 대접받고 내 할 말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고, 그것이 내가 그리던 나의 미래였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의 저자들은 안전의 욕망과 출세의 기대는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도 그냥 이 인간적인 욕구들을 따라가면 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어서 '사'자 들어간 전문직을 좇지 않는가? 나도 그 길 중 하나를 선택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입학이 결정되고 출국 준비를 할수록 '이게 아닌 것 같은데'하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가 학자로서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이것이 진정 나에게 맞는 삶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미래를 창조하는 사람 vs.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


저자들은 책의 어느 한 부분에서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 미래를 창조하는 사람과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나는 후자였다. 국책연구원에서 일할 당시, 박사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음에 좌절했다. 그렇다고 민간기업에 가서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인 연구역량을 더 개발하고 이를 통해 전문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찌 보면 당시 내가 그릴 수 있었던 유일한 탈출구였다.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했다. 변화무쌍하고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내 몫을 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질문이 대답을 결정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정말 그렇다. 당시 나의 질문은 "이 곳에서 계속 일하는 건 미래가 안 보여. 그렇다면 여기서 어떻게 탈출하여 커리어 점프를 할 수 있을까?"였다. 그리고 몇 달 동안의 고민을 거쳐 내린 결론은 '경영학 박사과정을 거쳐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왜? 난 기업 행동을 관찰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데, 마침 경영학은 돈이 잘 들어오고 다른 사회과학계열에 비해 자리도 많은 학과다. 돈도 되고 재미도 있으니, 이보다 좋은 선택이 있을까? 선배들이 그랬다. 돈이 모이는 곳에 가야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난 나쁜 질문을 던진 거였다.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질문의 종류가 질문하는 사람의 시선을, 관점을 세계의 특정한 한 면으로 집중시킨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질문자가 자신이 보고 있는 그 한 면을 세상의 전부라고 믿을 때다. 그가 자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옳거나 틀리다고 판단해버릴 때 바로 그런 일이 발생한다. 틀렸다고 생각했던 대답도 다른 맥락에서 보면 옳을 수 있다. ... 또 어떤 때는 옳고 어떤 때는 틀릴 수도 있다. ... 똑같이 중요하거나 더 중요한 다른 질문을 묻지 않고 단독으로 던져진 질문이라면 매우 좋은 질문도 나쁜 질문이 될 수 있다.


나는 나와 접점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나만의 세계만 고려하고 있었다. 경제학 박사, 경영학 박사, 대학교수,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 그러니 나는 학계나 정부 섹터가 내가 살 수 있는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그 세계 속 사람들은 여전히 박사학위를 매우 중요시한다. 그 안에서 살 길을 찾다 보니 '박사'라는 답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었다. 나는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뭘 이루고 싶지? 내 인생의 목적은 뭐지?




성공


나는 성공하고 싶었다. 남들이 보기에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나의 이력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그런데 웃기게도, 나는 성공에 대한 정의도 내리지 않고서 성공을 탐하고 있었다. 성공의 사전적 정의는 1) 목적이나 뜻을 이루는 것, 2) 사회적 지위나 부를 얻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2번 정의에 공감할 것이고, 나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은 다르게 말한다. 세계적인 철학자 알랭 드 보통, 퇴사학교 아이덴티티 워크숍의 배근정 선생님 모두 성공의 개념을 스스로 설계하라고 조언했다. 그래야 진정으로 평화로운 상태에 놓일 수 있다고.


이 책의 저자들도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성공의 청사진 같은 건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래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모범답안이란 있을 수 없다. 혁신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따라 해서는 안된다. 스스로 실험해야 한다. 왜냐면 복제품은 절대 원본의 가치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스스로에게 무엇이 옳은지 알려주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내 마음의 소리를 청취함으로써 나의 목표와 이상을 이해할 때, 내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알게 될 때, 자유가 시작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목적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충만한 삶을 살 확률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제 내 마음에게 질문해보자. 내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내가 추구하는 가치,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지속가능한 세계를 원하고 이를 직접 만들어 나가고 싶다. 자연과 동물과 사람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지구를 만들고 싶다. 환경을 보전하고, 자원을 절약하고, 불필요하고 잔인한 살생을 동반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경제사회구조를 만들고 싶다.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지속가능하게 변화시키고 싶다.




의미 있는 일을 향해


그러면 나는 뭘 해야 할까?

저자들은 일의 종류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눈다. 나에게 의미를 주는 일과 타인에게 의미를 주는 일을 기준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그렇지만 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일에 대해서 먼저 살펴봐야 한다.

출처: 안냐 푀르스터 & 페터 크로이츠 <어떻게 일할 것인가>, p. 186


'허드렛일'은 나에게도 의미가 없고 타인에게도 의미가 없는, 단도직입적으로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어떤 일을 하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했던 대답은 "정책연구와 각종 허드렛일"이었다. 연구라는 의미 있는 일도 하지만, 의미 없는 허드렛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불만 때문이었다. 허드렛일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도 자신이 허드렛일이라 지칭하는 일을 하면서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일'은 어떨까? 좋은 일은 사회적인 기준에서 인정받는 훌륭한 일, 금전적으로도 잘 보상받는 일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일을 찾아 열심히 스펙을 쌓는다. 아주 어릴 적부터 셀프마케팅 교육을 받은 영향이다. "너는 상품이야. 비싸게 팔아. 최고의 가격을 불러!" 이렇게 스스로를 상품화하고 세상이 보기에 유용한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자신이 아닌, 타인의 목적을 위한 삶을.


그러나 저자들이 지적하는 좋은 일의 문제점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완성된 시스템 내의 상류층에 진입하여 시스템에 순응하는 인간에게 발생하는 부작용은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일'은 '나쁜 일'이기도 하다.


일단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사회적 지위나 영향력이 없으면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사회가 원하는 일을 한 뒤에 자신의 삶을 찾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으로 보이는 계획이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유한한 인간의 시간 속에서, 그런 굽은 길을 거쳐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들은 "이 시스템의 질주하는 열차에서 뛰어내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것이 단 하나의 해결책이라고.


그렇다고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나의 일'을 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이 따라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그럴까? 이건 반쪽짜리 조언이라고 저자들은 경고한다. 나머지 반쪽은, 좋아하는 일을 매우 열심히, 열정을 다해, 목표를 향해,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정열을 듬뿍 쏟으며, 인내심을 갖고 혹독하게 일해야만 돈이 따라올 거라는 사실이다. 즉 창의력 및 실행력과 더불어 상당한 현실주의가 필요하다.


소위 '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시장에서 무시당하는 이유를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상당수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장에 맞는 제품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 없다.

2) 변덕쟁이다. 흥미롭고 전도유망해 보이는 아이디어가 있다 싶으면 달려들지만, 이것 저것 찔끔 간만 보다 만다.

3) 하기 싫은 일은 안 하려 한다.

4) 자기 일에 너무 강한 확신을 가진 나머지 외부의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5)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고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 한다.

6) 시장의 복잡한 사정에 눈을 감고,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로 온 우주를 채운다.

결론적으로,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한 시장이 없으면 모든 노력은 헛수고가 될 수 있다고 저자들은 경고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나 자신에게도 의미가 있으면서 동시에 타인에게도 의미가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행복과 성취는 개인의 내면과 외부 환경이 결합하여 낳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한다. “진정한 변화는 의미 있는 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무언가 움직일 수 있으려면 온 가슴으로 그 일에 임해야 한다.”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다. 나는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가? 굳이 새로운 일을 찾을 필요는 없다. 기존에 하던 일을 '다르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의미 있는 일이란 어떤 것인가?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한다.

1) 자기 결정의 수위가 높다. 여러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고 이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다.

2)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인식하며, 외부에 가치를 부여한다. 달리 말해, 현재의 시스템에 불만을 느끼고 바꾸고 싶다는 개인적 감정에서 시작되지만, 그 활동이 사회와 조직의 미래를 바꾼다. 거창할 필요는 전혀 없다.

3) 우리의 마음과 가슴과 영혼에 감동을 주고, 영감을 주고, 성장시키며, 우리를 도전하게 만든다. 그 결과 창조적인 일을 하게 한다.

4) 깊은 만족의 원천이며,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고 외부에서도 느낄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가 가득하다.


저자들은 독자들에게 말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에너지와 의욕이 피어난다. 나의 목표는 외부에서 떠다민 게 아니라 내면의 마음가짐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야 한다. 이 사실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캐묻고 비판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내 삶의 초점이 외부의 인정과 요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는 곧 내 인생의 결정권을 온전히 나에게 가져온다는 것이고, 자율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자유란 ‘당장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는 곧 책임을 동반하므로, 자유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책임의 대가를 치를 각오도 해야 한다.


나는 조직 문화나 시스템이 의미 있는 활동을 못하게 막는다고 한탄한 적이 많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문화가 의미 있는 활동을 어렵게 할 수는 있으나,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나 또한 조직의 일원이며, 조직문화를 만들고 유지해 나가는 일부이다.  달리 말하면, 나의 생각과 태도가 바뀐다면 조직문화도 조금씩이마나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이상적이고 순진한 소리 아닌가? 나는 스스로에게 재차 물어보았다. 나는 내가 속한 조직 내에서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 시스템에 실망해 체념하고 그 조직을 떠났던 순간이 많이 있었지만,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작지만 꾸준한 실천을 했던 적도 있다.


스위스에서 채식 생활을 몸에 익힌 후 한국 조직에 취직했는데, 한국의 식문화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구내식당에서 고기반찬이 없는 날이 없었다. 회식은 항상 고깃집이었다. 조금씩 불만이 쌓이다 결정적 트리거가 있었다. 내가 다니던 국책연구원 산하에는 국제정책대학원이 있었고, 이 학교 학생의 절반 가량은 외국인이었다. 동남아나 아프리카 국가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도도 적지 않게 있었다. 주변에 식당도 없는 외딴 동네에서 그 친구들이 구내식당에서 먹을 것이 없어 방황하는 모습을 여러 번 포착했다. 한 번은 구내식당의 2개의 메뉴 모두가 돼지고기였다. 화가 났다. 명색이 '국제'정책대학원이라면서, 글로벌 인재를 키우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면서, 기본적인 식문화에서조차 타문화를 배려하지 못하는 형국이라니. 그래서 난 2018년 5월 1일 자로 고기반찬 보이콧을 시작했고, 사람들에게도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말했고, 구내식당 설문조사 때마다 해물이나 야채로 이루어진 메인 메뉴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어떤 날은 내 식판에 밥과 김치, 단무지, 장국 밖에 없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꿋꿋이 밥을 먹자 사람들이 나의 다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배식원분들이 내 얼굴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나에게 어떤 음식을 먹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생선과 난류, 유제품까지는 먹는다고 하니, 고기반찬 대신 나를 위해 계란 후라이를 해주거나 김을 꺼내 주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개월이 흐르자, 구내식당 세 가지 메뉴 중 세 번째는 항상 해물류로 고정되었다. 내 몇 개월 간의 투쟁이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경험을 되돌아보면, 절대 안 바뀔 것 같던 구내식당 문화도 조금씩 변화했다. 나라는 한 개인 때문에.

 

경영철학자 찰스 핸디는 조언한다. 삶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스스로 정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선택지는 효용이 아니라 스트레스만 유발하게 된다. 이때 기준은 의미 있는 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충분하다' 혹은 '만족한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 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저자들은 주장한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보다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즉 To-do list뿐만 아니라, Not-to-do list도 필요하다.




질문이 대답보다 중요하다.


좋은 질문이 좋은 대답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왜 안되는지’만 묻는다면 결론은 ‘안된다’가 되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물으면 ‘이렇게 하면 할 수 있다’가 된다. 저자들은 전자와 같은 질문을 ‘문을 닫는' 질문, 후자와 같은 질문을 ‘문을 여는’ 질문이라 부른다.


타인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저자들은 우리가 흔히 하는 다섯 가지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질문하라고 제언한다.

1. 나에게 뭘 기대하는가? -> 나는 어떤 일에 "No"라고 말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2. 얼마나 걸리는가? -> 충분히 중요한가? 그 일에 전념할 각오가 얼마나 되어 있는가?

3. 모범사례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 미지의 땅으로 진출할 것인가? 나는 어떤 미지의 땅을 밟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4. 어떻게 측정할 수 있나? -> 어떤 일이 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5. 비용이 얼마인가? -> 흔쾌히 치를 대가는 무엇인가?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 살아온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저자들은 위로한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그럼에도 이 질문들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삶의 심연을 체험할 수 있고 최고의 나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답을 내기 쉽지 않겠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 위 다섯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변을 써보려 한다.


1. 나는 어떤 일에 "No"라고 말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나는 내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 일에 "No"라고 말할 각오가 되어 있다. 예컨대 지구환경에 명백한 해를 끼치는 행위, 무고한 사람에게 명백한 피해를 가하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돈과 명예와 권력만을 위해 하는 일에는 "No"라 말할 각오가 되어 있다. 어떤 조직에서 무슨 일을 하든 그 조직이 궁극적으로 serve하는 대상 외에 타인을 우선순위에 두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2.  충분히 중요한가? 그 일에 전념할 각오가 얼마나 되어 있는가?

내가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목적은, 지구를 현재보다 더 지속가능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가 당장 하고 싶은 일은 육류 대체식품을 개발/생산/판매하여 기존 축산업과 식량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는 나에게 충분히 중요한 일이다. 1년 넘게 채식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음에 불편함을 느꼈고, 맛있는 채식 생활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지구환경과 동물을 해치지 않고도 즐겁고 건강한 식생활과 소비생활을 할 수 있게 돕고 싶다. 그러려면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이 그러한 제품을 만들어 주기만을 기다려왔다. 그런데 왜 기다리기만 해야 하지? 마크 저커버그는 2017 하버드 졸업식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로 당신이 변화의 주역이 될 거라고.


3. 미지의 땅으로 진출할 것인가? 나는 어떤 미지의 땅을 밟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현재 나에게 이미 익숙한 땅은 학계이다. 짧지만 연구하는 직업을 가졌고 앞으로도 연구를 한다면 그건 어쩌면 상대적으로 쉬운 길일 수 있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대강 짐작이 간다. 나에게 미지의 땅은 경험이 거의 없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거나 창업을 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평균이 실패이고, 연봉도 낮고, 고용안정도 보장되지 않고, 업무량과 야근도 많고, 사회적인 인정도 없다. 고객 불만에 대응하는 소위 허드렛일과 감정노동도 많을 것이다. 이 모든 고난을 헤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게 만약 내가 꿈꾸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필요한 고난이라면, why not? 다만 나 스스로를 단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는 안 될 것이다. 나와 같은 꿈을 갖고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는 동료가 필요할 것이다.

 

4. 어떤 일이 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스타트업에서 육류 대체식품을 만드는 것이 가치가 있는 일인가? 시장은 매우 좁고 편견은 많다. 의미를 찾는 일에는 그만한 금전적 보상이 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가치가 있는 일인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맛있고 건강하고 친환경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 지구공동체에 이로운 food system을 만드는 것은 나와 타인에게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5. 흔쾌히 치를 대가는 무엇인가?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낮은 연봉, 고용 불안정, 낮은 사회적 지위, 실패 위험 등이 수많은 대가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미 보장된 5년 간의 장학생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경영학 교수가 되어 사회로부터 존중받으며, 전문가 대접을 받으며, 고고한 생활을 영위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 만약 교수가 그러한 삶을 보장한다면 말이다. 나는 위와 같은 대가들을 흔쾌히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가? 지금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저런 대가들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직접 부딪혀보면 다르게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질문들을 던지는 순간 두려움이 닥쳐올 것이라고 저자들은 미리 경고한다. 그러나 너무 무서워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이 두려움은 행복지대의 경계선에 도착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불안감을 인정하고 행동하는 순간, 불안은 온데간데 없이 살아질 것이라고. 두려움은 자유의 대가다. 두려움과 자유의 동행을 즐기자.




태도를 바꿔라.


저자들이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세 가지 태도의 변화이다. 태도의 전환이 하루아침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하루에 1도씩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어느 순간에는 180도 전환된 나의 모습에 스스로 놀라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1. 냉소주의에서 이상주의로

저자들이 말하는 이상주의자는 몽상가가 아니다. 자신이 믿는 일을 위해 행동하고 투쟁하는 사람이며, 타협을 거부하고, 도망가지 않고, 자신의 시스템에 남아 온 힘을 다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싸우는 똑똑한 실용주의자다. 방관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현실에 뛰어드는 행동주의자이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매일 하는 행동을 일치시키는 사람이다.


2. 교환 거래에서 진정한 참여로

교환 거래에서 내가 하는 일은 상업적 거래가 된다. 나의 가치는 시장이 내 노동력에 지불하는 대가이다. 반면, 진정한 참여란 돌아올 보상을 개의치 않고 스스로 내리는 결정이며, 자유를 지키는 방법이다. 참여는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남겠다는 결정이며, 돈과 거래되는 상품이 되기를 거부하겠다는 의지다.


3. 소비자에서 시민으로

일터에서 시민은 스스로를 기업의 미션에 동의하는 조직의 일부로 생각한다.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한다. 어디로 갈지, 어떤 계약을 받아들일지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어디에 참여할 것인지는 자신의 마음에 따라 선택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자율적 행동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책을 마친다.

“인생의 성공은 행동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정확히 안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먼저 행동해야, 행동하면서만이 찾아오는 것이다.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나 자신의 대답을 찾아야 한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어떤 목표를 따를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PS. 이 책을 추천해주고 제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시켜준 퇴사학교 아이덴티티 워크숍의 오르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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