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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양 Jun 17. 2023

[11화] 3명 중 1명이 소외되는 이유

이해받지 못한 마음

미움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유치하고 하찮은 마음이 아니라 귀엽고 당연한 마음이다.



저는 유독 3명의 무리 속에 소속되어 있던 적이 많았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그러했죠. 3명이 있는 무리 중 저는 언제나 소외감을 느끼며 은근히 배제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를 제외한 2명은  저를 은근히 몰아붙이고 미워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욕심 많고 성격이 못됐고 배려심이 없어서 제가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의 뿌리는 가정에서부터였습니다.


저희 집은 다섯 식구입니다. 부모님, 언니, 저, 남동생 이렇게요. 저를 포함한 여자는 엄마, 언니, 나 이렇게 3명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언니는 언제나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저 때문에 사랑을 못 받는다고 징징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거짓말을 섞어서 제 험담을 하는 게 일상이었죠. 제 험담이라도 하면서 엄마와 애착관계를 갖고 싶었나 봅니다. 3명이 같이 쇼핑을 갈 때면 전 언제나 혼자 뒤처져서 걸어 다녔습니다. 엄마는 쇼핑하다가 뒤처지는 저를 보면서 짜증을 냈고, 저에게 2천 원을 손에 쥐어주면서 “길 잃어버리면 지하철 타고 혼자 집에 가”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소외감과 원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저에게만 유독 쌀쌀맞고 무섭게 굴고, 엄마에게 여우처럼 정치질하는 언니가 얄미웠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저를 제외하고 모두 하하 호호 깔깔대며 웃으며 대화하곤 했습니다. 함께 웃고 싶었지만 그런 날은 찾아오지 않더군요.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남들 욕이었으니 대화에 끼고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가족들은 함께 웃고, 저는 혼자 쓸쓸함을 삼키곤 했습니다.     


제가 소외감을 느끼는 일은 반복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서클 활동을 할 때에도, 취미활동 모임에 나가서도, 직장에서 부서 배정을 받고서도 저를 포함한 3명의 구성원과 함께하는 일이 반복이 되었습니다. 제가 원하지도 않은 판이 계속 짜여졌죠. 그래서 저는 어디를 가든 무리가 홀수인지 짝수인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정해진 시나리오처럼 언제나 벌어지는 일은 똑같았습니다. 저를 제외한 두 명의 결속력이 단단해져 제가 그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고, 그들은 언제나 제 험담을 했으며, 그들과 유대감을 느낄 때보다 질투를 받거나 소외를 당하거나 오해를 받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소외감을 느끼기로 먼저 선택한 것은 저였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제가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숨기고 언니에게 양보를 하면 언니가 조금 더 행복해질 테고, 그러면 저를 미워하거나 괴롭힐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면 제 인생이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욕구를 숨겼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남의 것을 뺏고 상처 주는 일이고, 소란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저는 언니의 요구사항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제가 살아갈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그들보다 모자라거나 소외되면 나머지 2명이 우월감을 느끼며 행복해할 것이고, 그러면 나를 괜히 질투하거나 오해해서 제가 미움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줬고, 질투받을까 봐 두려워서 열등한 내가 되길 택했습니다. 더 양보해주지 못해서 미안해하고, 미움받고 공격받을까 봐 눈치를 봤습니다. 저에게 집착하는 친구에게는 집착을 더 당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기도 했죠. 제 학창시절은 두려워서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하는 순간들 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혼자 손해 봤다는 느낌을 곱씹으며, ‘언젠가 내 부탁도 들어주겠지’, '이런 착한 나를 친구들이 알아주겠지'하면서 자기 위로를 했고, 친구들이 저를 사랑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가끔 친구들이 양심 없는 부탁과 행동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저의 뻔한 행동패턴을 예측하고 이용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죠. 저는 친구들에게 거절하지 못했고 마지못해 부탁을 들어줬습니다. 부탁을 들어주기 싫은 내 감정과 사정을 이야기해 봤자 핑계로 치부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핑계를 대는 구차한 사람이 될까봐 겁도 났죠.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르고 우유부단한 저의 모습은 일상생활에 전반적으로 뻗어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학원을 다니다가 시간적인 사정으로 그만둬야 할 때, 학원 선생님께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게 하나의 예입니다. 레슨비를 지불하는 제가 레슨비를 받는 학원 선생님에게 오히려 쩔쩔매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저는 학원 선생님이 저를 통해서 돈을 더 벌고 교육을 시키고 싶어 하는 욕구를 좌절시키고 실망시키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간의 압박에 못 이겨 끝끝내 학원을 그만둬야겠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릴 때에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함과 초조함이 밀려왔습니다. 그 감정이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대신 말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습니다. 진짜 나를 드러내고 자기주장을 했을 때 수용받는 경험을 해야 비로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기 마련인데, 제가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니 제 꼴은 점점 우스워지고, 주변 친구들과 동료들은 저와 동등한 관계로 시작해서 저를 이용하는 상하 관계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저의 내면에는 두려움, 적개심, 분노, 억울함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억지로 한 행동에는 반드시 보상심리가 따르기 마련인데, 보상이 충족될 리는 없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제 양보를 날름 받고 끝내거나, 더 이용하고 받을 생각을 하거나, 심지어 배려받을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거든요. 저는 제가 원하는 바를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기다리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하면서 마음은 서운함으로 가득차 언제나 삐질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저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이 오히려 제 눈치를 봤겠죠. 그러다가 2명이 더 친해지고, 저는 점점 소외가 되는 구조 속에 놓이곤 했습니다. 제 인간관계의 메커니즘은 참 한결같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외롭고 호구가 된 것 같은 기분 때문에 저를 이용하는 친구 또는 동료가 밉고 언젠가 되갚아주고 싶다는 치졸한 생각까지 한적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내 욕구를 억누르고 양보를 했으니 난 ‘착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고 여겼죠.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귀찮게 하지 않고 말을 잘 듣는 아이에게 ‘착하다’라고 해주시는 것처럼 제가 스스로 착하다고 자기합리화를 해버렸습니다. 마음에는 분노와 공격성으로 가득 차 있는데 말이죠.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상태, 이것이 바로 착한 아이 증후군입니다.


요즘 TV 고민상담 프로그램을 보면 심심치 않게 나오는 레퍼토리가 바로 '착한 아이 증후군'입니다. 고민의뢰인은 자기 욕구를 억누르고 타인의 욕구를 먼저 생각하는 선한 희생의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하며, 피곤한듯 자랑인듯 고민을 토로합니다. 저 또한 착한 아이 증후군에 걸려있는 제 자신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생각하는 착한 아이 증후군은 자신이 '선하다는 오만'과 '타인에 대한 기만'이 가득하고, 극심한 애정결핍이 낳은 지배욕을 감추고 있으며, 선과 악에 대한 불건강한 개념을 지닌 채, 자의식이 비뚤어진 상태입니다. 심지어 내면에 어마어마한 집착이 있어서 내가 남의 부탁을 억지로 들어줬듯, 남도 내 부탁을 억지로라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버리죠.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서러움을 쉽게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절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 때문에 남에게 부탁을 하지 못하고 혼자 해결하려고 끙끙거립니다. 온갖 감정 덩어리와 불건전한 고정관념들이 겹겹이 꼬여 앞과 뒤가 다른 행동을 하는 게 바로 착한 아이 증후군의 실체입니다.



※ 다음화는 착한 아이 증후군의 세부내용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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