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전도
“엄마! 밥 줘! 배고파!”
“오냐~”
아이들 저녁 밥을 거실 탁자 위에 서둘러 차려준 뒤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어 네이땡 검색창에 모르는 단어를 검색했다. 노트에 검색한 단어를 쓰고 뜻을 썼다.
“엄마! 이리 와봐~!”
“왜? 엄마 공부하고 있잖아! 말로 해!”
“빨리 와봐~!”
“에잉...알았어!”
딸아이 방에 가서 딸이 원한, 책장 높은 곳에 앉아 있는 인형을 꺼내 딸 품에 안겨 주었다.
다시 후다닥 식탁에 앉았고, 해석 할 문장을 노트에 썼다.
“엄마! 뭐 먹을 것 없어?”
“밥 먹었잖아?”
“다른거 또 먹고 싶어!”
냉장고를 열어 아이들 간식으로 줄 만한 사과를 꺼내 급하게 깎았다. 접시에 담은 사과를 거실 탁자 위에 올려 두고, 아이들이 밥을 다 먹고 그대로 둔, 빈 그릇을 개수대에 넣었다. 다시 식탁에 앉아 볼펜을 들어 문장을 입으로 소리 내 읽으며 적고 있을 때,
“엄마! 오빠가 사과 다 먹어!! 접시에 따로 담아줘!”
“그냥 먹어!”
“싫어! 나는 먹는 게 느리단 말이야!”
접시 하나를 꺼내 사과를 정확히 반으로 나눠 담아준 뒤, 식탁에 앉지 말고 서서 공부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통보했다.
“엄마 그만 불러! 나 바빠!”
또 다시 식탁에 앉아 문장을 읽고 있을 때, 두 남매는 사과를 열심히 먹고 유치원 놀이를 했다. 유치원 놀이를 하다가 둘의 의견이 맞지 않았나 보다. 딸은 내 앞으로 와 눈물 뚝뚝 흘리고, 아들은 동생은 도대체 왜 그러냐고, 내가 언제까지 양보해야 하냐고 울상이 된 표정을 지었다. 내 입에선 희미한 숨이 훅 튀어나왔고, 보고 있던 책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 놓았다.
아이들 자야 할 시간이 되었다.
“엄마! 자기 전에 책 읽어 줄 거지?”
“어...어...그래...”
“영어책도 꺼내 올께!!”
아이들은 영어책을 포함한 여러개의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 높게 쌓았다. 태산이 아이들 작은 손에 밀려 내 무릎 앞에 놓였다. 나는 초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한 권씩 읽기 시작했다. 큰 목소리로 생생하게 연기를 하며 읽어 주던 의욕이 앞선 엄마의 모습은 작은 목소리로 무미건조 하게 읽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 영어책 읽는 것은 분명 영어 실력 늘리는데 도움이 될 터인데, 영어 신출내기는 영어원서에 정신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내 마음은 식탁 위 구석에 놓여 있는 영어원서 근처를 맴돌았다. 분명 학원비를 아끼기 위해서 엄마표 교육을 결심한 것인데, 내 공부가 중요시 되어버린 주객전도 된 상황이라니...
“자!!! 다 읽었어!! 어여 들어가서 자!”
“같이 안 잘 거야?”
“나도, 엄마랑 같이 자고 싶은데...”
“엄마공부 조금만 더 하면 안 될까? 엄마가 영어책도 읽어줬잖아! 한번만~~”
“헐...”
아이들은 내 손에 이끌려 아쉬운 듯이 방으로 들어 갔고, 나는 아이들을 눕히고 이불을 꼬옥 덮어준 후, 불을 끄고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영어원서를 펼쳤다.
나는 주방의 가장 약한 빛이 나는 조명을 켜 놓고, 긴 벤치 의자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책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리고 있다. 주위는 고요하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 열정은 따뜻한 공기와 섞여 부드럽게 흐른다. 의도치 않게 내 공부에 심취해, 아이들 영어공부를 잠시 나 몰라라 하고 내 발전에만 신경 쓰고 있는 엉뚱한 엄마이지만,
이 순간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는 내가 좋다.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