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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양 Jun 20. 2023

[13화] 착한 사람의 이기적인 욕망

이해받지 못한 마음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
<아이유, 스물셋 中>




저희 부모님은 매사 표정과 말투가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셨지만, 자식들의 부정적인 표현은 버릇없다며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불합리함을 주장을 하거나 미운 감정을 표현하면, 그날은 초상을 치르는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난리가 났었죠. 자식의 미움을 일절 받아들이지 못했던 저희 부모님은 어김없이 저를 철저히 굴복시키고 괘씸한 자식이라고 낙인을 찍으셨습니다. 자식이란, 고생하는 부모님을 당연히 인정해야 마땅한데 감히 미움을 표현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님과 대화를 할수록 미운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동시에 제가 애초에 말하려고 했던 것이 뭔지 잊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질책을 받았습니다. 이런 비슷한 에피소드가 몇 번이고 반복된 후, 저는 부모님께 제 미움을 표현하길 멈추고 감정을 억눌렀습니다. 어차피 이해받지 못하고 수치심만 가득 느끼고 두렵고 소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질게 뻔하니까요.


부모님께서 반복적으로 저에게 가한 무언의 압박은 저에게 마치 죽음의 돌림노래와 같았습니다.죽음의 돌림노래는 대체로 3가지로 요약되더군요.

 "나는 너를 미워할 수 있지만, 너는 나를 미워할 수 없어."

 "너를 이해하기 귀찮고 짜증나고 어려우니까 말하지 마.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너는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야 해."

 "나는 너를 지배하면서 사랑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지만, 너는 반드시 나를 떠받들면서 사랑만 해야 해."


부모님께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방식으로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만 받고 미움은 매몰차게 거부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부모님의 이기적인 태도를 속으로 무시하면서 한편으로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패악질은 어른, 승자, 강자, 지배자만이 취할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 적도 있죠. 고등학생이 된 저는 자식에게 좋은 것만 취하려고 하는 얄미운 부모님께 복수하고 싶어 졌어요.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껴도 사랑과 인정을 화답하지 않았고, 미움은 무뚝뚝한 표정과 딱딱한 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부모님이 내 욕구를 무시했으니 저 또한 부모님의 욕구를 무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더 이상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받고 싶지도 않더군요. 저의 소심한 표현이 부모님을 답답하게 하고 당황스럽게 만들면서도 부모님이 저를 질책할 가능성을 최소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미움을 은근히 표현할 수 있기도 하고, 쉽사리 큰 소란으로 번지지 않아서 저에게 편하더군요. 부모님께서 저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시치미 떼고 방으로 들어간적도 많습니다.


그리고나서 저는 혼자 방에 들어가 그깟 미움 하나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부모님을 원망했고, 두려운 나머지 소심한 공격밖에 못하는 저를 바보천치에 지질한 패배자라고 조롱했고, 끝내 이런 저를 연약하고 선한 희생자라며 도덕적 우월감으로 덮어버렸습니다. 표현하지 못하고 울분이 쌓인 만큼 제 가슴에는 서러움으로 꽉 차서 남들의 미움 표현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더군요. 저도 부모님과 똑같이 타인을 이해하기 싫은 사람이 되어버린 거죠. 친구들이 선생님께 자유로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고 질투났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한동안 이런 마음의 패턴은 지속되었습니다. 참는 게 습관이 되면서 남의 의견에 질질 끌려다니고, 제 의사를 적절하고 다양하게 표현하지 못한 채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버리더군요. 주변 친구들은 저를 착하다고 했지만, 저는 내심 불만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 행동은 점점 가식적으로 변해갔고, 마음의 저 밑바닥에 새까만 공격성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밑바닥을 인정하지 않고 남탓을 했습니다. 누구하나 내 신경을 건드리면 바로 원망의 공격성이 튀어나가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틀린 사람이 될까봐 언제나 신경은 예민하고 날카로웠고, 누구든 기만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찰 때도 있었습니다.

 

'착한 사람이라는 명예'는 자신의 공격성을 감춘 '이기적인 욕망'이다.



제가 겉보기에 착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모님으로 인해 다듬어지지 않고 억눌려버린 미운 감정이 툭 하고 튀어나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공격하고 상처를 주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기에 참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죠. 내 억눌린 미운 감정(두려움, 공격성)을 참고 착하게 살면 훗날 복이 올꺼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설픈 도덕관념대로 인생이 순탄히 흘러가지 않더군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할수록 제 행동과 마음은 비틀려져 갔고, 비틀려진 만큼 겉과 속은 다른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저는 제 본능(두려움, 공격성)과 도덕관념 사이에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저는 정신이 무너져 내렸고 인간의 본능(두려움, 공격성)과 도덕관념 사이의 딜레마를 탐구하게 되더군요.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미운 감정을 표현하고 살면 이 세상이 무법천지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강박적인 도덕관념을 우선시 하기엔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될 것입니다. 과거 세계역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죠. 가만히 보면, 사회의 체제와 역사는 인간의 본능(두려움, 공격성)을 제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것 같습니다. 인간의 본능을 제어하고 개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세뇌는 필요악이었겠죠. 과거 지배층은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를 이용해서 나라를 통솔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단 한 명도 없기에,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도입했고, 민주화가 된 지 70년도 안 된 현재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들은 모두 본능과 도덕성의 딜레마를 겪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저는 지금껏 부모님은 못된 가해자, 저는 선량한 피해자라고 판단했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가 현 시대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아니, 각자의 감정에 대한 책임만 존재할 뿐, 그 누구도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미움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표현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있지만,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표현하는 것은 인간적인 행위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따라서 타인이 나에게 적절하게 미움을 표현하는 것 또한 큰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본능과 한계를 가진 인간이기에 앞으로 괜히 도덕책에 나오는 인간인 척은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인간적인 미운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을 적절히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부모님이 얼마나 긴 세월동안 자신의 본능(두려움, 공격성)을 감추고 살았는지 가늠이 되었습니다. 그 두려움의 정체는 자식에게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 ‘나쁜 부모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같죠. 자식인 저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고 싶어 했으며,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했고, 부모님의 어린 시절에 얼마나 큰 사랑의 결핍이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애잔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자식인 제가 먼저 더 많은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부모님도 인간이기에 몰랐을 수 있습니다. 돌아가신 엄마를 다시 만나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엄마! 엄마의 표현이 참 섭섭했어. 그래서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고 툴툴거렸어. 미안해. 다음 생에 만나면 내가 더 많이 사랑해 줄게."


돌이켜보니 제가 부모님에 대한 미움을 참았던 모든 행동이 다 틀린 건 아니었습니다. 일말의 미움이라도 받으면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움이 증폭되는 사람에게 마음의 파문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큰 배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껏 저는 미운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한 나를 멍청하다고 학대했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은 속마음을 어설픈 도덕관념으로 포장한건 잘 한거라고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거꾸로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은 건 잘못했지만, 모든 미운 감정을 행동으로 곧바로 옮기지 않은 건 잘한 행동이었다고요. 오늘 밤은 어렸던 부모님을 용서하고, 어린시절 두려워했던 저를 조금은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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