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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양 Jun 22. 2023

[15화] 나쁜 대화의 종말

이해받지 못한 마음

나쁜 대화


A와 B의 대화는 엄마와 저의 무의식적 대화를 직관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이 대화의 맹점을 통찰하지 않으면 직장에서 또는 기타 인간관계에서 사람만 바뀐 채 비슷한 인간관계를 맺게 되며, 나쁜 대화는 고통을 낳고 고통은 수도 없이 변주되어 계속됩니다. A와 B는 둘 다 애정결핍에 걸려있는 사람이라는 걸 전제로 작성했습니다. 



A : 나는 사랑을 받고 싶다. 내가 하나를 베풀면 하나 이상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난 사랑받기 위해서 열심히 희생과 친절을 베풀었다. B가 사랑을 돌려주겠지.


B : 나는 A에게 사랑 하나를 받았다. 감사하다.


A :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사랑받아야 마땅하고 B에게 1순위어야 하는 사람인데 1순위가 아닌 내가 서럽고 하찮고, 나를 하찮게 만든 B가 죽일 듯이 밉다. 


B : 사랑을 베풀어준 A에게 감사하지만, 내 능력 밖인 걸 너무 많이 요구하고, 나보다 A를 더 챙겨야 해서 버겁고 힘들다. 사랑을 주기 꺼려진다. 게다가 나는 A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무능감과 죄책감이 느껴진다.


A :  내가 사랑을 달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 B는 감히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돌려주지 않는다. B는 나쁜 사람이고 인간의 도리를 지키지 않았다. 내가 사랑을 못 받아서 하찮은 기분을 느낀 만큼 똑같이 무시해 주면 B가 정신을 차리고 내가 원하는 사랑을 주겠지. 


B : A는 내 마음의 권리를 존중해주지 않고, 나의 존엄성과 도덕성을 건드리면서까지 사랑을 달라고 겁박한다. 내가 틀린 사람일까 봐 겁이 난다. 하지만 사랑을 줄 수 있어도 A에게는 절대 주고 싶지 않다.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고 살기를 내뿜는 A가 두렵고 무섭다.


A : 나는 사랑을 주고받으려고 노력했지만 B는 구제불능이다. 도무지 사랑이 나오지 않는 답답하고 이상한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 못 받아서 손해와 피해를 봤고 분하고 억울하고 서럽지만 어쨌든 나는 B에게 사랑을 하나 줬다. 앞으로 B에게 사랑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니 B를 버리자.


B : 나도 A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데 못받았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수치스럽고 무력한 존재다. 대부분의 사람은 착취적이다. 나는 피해자다. 다시는 사랑하거나 사랑받고 싶지 않다. 사랑을 주고받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이니까.




나쁜 대화의 오답노트

A : 나는 사랑을 받고 싶다. 내가 하나를 베풀면 하나 이상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난 좋은 관계를 위해서 열심히 희생과 친절을 베풀었다. B가 사랑을 돌려주겠지.

하나를 베풀고 하나 이상이 돌아왔으면 하는 건 소망이 아닌 욕심이다. 욕심은 결핍에서부터 출발한다. 결핍은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며 소통해본 경험이 부족해서 생긴다.

열심히 희생과 친절을 베푼 밑바탕에는 사랑을 받고싶은 마음이 숨어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자체는 문제 없으나, 선지불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거래다. 사랑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겉으로는 남을 위한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이기심이 가득 차있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내심 무시하고 B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퍼주는건 사랑이 아니라 동정이다. A는 스스로 이타심이 많다고 착각할 수 있으나, 정확히 말하면 B가 A를 사랑해줄 것 같아서/의무감에/습관적으로 동정을 베푼 것이다. 동정을 받은 사람은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A와 B가 서로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래서 사랑을 할 때 내 솔직한 욕구를 무시하면 안된다.


B : 나는 A에게 사랑 하나를 받았다.

문제 행동은 없지만, 사랑 하나를 받고 감사함을 표현했으면 조금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A :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사랑받아야 마땅하고 B에게 1순위어야 하는 사람인데 1순위가 아닌 내가 서럽고 하찮고, 나를 하찮게 만든 B가 죽일 듯이 밉다.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못 받을 수 있다. 사람마다 마음 씀씀이 방식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1개를 주고 10개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1개를 받고 끝내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1개를 주고 평생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1개를 받고 더 달라고 권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애정결핍이 많은 사람이 주는 마음,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 주는 인정은 때로 독이 된다. 엄청난 보상심리가 작용하기에 내가 애정과 인정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미움과 배신을 받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니 결핍이 많은 이들에게는 애정과 인정을 굳이 받으려 하지 말자.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은 있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랑받을 권리는 없다.

누군가에게 내가 반드시 1순위여야 하거나 평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내가 사랑을 주는게 아니라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욕심과 집착의 발로다. 내 욕구를 조절함과 동시에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람의 취향과 자유의지를 존중해야 한다.

내 욕구는 소중하다. 하지만 남들의 욕구를 다 제칠만큼 중요한건 아니다. 서로의 욕구가 충돌하면 협상을 하면 된다. 

하찮은 기분을 느끼는 것은 A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이다. 열등감을 갖게 된 이유는 진실로 A가 못나서가 아니라 사랑과 소통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다. 

사랑과 소통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은 스스로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족한 결핍을 외부의 한 사람에게서 몽땅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실패로 끝나게 되어 있다. 


B : 사랑을 베풀어준 A에게 감사하지만, 내 능력 밖인 걸 너무 많이 요구하고, 나보다 A를 더 챙겨야 해서 버겁고 힘들다. 사랑을 주기 꺼려진다. 게다가 나는 A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무능감과 죄책감이 느껴진다.

A와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지, 사랑을 못 받을까 봐 두려운지 속마음을 먼저 천천히 살펴야 한다.

사랑을 주기 싫을 때에는 조금은 버티고 있어야 한다. A의 압박에 못 이겨 사랑을 주게 되면 내 마음을 무시했기 때문에 자괴감과 수치심이 쌓인다.

사랑을 달라는 사람에게 무조건 다 줄 수 없다. B도 취향이 있고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능감과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다.

A와 관계를 떠나서 내가 어떤 사람과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지 다양한 경험을 통해 관계에 대한 가치관을 재정립해야 한다.


A :  내가 사랑을 달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 B는 감히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돌려주지 않는다. B는 나쁜 사람이고 인간의 도리를 지키지 않았다. 내가 사랑을 못 받아서 하찮은 기분을 느낀 만큼 똑같이 무시해 주면 B가 정신을 차리고 내가 원하는 사랑을 주겠지.

A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경우 남을 괴롭히고 미워하는 집착 가득한 사람이다. 집착은 사랑받지 못할까 봐 혹은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딜 가든 자신이 가장 주목과 관심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주인공병(또는 여왕벌)에 걸려있을 확률도 높고 질투도 많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되도록 적당히 맞춰주고 피해야 한다.

A는 자신의 욕구와 두려운 마음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B에게 집착하고 괴롭히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A는 인간의 도리가 아닌 본인의 욕구를 이야기하고 있다. B를 죄인으로 몰아버리는 것은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기보다 잘잘못을 따져서라고 자신의 이기심만 채우려는 행동이며, 선과 악에 대한 어리숙한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타인의 욕구를 채워줘야 한다는 의무감보다 내 마음의 정당성이 우선이다.

A는 예의를 이야기하면서 예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 인간의 도리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을 지키고 상대방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는 것이다. A가 예의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B의 의사를 물어봐야 하는 것이다.

A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을 B에게 전가하고 있고,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속에 공격성이 매우 가득해서 복수심까지 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만큼 미성숙한 상태다.

사랑은 상호존중하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A는 사랑을 우월감 또는 지배욕(지배를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혼자 가지려는 마음)으로 잘못 알고 있다. 당연히 상대방은 불쾌해할 것이고 피할 것이다.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협박이 아닌 설득을 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기분좋게 나에게 사랑을 줄 수 있다. 상호호혜적인 관계에서 사랑을 받았을 때 기분이 훨씬 좋다.


B : A는 내 마음의 권리를 존중해주지 않고, 나의 존엄성과 도덕성을 건드리면서까지 사랑을 달라고 겁박한다. 내가 틀린 사람일까 봐 겁이 난다. 하지만 사랑을 줄 수 있어도 A에게는 절대 주고 싶지 않다.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고 살기를 내뿜는 A가 두렵고 무섭다.

인간관계에서 매번 눈치를 본다는 것은 관계의 균형이 깨졌다는 증거다.

A를 불신하면서 복종하는 이유는 타인중심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경우 죄책감과 무능감 그리고 두려움이 자극된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불신하고 학대하는게 습관이 된 상황이다.

죄책감/무능감/두려움의 정체를 파악하고 대화를 통해 관계를 동등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이런 관계를 쉬쉬하며 지속하는 것은 결국 B도 A에게 갑을관계를 통해 얻어내고 싶은게 있다는 반증이며, 언젠가 가식적인 관계는 서로를 배신하거나 파탄 나는 쪽으로 끝이 난다.


A : 나는 사랑을 주고받으려고 노력했지만 B는 구제불능이다. 도무지 사랑이 나오지 않는 답답하고 이상한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 못 받아서 손해와 피해를 봤고 분하고 억울하고 서럽지만 어쨌든 나는 B에게 사랑을 하나 줬다. 앞으로 B에게 사랑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니 B를 버리자.

A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랑을 어떻게 주고받아야 할지 모르는 상태이니 무작정 집착을 하다가 잘 안되니 남 탓을 한다. 자신은 열심히 노력했다고 주장하지만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다. 최소한 B가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 알아봤어야 한다.  

그래도 자신은 의무를 다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이 또한 소통하려는 자세가 아닌 자기만족에 그치는 행위다.

내가 사랑을 받고 싶은 만큼 받지 못해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억울해하는 것은 곧 죽어도 받기만 하겠다고 고집과 행패를 부리는 착취행위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가치도 없다.


B : 나도 A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데 못받았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수치스럽고 무력한 존재다. 대부분의 사람은 착취적이다. 나는 피해자다. 다시는 사랑하거나 사랑받고 싶지 않다. 사랑을 주고받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이니까.

사랑을 받고 싶거든 A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 보고 요구해야 한다. 설령 A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사랑을 줄 의사가 없으면 못받는 것이다.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집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A와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다.

B 또한 A와의 관계를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A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않았고, 사랑을 주고받으려는 시도를 적당선에서 멈추지 못했다. 집착을 받으면서 집착을 안 당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또 다른 집착을 낳을 뿐이다.

B는 자신의 인간관계 방식에 대해 정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오해가 많이 쌓여있고, 자신의 정체성까지 망가져있다. 나아가 세상 사람들을 오해하고 있고, 나와 세상에 대해 오해가 쌓인 만큼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오랜기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고 노력하지 않은 증거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즉 소통의 욕구를 외면할수록 마음속 딜레마는 심해진다.





※ 중요한 것은 A와 B는 자신들이 나쁜 무의식적 대화를 하고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빨리 통찰해서 이 죽음의 대화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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