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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양 Jun 18. 2023

[12화] 미움의 메커니즘

이해받지 못한 마음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악한 사람이 되고,
천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악마가 되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다가 불행하게 된다.
 


누군가의 미움을 받는 건 꽤나 슬픈 일입니다. 굴욕적이고 비참하고 초라해지고 서러운 기분마저 들죠.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까지 했길래 저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싶고, 나를 미워하는 그 사람의 미운 행동도 똑같이 들춰내서 “너도 나한테 미운짓 했잖아! 그러니까 너는 나 미워할 자격 없어.”라고 당당하게 따지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진짜 따져 묻게 될 경우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고, 그 감정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불쾌하고 두렵기에 참고 넘어갑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미운 사람이 나타나면 주변 여론과 상황을 의식하느라 애써 꾹 참기도 하죠.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뒷담화가 전부였습니다. 뒷담화를 하다 보면 오해가 오해를 낳고 선입견이 선입견을 낳는 일도 빈번하더군요. 그러다가 이내 깊은 현타가 오면서 굳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남 욕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저 또한 100% 떳떳한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알기 때문이죠. 그리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것을 표현하지 못한 내가 비겁하고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느새 타인에 대한 공격성은 나를 향하게 되고, 자기 공격에 대한 자가방어를 하게 되죠. '나는 미워하는 감정을 대놓고 표현을 하지 않았으니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은 착한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실제로 그렇게 믿어버립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진실로 선해 보이나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공격적인 감정을 숨긴 채 선한 생각으로 황급히 덮어버리는 행위를요. 놀랍게도 저는 제가 이런 행동을 빈번하게 했을 때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정의내렸습니다. 제가 왜 이런 이중적인 생각과 모순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거기엔 숱한 두려움과 그 뒤에 숨어있는 공격성 그리고 어설픈 도덕적 우월관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저는 참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가족들은 저에게 공격적인 언행을 자주 했죠. 그런 가족들 틈에서 저는 표현하지 못하고 위축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가족들을 마음 속에서 '악한 사람들'이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반면, 저는 그들과 다르게 화풀이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조용히 행동하는 '선한 희생자'라고 여겼습니다. 어렸을 적 선한 제가 악한 그들에게 패배하고 희생했지만, 제 행동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선한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선하고 겸손하고 약한 사람'이 제 정체성이기도 했죠.


저는 어렸을 적부터 가족들에게 미움도 꽤 많이 받았습니다. 미움을 받는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저희 아빠는 제가 실수와 잘못을 한다고 미워했고, 엄마는 자기 뜻대로 행동을 안 해준다고 미워했고, 언니는 제가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뺏어간다고 미워했습니다. 친척 어르신들은 제가 나이도 어린 게 고분고분하지 않지 않고 뻣뻣하고 군다고 미워했습니다.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의 입장과 이유는 이렇게나 다양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아빠는 저에게 화풀이를 하니까 밉고, 엄마는 나에게 짐스럽게 굴어서 밉고, 언니의 욕심이 나를 겁먹게 만들어서 밉고, 친척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행동을 강요해서 미웠습니다.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제 존재가 마구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힘이 아주 강한 사람에게 힘껏 휘둘리다가 라스트 펀치를 맞고 넉다운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죠. 그 뒤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굴욕감과 분노 그리고 복수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시받지 않고 지적당하지 않기 위해 능력을 키우는데 집중했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으며, 양보할 줄 아는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동시에 능력 없고, 독립적이지 못하고, 자기주장이 센 사람을 미워했죠. 그렇게 저는 폐쇄적인 가치관을 가진 채 제가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의 행동은 이상하게 빗나갔습니다. 사람을 '능력'과 '독립성' 그리고 '고상함'이라는 단일한 요소로 판단하기에 능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사람을 이해조차 하기 싫어했고, 나약한 존재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고,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세거나 질투하는 사람은 추악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알 수 없는 법. 제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채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하고 내 권리를 구차하게 주장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더군요.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무력하게 몇 년간 공들여 쌓은 탑이 한순간 무너지는 잔혹한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요. 마지막 발악을 하면서 제 의지와 달리 추한 행동이 튀어나올 때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너무나 당혹스러운 나머지 순간적으로 제 행동을 부정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얼른 제 원래 정체성(선하고 겸손하고 약한 사람)으로 현실을 뒤덮어 버리곤 했습니다.


그런 다음, 뒤를 돌아서 저를 향해 무자비한 폭언을 날렸습니다. 어렸을 적 아빠가 저에게 가했던 폭언의 습관이 똑같이 나오더군요. 파괴적인 분노와 공격성은 악마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인생 패배자, 실격자, 낙오자, 무능력자라는 낙인을 찍었고, 손과 발을꽁꽁 묶어서 아무것도 못하게끔 만들었어요. 매 순간 스스로를 의심하고 감시하고 다그치고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능력 있고 독립적이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죠. 아니, 노력이 아니라 숨기고 포장을 하려 했는지 모릅니다. 저의 민낯은 능력 없고 의존적이고 욕심 가득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저는 저를 죽도록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미움을 유발하는 사람을 미워했고, 제 신념에 어긋나는 사람도 미워했습니다. 비교하고, 질투하고, 경쟁하면서요. 마음의 상처는 미움을 더 증폭시키더군요. 심지어 누군가를 미워할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고,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미움의 근거에 언제나 어설픈 도덕관념이 뒤따랐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져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미워하기 위한 나름의 시도였죠. 사람을 미워하는 습관은 고스란히 저에게도 적용이 되더군요. 자기혐오를 할 근거가 수두룩이 쌓이고, 자기혐오는 우울증이 되었죠.


아이러니하게도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악한 사람이 되고, 천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악마가 되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다가 불행하게 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다가 상처만 입고, 잘 살아보려다가 우울증에 걸립니다. 저의 선한 의도는 왜이렇게 빗나가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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