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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 Jan 28. 2023

엉뚱한 엄마의 엄마표 공부-영어9

내가 엄마표 공부를 하는게 맞는건지...

두 남매를 데리고 과학관에 방문했다. 

아이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집에 언제가나 멍하니 서 있을 때, 가까운 곳에서 영어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영어다! 누구지?’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두 돌 정도 보이는 아이와 젊고 세련된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과학관이 신기한 지 해맑은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아이에게 엄마가 영어로 말을 걸고 있었다. 이 엄마도 나처럼 엄마표 영어공부를 하나보다. 그런데 나와는 결이 달랐다. 이 엄마는 미국에서 살다 온 것 같았다. 내가 흉내 내지도 못할 발음으로 아주 평온하고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영어를 다루고 있었다.   

   

호기심에 이 젊은 엄마의 영어를 더 듣고 싶었다. 그래서 관심 없는 척 하면서 그 가족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 엄마의 영어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 얼굴은 붉어졌다.

이 엄마는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 할 텐데도 나의 엉뚱한 무작정 엄마표 영어공부를 들킨 것 같았다. 아이 엄마의 유창한 영어는 내 주위를 맴돌면서 영어실력도 없으면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발버둥치는 나를 훤히 꿰뚫어 본 듯 했다.      


옆에 있던 남편이 내 귀에 속닥거렸다.


‘유학파 엄마인가 봐.’


남편은 나의 엄마표 영어공부 과정을 지금까지 지켜본 사람이다. ‘유학파 엄마인가 봐’ 이 속삭임은 나와 저 유학파 엄마를 비교해서 하는 말 같았다. 그래서 나의 수치스러움은 배가 되었고 근거 없는 자신감은 빛을 잃어갔다. 빛을 잃은 내가 큰 삽으로 땅을 파고 들어가 숨어 버리기에 충분한, 타격이 강한 속삭임이었다.     


이제는 이 가족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지만, 동선이 비슷하니 자꾸 귀 안에 영어가 들어온다. 듣고 싶지 않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로 삽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날 하루 종일 그 아이 엄마가 생각이 나면서 무작정 시작한 엄마표 영어공부의 지속여부를 고민했다. 


내가 계속 해도 되나?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공부머리를 탓하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영어 어렵다를 외치는데, 이런 내가 과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도 되나? 객기를 부려도 너무 심하게 부렸나보다. 이러다 아이들 영어실력은 좋아지지 않고 시간 낭비만 하는 것 아닌가. 

정말 학원을 보내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학원에서 배웠으면 더 발전할 수 있는 아이들인데 학원비 아끼겠다고 내가 그 성장을 막아버린 것 아닌가.


동네 엄마들을 만나면,


“에이~ 우리가 어떻게 가르쳐요? 학원 보내는 게 나아요~ 우리는 발음이 안 좋아서 안 돼~우리가 애들이랑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그 말이 맞았다. 내가 왜 겁도 없이 덤벼들었을까...     




한숨 푹 쉬며 남편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말을 걸었다.


“오늘 속상했어. 그 엄마 멋있더라. 그 정도는 되어야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 되는 거 아닌가 싶더라고.”     


“속상해도 어쩔 수 없잖아. 우린 유학파가 아니고 우린 이미 이렇게 살고 있어. 그래도 넌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 내가 너 공부하는 거 지켜봤잖아~ 너 처음에 진짜 영어 못했어. 여기까지 발전한 것도 대단해! 나는 영어동화책도 못 읽겠던데, 넌 잘 읽잖아. 

그리고 아이들이 너 공부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영어실력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무언가를 배우는 게 분명 있을 거야. 괜찮아. 괜찮아.”     



남편의 친절한 말에, 땅을 팔 큰 삽 찾기는 그만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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