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스타트업 3년이 내게 가르쳐준 것 (3)
스타트업 씬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언론에 비치는 눈부신 성공 케이스가 자신이 될 것이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시작한다. 하지만 사실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무모한 선택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혹여 스타트업이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성장한 개인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한다.
나 역시도 부푼 꿈을 안고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2019년 한국에서 유일한 비건/채식 플랫폼 스타트업에 입사했을 때, 몇 년 후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핫한 기업이 되어 있을 거라 기대했다. 당시는 영국 The Economist가 'the year of the vegan'라며 비건 트렌드를 집중 조명하고, 미국의 식물성 고기 선두기업 Beyond Meat가 NASDAQ에 상장하며 그 해 최고의 IPO라는 소리를 들었던 해였기 때문이다. 새롭게 열리는 이 시장에 대한 대내외적인 기대가 매우 컸고, 내가 입사한 회사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IT로 비건/채식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었기 때문에 희망찬 꿈을 안고 일을 시작했다. 입사 한지 몇 달 되지 않아 잘 알려진 소셜벤처 액셀러레이터로부터 시드 투자를 받았고, 앱 리뉴얼 론칭도 했다. 대기업과 협업의 실마리도 보였고, 여러모로 잘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앱 리뉴얼 론칭을 하며 목표로 삼았던 지표는 10% 언저리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0년 초 코로나가 터지면서 사업이 더 어려워졌다. 우리 앱은 오프라인에서 채식을 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아주는 게 핵심 기능이었는데, 외식이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를 한 끝에 온라인 중심의 커머스로 피봇을 하게 되었고, 사업 방향성 전환에 따라 조직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후 2년 동안은 사업 방향성을 계속 조정하고, 이러저러한 시도를 해보며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다.
지난 3년을 회고해 보면 외부 투자를 통한 기업가치는 6배 성장했고, 인원은 2-3배 늘었다(시기에 따라 편차 있음).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비스 사용성 지표들은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앱 사용자, 사용시간, 매출, 거래액 등 실질적인 사업의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는 내가 기대하는 성장 속도에 미치지 못했다. 정체되거나 심지어 하락하는 시기도 있었다. 이럴 때면 나의 능력을 탓하곤 했다. 나의 역량이 부족해서, 혹은 경험이 충분치 않아서, 인사이트가 없어서 등 회사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괴로운 순간이 많았다. 그리고 회사의 성장이 둔화됨에 따라 나의 성장도 둔화되고 있다는 불안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회사나 사업의 성패가 어느 한 개인이 잘해서 혹은 못해서 결정되기는 어렵다. 우리 조직만 해도 10여 명의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일하고 있었고, 그 모두가 결과에 일정 정도 기여하는 사람들이었다(물론 기여도에 차이는 분명히 있다). '회사가 잘 되면 내 덕, 못 되면 내 탓'도 아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회사의 성장과 나의 성장을 분리해 볼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회사가 성장한다고 꼭 그만큼 내가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가 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성장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회사의 성장이나 성패와는 별개로 개인은 개인대로 성장할 수 있다. 물론 베스트 시나리오는 회사도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나도 성장해서 회사와 나의 위상이 모두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성장이 둔화되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내가 아래와 같은 질문에 당당히 YES를 외칠 수 있다면 그 과정은 충분히 값진 것이다.
- 회사가 속한 산업의 시스템과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는가?
- 시장과 고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시장과 고객의 니즈와 문제를 분석하는 능력이 향상됐는가?
- 위기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키웠는가?
-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협력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어 보았는가?
- 주변 동료들로부터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었는가?
이렇게 업무 과정 중 쌓은 자산들은 추후에 구직 시장에 다시 나갈 때 내가 외부에서 어떻게 평가되는지로 증명될 것이다.
케이스를 나눠보면 아래 도표와 같다. 회사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이 함께 가는 것이 베스트이지만, 내가 온전히 컨트롤할 수 없는 회사의 성장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개인의 성장에 집중해라. 그것 또한 나중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회사가 성장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안주하고 개인의 성장을 소홀히 한다면, 추후에 더 좋은 기회와 자리를 얻을 역량을 쌓지 못할 테니 나쁜 케이스다. 그리고 회사와 개인 모두 성장하지 않는 환경이라면 최악이다.
스타트업은 10에 9는 실패한다. 즉,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실패할 스타트업에 합류할 확률이 90%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개인이 실패할 확률 90%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스타트업의 성패와 상관없이 스타트업 씬에 자신의 몸을 내던진 사람들은 90% 이상이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이라는 도전적인 환경에서 시장과 자신에 대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며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과 경험들로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스타트업은 99.9% 성공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